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었다. 그는 고전문헌학으로 세계 전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같았다. 문두스는 이 같은 그의 본질을 강조하는 데 가장 적절한단어였다.  - P14

그녀 뒤를 따라 나가지 않기 위해 힘겹게 참고 있어야 했다. 입술에 손가락을 댄 그녀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몸짓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또는 "우리끼리의 비밀이에요"라는 의미일 수도, "갈게요. 우리 사이를 이어줄건 이제 더 이상 없어요"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 P17

중요한 것은 아주 단순했다. 문법이든 표현 양식이든 고전의 외진 구석까지 모두 알고 표현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역사를 아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겸손함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요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변덕이나 뒤틀린 허영심도 아니었다. 나중에 그는 가끔, 자신의 이런 태도는 잘난 척하는 세상을 향한 조용한 분노, 허풍선이들을 향한 꺾이지 않는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 P21

그레고리우스는 몸을 돌려 천천히 키르헨펠트 다리 쪽으로 향했다.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57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이제 완전히 장악하려고 한다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 P22

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그레고리우스는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위인들이었다. 플로렌스가 누군가와 에스파냐어로 통화를 하면 그는 문을 닫았다. 이런 행동은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 P25

그러나 지금은 모든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다. 그레고리우스는CD에서 들리는 남자의 엄청난 속도와 피콜로 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춤추는 듯한 여자의 맑은 음색을 흉내 내려고 했다. 자신의 뻣뻣한 발음과 미끄러지는 표준 발음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는 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다시 들었다. - P35

르는 표현과 동사 형태를 찾아보았다. 포르투게스, 벌써 얼마나 다르게 울리는가! 지금까지 이 단어는 갈 수 없는 나라에 있는, 마법에 걸린 보물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가 문을 막 열게 된 궁전에 장식된 수많은 보석 가운데 하나였다.
- P35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정신 나간 생각이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의 사진, 초보자를 위한 어학 교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 P41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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