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 때문에 그들이 좋다. 씩씩하면서도 유쾌하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강철같이 달구어진 것 같으면서도 촉촉하게 젖어 있는 느낌이 좋다.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모습이 좋다. - P197
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가? 자신을 낱낱이 들여다본다. 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들여다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비루한 나, 찌질한 나, 숨어 있는나, 또 다른 나를 직면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추악하고 비열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그힘듦을 마주 대하는 이 여성 작가들을 보면 신이 난다. 그 어려운경지를 넘어가는 용기와 역량과 통찰력과 상상력과 창의성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 P197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 사는 세상의 허위와 위선에 대해 곧이곧대로 이야기해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헛웃음이 나왔고 쓴웃음도 나왔다. 가끔은 폭소도 터져 나왔다. - P199
박완서는 끊임없이 나의 현재를 두들긴다. 끊임없이 나의 속마음을 헤집는다. 끊임없이 허망한 욕망과 보상받지 못한다는 억울함과 깊숙이 자리 잡은 패배감과 소심한 복수심까지도 드러낸다. - P199
박완서의 글에는 부족한 인간, 약한 인간, 비겁한 인간, 삶의 무거움 앞에서 쪼그라든 인간들이 그 모습 그대로 나온다. 그것을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극복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교하게 또 냉철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은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나 자신의부족함을 유머의 소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결벽증이나 죄책감으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나의경험을 리얼하게 느낄 줄 아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할 줄 아는 것, 그 속에 숨은 동기들을 통찰할 줄 아는 것. 이것들이 박완서의 힘이고 또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힘이다. - P201
이 속물적인 세상도 나쁘지 않다. 비록 꼴찌들은 많고, 나는 쓸쓸하고 너도 쓸쓸하고, 우리는 서로의 쓸쓸함을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우리는 비겁함을 숨기고, 작은 것에만 매달리고, 쓸데없이고집스럽고, 속물적으로 굴지언정, 그래도 좋다. 여전히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인간은 어차피 찌질하다. 그래서 살 만하다. - P203
‘침착한 분노‘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가슴속에서는 불이 나지만 차근차근하고 담백하게 그 분노를 풀어가는 것이다. 이 책이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스타일 덕분이기도할 것이다. 뜨거운 이슈를 서늘하게 풀어냄으로써 저항감을 줄일뿐 아니라 독자의 머리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는 효과도 남다르다. 이런 스타일의 책은 당장의 ‘운동‘을 견인해내는 데에는 제약이 있을지 모르나, 공감대를 넓히면서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저변의 의식 변화에는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223
정희진은 어릴 적부터 넌 참 특이하다‘라는 말에 상처를 받곤했단다. 나 역시 넌 참 이상하다‘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결코내가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정희진은 자신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고 부르짖는다. 진실이라면, 이러한 이상이러한 특이함을 잃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상하다. 한 사회로서의 다양한 특이점을 잃고 있는 것이리라. - P228
나는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다만, 이 한 문장이 깊이 다가왔다.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그것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 - P230
그래서 골랐다. 이 일곱 명의 작가들을,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완벽히 다른 맛에 끌린다. 박완서의 따뜻한 서늘함을, 정유정의끝 모를 괴력을, 길리언 플린의 엄청난 야망을, 아멜리 노통브의신비로운 마력을, 리베카 솔닛의 슬프고 예술적인 리얼리즘을, 정희진의 스스로를 지킴으로써 세상으로 향하는 힘을, 이자크 디네센의 우화 속에 던지는 의문을 하나하나 좋아한다. - P237
왜 이렇게 세상은 이상할까?‘라는 원천적 의문으로 시작해서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자기 검증적 의문으로 전개되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행동적 의문으로 발전하다가드디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결단적 의문으로 발전하는 성장의 과정은 소중하다. 이 소중한 과정을 거듭하며 우리는 성장한다. - P241
『침묵의 봄』은 1962년에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관심과 함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케네디 대통령이 그 열망을 받아들여 1963년 환경문제자문위원회를 처음으로 구성했으며, 그 노력의 결과 1969년 국가환경정책법안이 통과되면서 강력한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al ProtectionAgency)이 발족됐다. - P248
레이첼 카슨의 시적이면서도 침착한 문체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안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있는 능력, 그것은 어릴 적 뛰어놀던 자연 속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세력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이겨할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 이라고 담담하게이야기할 수 있는 담대함,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책임감이었다. - P252
사센 교수는 『축출 자본주의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의 거대한메커니즘 하에서 인간이 사는 장소로서의 도시가 무너져 내리는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축출‘ 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고소득층의 주택과 고급가게들이 도심으로 다시 들어오는 현상)으로 저소득층은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고, 프랜차이즈 상점들에 의해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 쫓겨난다. 부동산 금융의 조작이 계속되면서 부동산 대출이 늘어나고 결국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겨우 마련한 자기 집에서도 쫓겨난다. 제조업들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중산층이 무너지고,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상권이 무너진다. 부자 나라와 부자 기업은 가난한 나라의 토지를 사들여 고수익 작물을 재배하며 그 나라 사람들의 먹을 터전을 빼앗고 환경을 황폐화시킨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내전이나 전쟁 상황만이 아니라먹고살 길이 없어서 국제 미아가 될 각오로 고향을 떠난다. 이른바 부자 나라에서도 중산층이 근근이 살아가며 계층 하락을 겪을뿐 아니라 사회에서 축출되어 급기야 사람들이 감옥에 수용되는 사태로 치닫는다. - P265
책 읽는 여자는 섹시하다, 책 읽는 남자는 섹시하다‘ 라고 앞에서 ‘나의 책 습관의 키워드‘에 썼다. 왜 섹시할까? ‘섹시하다‘의 의미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는 ‘완벽히 홀로가 된다, 주체적이다, 자기 세계가 있다,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유혹적이다, 그 세계에서 불러들이고 싶다, 나랑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하다!‘가 떠오르고 그래서 섹시한 것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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