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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 개정4판 ㅣ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음,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년 6월
평점 :
후배중 하나가 <철학 에세이>를 두고 "이건 유물론적 사고로 서술된 책이다"라고 따진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책의 저자는 자신의 옳다고 믿는 생각을 책에 담았고 그책을 선택한건 갓 학교에 복학한 내가 아니었다. - 물론 내가 학습교재를 고른다해도 <철학에세이>는 유력후보중 하나라는걸 인정하지만 -
아마 편향을 말하고 싶었을게다. 유물론만이 옳다고 책이 말한다고 주장하고 싶었겠지. 학회시간 내내 후배들의 초점은 학습시간을 빨리 때우는것 혹은 책의 편향성을 증명해내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하는 바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편향의 증거라면 이세상 모든책은 다 편향의 결과물들이다. 자신들도 그걸 아는지 꽤 '논리적'이라는 옷을 입고 책을 반박하려 하지만 그처럼 된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저 '어렵다'라고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체 후배들이 바라는 학습교재의 성격은 뭐였을까? 솔직히 <철학 에세이>란 책이 무슨 죄인가? <철학 에세이>는 무슨 저명한 철학자가 낸 책도 아니고 80년대 초중반에 야학에서 강학으로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하던 당시의 청년들이 의욕적으로 만든 책일 뿐이다. - 사실 세상 삼라만상을 다 꿰뚫는 신통력을 가진 철학자는 존재하지도 않고 -
뚜렷한 학습의 목적이 없는 학회의 학습시간은 학습교재를 자신의 손으로 고르고서도 학습시간때 내가 왜 이책을 보고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후배들이 지적갈증을 느끼기를 바라지 지적허영에 들떠있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 역시 복학생 처지인 동기는 내 욕심이 지나치다한다. <철학에세이>가 다 마쳐져 가지만 학회는 아직도 <철학에세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삶속의 철학함'을 행하지 못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근본원인은 배우고자 하는 의욕보다 지적허영심이 더 큰 학회의 문제라고 본다.
이 서평을 보는 이들에게 주의를 요한다. 이책은 옛날 책이며 더러 진부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수도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너무 유치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일수도 있다. 다만 이책을 읽고자 손이 갔다면 이책이 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이책을 냈는지 이책이 그 막막한 80년대에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책장을 여는순간 모든 잡념은 다 접고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다가 웬 청년들 덕택에 책을 다시 잡게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된 심정으로 책을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