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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이올린 ㅣ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파인먼은 누군가 흐릿한 주장을 하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That is not even wrong
흐리멍덩한 주장은 잘못임을 논증할 수도 없으니 시간 낭비가 크고, 흐리멍덩한
주장을 명료한 주장으로 다른 사람이 고쳐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원 주장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으니 결국 헛되다는 것이다.
흐리멍덩한 주장은 듣는 이에게 시간 낭비만을 초래한다.
그래서 나는 명료하게 주장하는 것에 훈련된 과학자적 인문학적 글쓰기를 즐긴다.
오히려 명료한 말로 틀린 말을 하는 것이 낫다.
검은 바이올린은 명료한 소설이다.
바이올린의 장인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만든 인생 최고작 검은 바이올린이 음악 연주에 사용되지 않게 보관한다.
바이올린 연주자 카렐스키는 자신이 만든 인생 최고작 오페라를 오랜시간 악보로 옮기지 않고 머리 안에 보관한다.
요하네스 카렐스키가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를 작곡하는 데는 31년이
걸렸다.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꿈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그 31년을 살았다. 에라스무스와 검은 바이올린의 이야기를 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았다.
오페라의 마지막 박자에 마지막 손질을 한 날, 그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헛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누구도 카를라 프렌치처럼 노래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광기에 아주 가까워지곤 하는 이상한 성향으로 인해, 카렐스키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음표들을 적어온 노트를 벽난로에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의 작품이 불길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됐어." 그는 스스로 말했다. "이제 이야기와 결별했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몸은 지쳤으나 영혼은 차분했다. 영혼이 차분해진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결론이다. 두 사람에겐 인생의 의미를 찾았을까.
다른 많은 사람의 평가의 높낮이에 따라 결정되는 인생의 의미는 어떤 시대의 유행에 따라 결정되는 유행가처럼 허망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나의 인생 중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내밀한 부분을 말하며 이해 받을 때가 아니다.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 축하받을 자리도 역시 아니다. 나를 닮은 아이에게 숙제를 내주듯 미루며 안심하던 자리도 아니다.
에라스무스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음악을
먹으며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새 요하네스가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
에라스무스에게는 세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다. 묘한 소리를 내는 검은
바이올린 한 대. 그가 마법에 걸렸다고 말하는 장기판 하나. 오래된
증류주 한 병. 노인에게는 또한 세 가지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베네치아 최고의 바이올린 장인이었고, 장기에서 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특한 증류주를 만들었다. 증류기는 작업장의
뒷방에 있었다. 매일 아침 그는 바이올린을 고치거나 만들었다. 오후에는
증류했다. 저녁에는 장기를 두었다. 어느 때나 그의 세 가지
열정이 만든 도취 상태였다.
그는 언제나 취해 있었다. 음악에 취해 있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장기에 취해 있었다.
취한 그는 말을 했다. 계속 말을 했다. 바이올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증류주에 대해 말했다. 증류주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장기에 대해 말했다. 장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음악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말을 그쳤다.
31년간 고통 받다 노트를 벽난로에 던졌을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끼는 카렐스키와 다르게 에라스무스가 바이올린을 고치거나 만들때, 장기를 친구와 둘때, 술에 취해 있을때 같은 시간들을 나는 찾아야 한다.
다른 이로부터의 평가의 시간도 아니며,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의미있는 시간으로써 혹은 행복한 시간이었어라고 평가 받는 시간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과 더불어 나 혹은 내가 만든 창조물이 영원하기를 또는 의미 있기를 기대하는 소망은 고통을 만든다. 검은 바이올린은 그 의미없는 고통을 말하는 명료한 책이다.
즐거운 독서 1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