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96년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를 돌아본다.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적지 않은 사건이 있었지만 1996년은 덜 삼킨덩어리처럼 목구멍 어디엔가 남아 있다. 오감이 다 동원된 물리적 기억으로. - P172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
- P187

유레카. 고위 관리 중에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폭력이라는 틀을 씌운다. 수단으로써 그것은 철저하고도 완전한 발견이었을 거야. 물리적 봉쇄와 이념적 봉쇄, 운동과 일상의 격리. 말하자면 일상적인것에서 정치적인 것의 ….… 박리, 뭐가 됐든 차벽이 그것을 완성시킬 것이다.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 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에 손을 대고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더는 움직이지못하도록 막아둔 뒤, 시위대가 다녀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파손된 차벽과 도로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서진 재물, 재산을 운동이 아닌 관리자의 방향으로 대중의 공감이나 이입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되도록 하는데에 재산 손괴 만큼 효과적인 광경도 없을 거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 쉬우니까.
- P188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
- P189

첫 장을 읽는 동안 아무런 매력을 발견할 수 없어 책장에 꽂아둔 채로 오래 묵은 책들,
흥미진진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두번 세번 읽고 싶은 문장이 없는 책들, 저자의 말투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인문사회학서들, 그런 책들은 이 방 바깥으로 밀려나가 현관에 놓였다가 사라진다.
- P206

어떤 책을 남기고, 어떤 책을 버릴 것인가. 기준은 한가지다. 두번 읽고 싶은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대답에 이르는과정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 - P207

언제고 내가 내 책꽂이에 꽂을 이야기 한편을 완성할 수있을까.
- P208

어쨌거나 어머니가 모성을 말하고 아버지가 금기를 말하는 이야기는 싫다. 그런 이야기를 도취된 채로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어른도 싫다. 정진원은 그것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읽고 자랐으면 좋겠어. 왜냐하면독서의 경험이란 앞선 삶의 문장을, 즉 앞선 세대의 삶 형태들을 양손에 받아드는 경험이기도 하니까. 이 생각과유사한 문장을 나는 최근 어떤 책에서 보았고 그 책의 저자는 아마도 롤랑 바르뜨였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민음사 2015) - P211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글에서 "아이히만에게서 서로긴밀히 연결된 세가지의 무능성을 언급" 한다. "말하기의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김선욱,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역자 서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한길사 2006)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말인 듯하다.("한국의 학자들 대부분은 ‘banality‘라는 단어를 ‘평범성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 아렌트는 1965년 증보판의 후기에 그 개념을 무사유‘로 해석했다. 여기서 무사유란 상투어만을사용하기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얄팍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뻔하다는 것이다."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The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rs 1권 역자 서문, 개마고원 2008)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어떤 측면은 평범성이라기보다는 상투성에 그 기원이 있을 것이다.
- P219

아버지는 이제 칠십대에 접어들었고 누군가가 식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곤경에 빠지고, 어느 서랍에 자기 양말이와 노동자 혐오가 동시에 있고, 그보다 더 근본에는 약함을 혐오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분노나 혐오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말이 ‘권위도며 바지가 들었는지를 잘 모르고, 잘 씻지 않고, 아파도 시스로를 돌보지 않아서 어머니를 안달복달한 상태로 밀어넣고, 자신을 내버려둔다고 딸들을 원망하며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하는 데 전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음도 늙음도 혐오하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노조활동과 폭로와 노무현인데, 파업은 빨갱이 활동이고 삼성의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비열한 배신자이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당찮은 자리까지 올라간 범인이다. 막노동에 나보다 많이 버는 것들이 무슨 노조며 파업이냐,라는 그의 불쾌에는 노동 혐오 뭣도 없다‘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노동자, 김용철, 노무현을 향한 그의 혐오는 같은 물줄기가 아닐까,라고 김 소리와 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권위 없음을혐오한다. 그는 힘없음無力을 혐오한다. 그는 약함을 혐오한다.
아버지에게 힘이란 무엇이고 권위란 무엇일까. - P220

이렇게 가정해볼까. 아버지가 말하는 권위는 곧 힘이고힘이란 곧 누군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들을까 두려워 급하게 자식의 입을 틀어막게 만든 힘, 그는 그런 힘을 경험했고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며 힘이란 곧 그게 되었다. 그게 없음을 그는 혐오한다.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누구도 ‘권위없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권위 없음상태를 두려워한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음을 힘껏 혐오한다…… - P222

딸들과의 관계에서 최근에 아버지가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딸들이 자신을 더는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는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김소리와 내가 사회적 사건들에마음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마음을 못마땅해하면서 배덕과 배반을 말한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탑승자들과 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김소리와 내가 마음 쓰는 것을 두고 그는,
그는 우리가 그들을 불쌍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다. 생판 남인 그 사람들에겐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네 부모는 왜 돌보지 않냐. 도덕적으로 그건 문제, 이율배반, 배반 아니냐. 너희들 앞마당부터 쓸어라.
그가 말하는 앞마당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앞마당이라는 점을 우리가 눈치챘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할까? 아버지는 자신의 농담에 일일이 정색을 하고, 아빠 불쌍하지,라는 물음에 더는 대답하지 않고, 다정하지 않고,
자주 화를 내곤 하는 딸들에게 이제 화가 났으며 어머니를 통해 그 화를 주기적으로 통지한다. 너희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가 말했다.
지만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나 그의 용서가 ….… 우리에겐 그의 용서가 이미 필요하지 않다. 그가 그것을 모른다.
는 것과, 알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 이렇게 앉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할 때,
김소리나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종종 서글프다.
- P224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 P240

그 아이들이 김소리에게 받은 것과 김소리가 그 수학선갱에게 받은 것이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치심. 모멸감, 자신을향한 남의 경멸감, 어른의 재료가…… 그런 것일 수 있지.
하지만 ‘나를 목격하고 있는 이 사람이 빨리 내 눈앞에서사라졌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는 계기라는 것을 그런 감정과 우연한 경험의 조합으로 받곤 하는 삶에 나타나는 어른이란 어떤 인간일까……를 생각하느라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아니야 실은 하필 그런 일을 겪고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이 김소리, 내 동생이었다는 점이 속상해 나는그 선생을 도저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고.
- P241

"산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 산다는 것은 (...)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것입니다." 나는 이 문장들을 롤랑 바르뜨의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La Préparation du roman / et II에서 발견했고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발견한 뒤로 읽는 속도를 늦추고늦춰 일년째 같은 책을 읽고 있다. - P242

나는 궁금하다. 그렇게 묻는 우리의 이웃은 그것이 정말너희가 무슨 관계인가.
궁금할까? 그 궁금함‘의 앞과 뒤에는 어떤 생각이 있을까, 그것은 생각일까? 예컨대 너희가 무슨 관계냐는 질문을 받을 때 서수경과 나는 우리의 대답으로 (우리가 대답을 하건 하지 않건) 우리가 또는 우리 각자가 대면할 수 있는 위협을 생각하고, 질문자와의 관계 변화를 생각하고, 그 질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대답 이후까지를 찰나에 상상하는데 우리에게 질문한 이웃도 그 정도는 생각했을까?
- P262

‘상식적으로‘ 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 니까 세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해제를 쓴 정화열 선생은 상식을 ‘사유의 양식‘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감각에 바탕을 둔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상식, 또는 공통감sensus communis 이란 아무래도 ‘생각‘인 모양이고, 다시 그를 인용하자면 서수경에게 적용되었다는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 듯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 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 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 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너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으며 내가 주장하는 상식으로  네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질 않잖아. 그럴 때의 상식이란 감도 생각도 아니고.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것이고 저 이야기는 저렇게 그저 끝나는 것이라는 관습적 판단일 뿐 아닐까.
- P264

한 사람이 말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렇지. 적나라赤裸裸, 그 광경은 마치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남의집 베란다처럼…… 우리는 왜 때때로 베란다를 청소하듯 그것을 점검해보지 않는 것일까. 모조리 끄집어내서 거기뭐가 쌓였는지도 확인을 좀 해보고 먼지도 털어보고 곰팡이 끼거나 망가진 것은 닦거나 내다버리고 하면서 정리도다시 해보고 새로운 질서로 쌓아보거나……… 하지를 않는걸까 좀처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 P266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나는 그 태도를 묵자墨字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 P267

서수경과 나는 그런 질문을 가진 뒤에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점자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맹인이 사용하는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묵자墨字라는 것을 그때에서야.  - P273

서수경과 나는 사십여년을 사는 내내 그 말을 몰랐던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를 둘러싼기록문자들, 우리가 보는 언어들이 전부 묵자인데 그것을묵자라고 칭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
- P273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
- P274

토요일 오전 열한시라는 묵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묵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산역 1번 플랫폼에도 있을 수있으며 그가 동행인 없이 홀로 서서 열차를 기다릴 수도있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고려되지 않는다. 용산역 1번 플랫폼의 상식에 그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없다…… 나는 아직 그것을 볼 수있었으므로 거기 있었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상식의세계라는 묵자의 플랫폼에서, 다시 한번.
- P275

 공중변소를 나오는 길에누군가 그에게,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그들이, 그러니까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가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라고 울직하게 묻자 토슨트는 완고하고도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위 캔트, 저지 뎀We can‘t judge them.
그 말은 내게 주문처럼 들렸다.
아마도 그는 그 장소에서 그 대답을 반복해왔을 거라고서수경은 말했다. 사람들이 자꾸 물을 테니까. 거길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즉시 대답할 수 있었겠지. 우리는 그들을 재단할 수 없어.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어. 몇번이고 반복된 질문에 훈련되고준비된 표정과 어조,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상투어가 아닐까? 2013년의 비르케나우에서 우리가 들은 대답은 한나 아렌트가 "두려운 교훈" 이라고 한 그것, 말과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상투성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두었을까...
- P282

매번 집회의 평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나는 불편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평화적 시위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서수경과 내게 거의 강박처럼 보였다. 광장이나 여론이 모이는 곳에서 종종 보이곤 하는,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착한 시민이라는 자부가 우리는 불편했다. 착한 시민의 정상적 시위와 착하지 않은 시민의 비정상적 시위가 이렇게 나뉘는 것일까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3년 내내 착하지 않은 시민이었다는 말인가......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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