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운동장은 등장했다. 이 기울어진운동장 위에서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게 경기를 하면서도 강렬한 피치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있다. 이 여인들의 움직임을보면 마치 장애물 경기를 보는 듯하다. 격투기 선수 같기도 하다.
아니, 세상에 전쟁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전투를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로 확장시킨다. 세상을 향해서 의미있는 짱돌을 던진다. 자신이 돌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이들은 어쩐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용기를 흠모하면서도 우리 속의 비겁함과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 P285

오리아나 팔라치는 그가 목격했던 그 잔혹한 전쟁들, 그가 공격했던 그 간인한 권력자들, 아버지를 린치로 공격한 어둠의 폭력,
자신이 거의 죽을 편한 멕시코 반정부 시위에서의 폭력, 그가 절통하게 사랑한 이의 죽음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갔다. - P293

오리아나 팔라치가 자신이 했던 인터뷰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한 적이 있다. "나는 수천 가지 분노를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그 수천 가지 분노는 수천 개의 질문이 되어 내가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기 전에 먼저 나를 공격했다." 얼마나 크나큰 분노였을까?
권력자의 비인간성과 잔인무도함에 대한 분노, 폭력을 일상화시켰다는 분노, 그 폭력에 희생당한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연민, 그자신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 그리고 자기 자신이 당했던 폭력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분노는 나의 힘‘ 이라고 할 만하다.
- P293

이른라 미국의 양심 이라 불리는 늘 춤스키가 있다면, 수전 손작은 가히 ‘기정의 양심‘으로 불릴 만하다. 어떤 권력에도 특히 부한 권력, 무능한 권력에 대하서 굴하지 않는 양실이다. 9.11 누욕 테러 사건이 난 후 손택은 오리아나 팔라치와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미국 부시 정부가 그들의 무능을 숨기고 오히려 테러의 위험과 리생의 고통을 이용해서 ‘대국법 등을 제정하고 안건을 빌미로 컨트롤을 강화하자 손택은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
"다 같이 슬퍼하가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슬픔에 깊이 파길 줄 알면서도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어려운 일이다. 수건 손택은 본인 자신의 고통 유방암과 자궁암,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존재)을 이기고 난 후 ‘타인의 고통에 인간이 어디까기 공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인간됨을 묻는다.
- P301

일제강점기 하였으나 나혜석은 유복하게 자랐고, 신교육을 받았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3·1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미술교사로 일했고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 연애도 했다. 폐결핵으로 죽은 첫 애인의 무덤에 남편으로 하여금 비석을 세우도록 했다는 기행도 알려져 있다. 가문 좋고 신교육도 받고 오랜 동안 구애했던변호사 남편 김우영과 유럽 여행을 하기도 했고 그 여행기를 글로쓰는가 하면 유럽의 여러 곳에서 그린 그림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은 여성 특유의 체험을 쓴 모(母)된 감상기‘라는 글 안에서 "아이란 어미의 살점을 뜯는 존재"라는 그때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솔직한 표현을 쓰기도 했고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하나의 인간인 것이오"라는 발언도 했다. 여기까지 보면 나혜석은 자유와 독립을 꿈꾸는 진취적인 신여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혜석의 삶은 180도 바뀐다.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나혜석은 혼외 연애에 빠졌던 모양이다. 상대 이름도 알려져있다. 나중에 친일 활동을 했던 천도교 도령 최린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던 남편 김우영은 관계를 수습하나 그 소문이 뒤늦게 경성에 퍼지자 나혜석을 못마땅히 여기던 시가의 종용에 의해 결국이혼한다. 나혜석은 시가에서 파문당하고 네 아이를 보지도 못한다. 여기까지는 혼외정사의 발생과 그에 따른 이혼으로 보인다.
그다음의 전개가 엄청나다. 사적 삶이 공적 세계로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여자가 스스로 걸어나온다. - P304

나혜석은 정말 자신의 말대로 선각자 였을까?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인습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줬던 나혜석은 예언자‘ 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소환하고 또 소환할 것이다.
- P308

어린 시절 아시아의 식민지 나라에서 무너져 내린 집안의 가난한 소녀로 자라면서 얻었던 삶의 딜레마 때문이었을까,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던 의문 때문이었을까,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동료로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면서 의문을 키웠던 때문일까? 뒤라스는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그의 사랑 문법을 썼고 그의 사랑인생을 살아냈다. 사랑은 언제나 옳다.
- P313

다여신이 나타났다!‘ 같은 말로 여자의 특정한 특질을 조명하는시대이니 말이다. 영화, 드라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미모나 목소리를 뽐내는 여성들을 보고 ‘여신이 나타났다‘ ‘여신급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좀 언짢아진다. 그 여성들의 특정한 부분만 띄워주는 게 언짢고, 그렇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을 자극하니또 언짢다. ‘여신이 나타났다‘라는 말은 찬사 같지만 실은 여자가가장 경계해야 할 말일지도 모른다.
- P358

‘할매‘가 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참된 자유를 상징하는 건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이성으로서의 여성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받는 대상 이상으로 우리는 사랑을 주는 주체다. 산전수전의 경험이  풍성한 유머를 자아낸다. 놀라지도 않고 호들갑을 떨지도않으면서 세상을 즐길 줄 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아가들에게 대한 사랑이 넘친다. 세상을 껴안는 여신이 될 수 있다. 수호여신으로서의 기량이 커진다.
- P358

‘여성성과 남성성은 절대적으로 한 인간 속에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한 인간 속에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잘 발휘하며사는 삶이 좋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아님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도 반갑다. 예컨대,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나와 같은 생각을 『자기만의 방』에서 훨씬 더 근사한 말로표현했다. "양성적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 있고 공명하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이란 뜻"이라니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이른바 나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의 이론을 발견했을 때 뛸듯이 기뻐했다. 남성 속에도 여성성이 있고 여성 속에도 남성성이 있고, 남성 속의 여성성, 여성 속의 남성성의 조화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자아의 발현이라는 정신분석힉자 칼융의 이론에서 내가 얼마나 용기를 얻었겠는가. - P364

올란도(Orlando)라는 이름은 ‘or‘ 와 ‘and‘를 합성한 이름이다.
‘또는‘과 그리고‘를 합한 것이다. 여자 또는 남자, 여자 그리고 남자‘라는 뜻이다. 사백 년을 뛰어넘어 양성을 오가는 인간의 이름으로는 아주 제격이다. 환생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지난날을 온전히 기억한다는 점에서 환생과는 다르다. 남성으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추구했다가, 사랑에 실패해서 좌절했다가, 공직을 맡아서 위선적인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지 선택을 고민했다. 그리고 깨어나서 갑자기 여성의 몸에 갇힌 자신뿐 아니라 사회가 가하는 구속을 이해하게 됐고, 그 구속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지식인tattil vele들과의 교류를 추구하지만 그 한계를 알게 되고 기득권층의 허위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 모든 역사를 안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이 또는 그리고‘의 올란도인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올란도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새로 태어난 인간 올란도는 그야말로 양성적 마음을 갖춘 것일까? 남성적여성으로서 여성적 남성을 고대하는 것일까?
- P376

우리 사회는 ‘여자라서, 여자여서‘뿐 아니라 ‘남자라서, 남자여서‘도 만만찮게 압력이 되는 사회다. 구분하고 규정하고 억제하고옥죄는 문화가 대세다. 왜 우리 스스로 이런 구속을 만들어서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가부장사회, 남성우대사회는 곧 수많은 남자들에게도 족쇄가 되기 십상인데 말이다. 부디자유로워지자.
그렇게 나아가는 단계 중 하나가 자기 안의 여성성을 인정하는남성, 자기 안의 남성성을 인정하는 여성이 자연스러워지는 상태일 것이다. 자기 안의 여성성을 잘 발휘하고 조화시키는 남성, 자기 안의 남성성을 잘 발휘하고 조화시키는 여성이 당연해지는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 양성적 여성, 양성적 남성으로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된 남성과 여성이 자유롭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있는 상태일 것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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