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몸이 움찔할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떠올랐다. 언제나 그랬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뭔가 말을 할 때,
이 말이 효과가 있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 우리를 스치고 흘러가는 생각과 상(像)과 느낌의 강물은 너무나 강력하다.
이 강물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우연히, 정말우연하게도 우리 자신의 말과 일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말을 쓸어내고 지워버린다. 혹시 남겨둔다면 기적이다. 나는 다른가? 내 마음의 강물이 방향을 바꿀 정도로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 P177

그의 의지가 멈추었기때문에 시간이 멈추었고, 이 세상도 멈추어 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을 만큼 조용히…….
- P182

재능이 많았던 아마데우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소. 하지만 못하는 게 한 가지 있었지. 놀고 즐기고 절제 없이 행동하는 거였소,
엄청난 각성과 통찰과 자제를 향한 열정적인 욕구는 자기가 그런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 P195

그런데 어쩌면 마리아 주앙이 그에게 눈이 멀지 않았다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그에게 압도당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을 거요. 그에게 필요했던 게 바로 그거였을지도 몰라요. 그를 지극히 당연하게 자기와 똑같이 보는 태도 말이오. 자연스럽고 수수한 말과 눈빛과 행동으로 그를 그 자신에게서 구원할 동등함…..
- P196

조르지는 아마데우가 맹렬한 속도를 늦추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친구였소. 조르지와 함께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데우도 느릿해졌지. 조르지의 유유자적함이 그에게도 옮아갔던거요.  - P199

 아마데우는 천박한허영심을 대하면 잔인해졌소. 아주 심하게……. 주머니에서 칼을꺼내드는 듯했지. ‘천박한 허영심은 우둔함의 다른 형태죠. 우리의모든 행위가 우주 전체로 봤을 때 얼마나 무의미한지 몰라야 천박한 허영심에 빠질 수 있어요. 그건 어리석음이 조야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 그는 늘 이렇게 말했소.
- P202

한 사람 대 여러 사람의 목숨, 이런 식으로 계산할 수 없지 않나요?‘
그의 목소리는 꽉 잠겼고, 말 속에는 분노와 불안이 담겨 있었소, 뭔가 잘못된 일,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불안감 말이오. - P207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
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이 세상의 법속함에 맞설 대성당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이 필요하니까. 반짝이는 교회의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그 천상의 색에 눈이 부시고싶다. 더러운 제복의 단조로운 색깔에 맞설 광채가 필요하니까. 교회의 혹독한 냉기로 내 몸을 김씨고 싶다. 방영의 단조로운고함 소리와 들러리 정치인의 재기 넘치는 수다에 맞설, 명령을내리는 듯한 그 정적이 필요하니까. 행진곡의 새된 천박함에 대항할 물 흐르는 듯한 오르간의 울림이, 흘러넘치는 그 숭고한음색이 듣고 싶다. 난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천박함과경솔함이라는 치명적인 독에 대항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모습이 필요하니까. 난 성서의 강력한 말씀을 읽고 싶다. 언어의황폐함과 구호의 독재에 맞설, 그 시(詩)가 지닌 비현실적인 힘이 필요하니까.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 P215

그러나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 또 하나 있다. 우리 몸과 독자적인 생각에 악마의 낙인을 찍고 우리의 경험 가운데최고의 것들을 죄로 낙인찍는 세상, 우리에게 독재자와 압제자와 자객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세상.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도, 그들이 고양이나 비겁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거리로 숨어들어 번쩍이는 칼날로등 뒤에서 희생자의 가슴까지 꿰뚫어도………. 설교단에서 이런무뢰한을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 가운데 하나다.  - P216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프라두의 책에 쓰여 있던 문장 가운데 하나였다.
- P279

_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없이 자기 인식의 근본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니 실망이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또한 이런 발견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는 실망을, 없으면 우리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숨을 지으며 할 수 없이 견뎌야 하는그 무엇이라고 취급해서는 안 된다. 우린 실망을 찾고 추적하며 수집해야 한다.  - P292

그에게는실망이 뜨겁게 파괴하는 독이 아니라 서늘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향유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윤곽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주는 향유..
- P293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 P317

으려면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 P335

떨려.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 P356

접근하기 어려웠던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침묵을 우리에게 옮겨야 하는 통역사였습니다. 아버지는 왜 자기 자신과 자기 느낌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셨나요? 제가말씀드리지요. 가부장적이고 귀족적인 가장의 역할 뒤에 숨어있는 게 너무 편했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편했기 때문입니다. - P361

벨렘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이 도시에 대한 느낌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 도시는오로지 조사를 위한 장소였다. 이렇게 흘러간 시간은 프라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려는 계획을 통해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레고리우스가 전차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시간.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며 차가 움직이는 이 시간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었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새로운 삶을 사는 시간이었다. 그 - P384

 아마데우는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역할을 맡겨요. 그리고 그들이 그 역할에 맞지 않으면 무척 무자비해져요. 고상한 형태의 이기심이라고 해야겠지요."
- P388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어요. 식당 안은 오빠의 냉혹함에 놀란 침묵으로만 가득했어요.
‘그 침묵은 날 백정처럼 보이게 했어.‘
몇 년 뒤 우리가 그 일에 대해 단 한 번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빠가 말하더군요.
우리가 그 순간 자기를 완벽하게 홀로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오빠는 결코 극복하지 못했어요. 가족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죠. 그때부터 오빠는 집에 오는 일이 점차 드물어졌고, 와서도 그거 예의 바른 손님일 뿐이었지요.
- P403

오빠는 잘못된 단어의 독재와 올바른 단어의 자유, 유치한 말 때문에 생기는 보이지 않는 감옥과시의 광채에 대해 말하곤 했어요. 오빠는 언어에 정신을 잃은, 언어에 강박관념을 지녔던 사람이라 잘못된 단어 하나에 칼로 찔린 것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어요. - P405

‘경멸에서 오는 외로움이라는 메모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존경과 인정을 거두어가면, 왜 우린 그들에게 그런 건 필요 없소 나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니까‘라고 말하지 못하나? 이런 말을 할 수없다는 건, 소름끼치는 속박의 한 형태가 아닐까? 다른 사람의예가 되는 건 아닌가? 이런 일을 견디는 #이나 보루로 어떤 감정을 세워야 하나? 내적인 견실함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레고리우스는 책상 위로 몸을 굽히고, 벽에 붙은 메모지의 빛바랜 글씨를 읽었다.
신뢰에서 오는 협박,
- P418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알아요. 에스테파니아와의 일이 생겼을때 난 전혀 놀라지 않았어요. 그런 일이 있지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그게 나타나면 단 한순간에 확실해지지요.
- P455

그레고리우스는 아버지에게 쓴 아마데우의 편지와 ‘타인은 너의법정이다‘라는 문구를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그게 아마데우를 아주 불안정하고 이루말할 수 없이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 P464

분노라는 들끓는 독, 타인 때문에 그들의 뻔뻔함과 부당함,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우리가 화를 낸다면 우리는그들의 권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감아먹고 자란다.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부드럽고 우아하며평화로운 감정들을 파괴하고 우리에게서 잠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불을 켜고, 우리를빨아먹고 기운을 빼는 기생충처럼 우리 안에 자리를 잡은 분노에 분노를 터뜨린다. 우리가 입은 피해에만 분노하는 것이아니라 분노가 오로지 우리 안에만 퍼져간다는 사실에도 분노한다. 우리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감싸며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동안, 우리를 희생자로 만든 원인 제공자는 분노의 파괴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까.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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