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은 결정적 순간에 확실히 자신만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세기 말 한국 사회를 덮친 외환위기 국면과 대학들의경쟁적인 등록금 인상,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학생들은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고용 유연화를 주장하는 기업들의 만행 속에서 사회는 학생들에게 ‘생존‘을 위한 ‘경쟁‘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내밀었다. 그러자 건강한 사회가 가져야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거세되었다. - P380
프랑스의 68혁명은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승리였고 동시에 권위주의와 국가주의의 패배였다. 68혁명은 소중한 승리의 경험이었다. 승리의 경험은 단순히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회적 투쟁을 부추긴다. 우리에게도 승리의 기억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10대가 계속거리에서 싸울 수 있는 까닭은 승리의 기억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소리 높여 함께 말하면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항의에 답하는 ‘상식적‘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앞만 보며 경쟁의 계단을 오르라고 협박하는 채찍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 P381
한국의 10대들과는 달리 프랑스의 10대들이 누리는 한 가지엄청난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경쟁하지 않을 자유다. 경쟁하지않을 자유,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경쟁 대신 협력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고, 경쟁으로 마모되지 않은 에너지는 세상을 개혁해낼 조직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P381
대학에 2년만 다니다가 다른 길로 접어들어도 딱히 실패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이력서에는 ‘BAC+2‘, ‘BAC+3‘ 식으로 기술되곤 한다. 바칼로레아 이후 2년 수료, 3년 수료라는 뜻이다. 2년은 파리 1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3년은 7 대학에서 심리학을, 또 2년은 저널리즘을 배울 수도 있다. - P384
모두에게명료한 한 가지 사실은 스스로가 개척해야 할 수백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작동하는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은 길이 주어지는 대신 끊임없이 자기만의 길을만드는 세상이었으며, 과정은 고달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굴욕을 감내하도록 요구하지는 않는 세상이었다. - P386
그러나 2017년 5월에 집권한 마크롱 정부가 2018년부터 대학생 선발권을 학교 측에 부여하면서 평등한 교육의 기회 부여라는원칙 자체에서의 거대한 변화, 저항이 빚어지고 있다. - P386
원에서 새로운 입시제도를 시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불평등을 교정해나가야 할 임무를 지닌 정부가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데 강력히 일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해갈 도리가 없어 보이며 혼란과 저항은 불가피할 것 같다. 공생과 협력을 가르쳐온 프랑스 교육은 이제 경쟁이라는 괴물의출현과 맞서고 있다. 아이들은 그 괴물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 P388
마지막으로는 은퇴가 가능한 실질적인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 아이를 낳았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낳은 직장 여성의 연금에 아이 수만큼 가산이 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사회에 기여한노력을 인정해주는 셈이다. 2010년 사르코지가 주도한 연금법 개정 이후 은퇴 시기는 62 세로연장되었지만 내가 은퇴하던 당시에는 60세면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아이가 한두 명이었다고 해도 일찍 퇴직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연금은 60세부터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셋 이상 낳았을 경우에는 50대에 은퇴해도 바로 연금을 수혜할 수 있다. - P413
수혜할 수 있다. 혹시 교사들의 연금은 어느 정도 되는가? 25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세 아이를 낳았고, 4년을 육아휴직으로 쉬었으며, 25년간 연금을 냈다. 수혜하게 되는 연금의 비율은 일한 햇수의 두 배가 되는데, 자녀를 낳았을 경우에는 자녀 수 곱하기 2를 더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최종 급여의 56퍼센트 정도를 연금으로 수혜하고 있다. 한 달에 약 1500유로 정도를 받는다. - P413
처음에 학교는 아이에게 우정을 쌓는 공간을 의미했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거나밥 먹거나 때때로 뭘 배우기도 하는 그다음엔 사람들 사이에서발생하는 갈등과 이해의 충돌을 어떻게 조절해가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그 지혜를 학교에서 배워갔다. 아이는 어디 가서든친구를 금세 만들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삶의 가장큰 의미를 터득해갔다. 학교는 효율과 경쟁보다 존엄과 다양성, 협력 그리고 자율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중학교에 가면서 학습한 바가 점수로 평가되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수가 있되 등수가 없었던 까닭에 우정을 경쟁으로 훼손시키지 않고, 오직 자신과의 경주를 할 수 있었다. - P418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학교는 같은 시기 같은 동기로 태어났다.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시민이 통치하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그 시민 일반이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학교다. 그런 학교가 혁명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자유롭고, 존엄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었다. 불평등이 가해질 때 항의할 수 있고, 자유가 위협받을 때 광장으로 뛰쳐나가 자유를 엄호할 수 있으며, 존엄이 짓밟힐 때 그것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는 학교와 학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생활을 통해 이 모든 가치들이 선언되고위협받고, 다시 수호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선언만으로 지켜지는것은 없다. 매일 이 선언을 부수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이뤄질 때, 그것을 지켜내려는 노력 또한 숨 쉬듯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P418
TTT다시 프랑스 사회에 거대한 위험이 몰아닥치고 있다. 마크롱이라는 합법적 위험이 부지런히 이 사회에 덫을 놓고있고, 곳곳에서 사람들은 여기에 맞서 싸우고, 또 싸울 준비를 한다. 연대의 힘으로 세우고 지탱해온 이 사회가 간단히 허물어지진 않을 것이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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