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선집 1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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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노라. 데미안, 더 이상 그를 찾아 헛되이 헤매지 말라고. 이것이 30대의 내가 [데미안]을 다시 읽고 내린 결론이다. 그렇다면 10대에 [데미안]을 처음 만났던 나는 어땠을까.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전세계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이 경도되었다. 문장을 반복해 읽을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지곤 했다.

 

헤세의 신은 완벽하지 않았다. 한없이 이중적이고, 선과 악을 양손에 하나씩 든 채 언제든 둘 중 하나를 혹은 모두를 인간에게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인은 용기와 개성을 지닌 인물이었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비웃은 도둑은 지조 있는 사람이었다. 고대로 이어져오던 절대적 고정관념을, 절대선을, 한순간에 전복시키는 헤세의, 데미안의 견해는 듣는 이의 귀를 매혹시켰다.  

 

사실 우리 인류는 모두 카인의 표식을 가지고 태어났다. 신에 의해 만들어진 아담과 이브에게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는 살인자가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은 인류의 기억에서 재빨리 사라진다. 망각이란 인간이 부여받은 엄청난 특권이다. 그리고 '신에 뜻에 맞는 아벨의 세계'(p63)에서 살아감을 감사하게 여긴다. 

 

하지만 신은 파괴를 원한다. 알을 깨고 나와 세계를 부수고 자신에게 날아오기를 원한다. 아벨의 세계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신은 카인에게 표식을 주었다. 아벨의 제물은 받아 주시고, 카인에게는 표식을 주어 남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했다. 신은 카인에게 말했을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너는 부수고 파괴하는 자- 아벨은 나의 오른손을 잡고 너는 내 왼손을 잡으리라. 너도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 책은 곳곳에 이런 신의 이중성을 논한다.  

 

p134,“희열과 전율, 남성과 여성이 뒤섞인 것, 가장 신성한 것과 가장 추한 것이 서로 뒤섞인 상태,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지무구함에 의해 경련을 일으키는 깊은 죄악, 이것이 나의 사랑의 꿈속에 나타난 영상이었고, 그리고 아브락삭스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이런 감상이 데미안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p62.(크로머를 데미안이 쫓아낸 후)“나는 좀 더 캐물으려 했지만 그는 답변을 피했다. 그는 전부터 내가 그에게 품어왔던, 무언가 답답한 기분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은 감사와 경외감, 경탄과 불안, 애착과 내적인 저항이 기묘하게 뒤섞인 감정이었다.” 

 

이런 이유로 매력적인 데미안 캐릭터가 소설 속에서 실제 인물이 아니라 싱클레어 내면의 자기를 투영한 절대적인 존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도 데미안이 존재한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건 그것대로 또 설레는 일이다. 리뷰의 첫 문장에서 데미안을 헛되이 찾지 말라는 것은 결국 식상한 결론이지만 우리들 마음 속에 이미 데미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몰랐지 10대의 나는...바로 싱클레어처럼.  

 

그러니 십대들이여! [데미안]을 읽으라! 즐길 수 있을 때 환호하고 경배하라!

 

덧1. 헤세는 반전주의자였다.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써서 같은 독일 국민의 반감을 샀고 저작들의 출판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차치하고, 이 텍스트 하나만 놓고 나름의 해석을 해 본다면 리뷰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이 책에서 제일 유명한 아브락삭스 선언은 결말에 전쟁이 등장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상당히 미묘해졌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명제는 자칫 결말에 나오는 전쟁을 미필적 고의로 여기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거기다 소설의 뒤로 갈수록 더욱 굳어지는 데미안이나 싱클레어의 카인의 표식을 가진 인간들만의 과잉된 특권의식은(p204) 상당히 위험한 지도자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2. ‘내 안의 데미안’이라는 결론은 어디까지나 표상적 의미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내게 데미안은 소설 속에서 엄연히 살아 숨쉬는 인물이다. 싱클레어에게 한 마지막 입맞춤으로 나는 얼마나 설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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