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지는 자기가 실재를 포착하는 일, 시간을 정지시켜 기억을 보존하는 일에 종사한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그런 기술의 진짜매력은 실재를 포착하는 게 결코 아니에요. 사진, 영상, 홀로그래피…… 그렇게 실재를 포착하는 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은 곧 현실에 관한 거짓말이 늘어나는 과정이었어요. 현실의 모습을 바꾸어왜곡하고, 조작해서 공상화하는 과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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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카메라를 위해 자기 삶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단계화해요. 기껏 휴가를 가서도 한쪽 눈은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비디오카메라에서 뗄 줄을 모르죠.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욕망은 곧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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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질이 났어요. 그 어린 여자애가 저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어요. 저처럼 행동하고, 저처럼 말하고, 저처럼 웃고 움직이고 반응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애는 제가 아니었어요.
저는 이미 어른이었고, 변해 있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아버지를 대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오려내서 시뮬라크럼 안에 가둬 놓은 저의 일부가, 제 눈앞에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는 그걸 이용해서 저와 연결된 느낌을 유지했어요. 제가 거부했던, 진짜가 아니었던 그 느낌을. - P221
제 어린 시절의 오래된 시뮬라크럼을 재생하면서, 아버지는 저의존경과 사랑을 되찾는 자기 모습을 꿈꿨어요. 자기가 저지른 짓과진짜 저를 현실에서 마주하는 대신에.
자기 자식이 철저한 의존과 독립한 자아 사이의 극히 짧은 시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건 아마 모든 부모의 꿈일 거예요.
그 시기의 아이한테는 부모가 완전무결한 존재처럼 보이니까요. 그건 사랑의 탈을 쓴 통제와 지배의 꿈이죠. 리어 왕이 코딜리어에게품었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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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는 아빠가 가장 약했던 그때 그 한순간이 네 삶까지 덩달아 지배하도록 놔둬 버렸어. 아빠의 인생 전체를정지된 그날 오후로 압축해 버린 거야, 아빠라는 사람의 가장 부족한단면 하나로, 너는 마음속에서 정지된 그때의 이미지를 덧그리고 또 덧그렸어, 이미지에 찍힌 사람이 흐릿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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