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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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와다 요코의 소설 <개 신랑 들이기>와 <용의자의 야간열차>를 읽고 너무 좋아서, 다른 책들도 읽고싶어 찾아보니 마침 이 <헌등사>가 절판이었다. 중고로 어렵게 구해서 읽어야지 하던 차에 민음사에서 새로 출간이.. 표지력도 출중하여(?) 그냥 새로 샀다. 헌등사 구판 필요하신 분 드려요..


 표제작인 헌등사는 모종의 이유로 세계의 국경들이 폐쇄된,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더 이상 늙지않는 증조할아버지 요시이와, 방사능으로 허약해진 증손자 무메이 두 사람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그린다. 


 이 소설의 닫혀버린 세계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국경뿐만이 아니라, 외래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쓰는 것조차 금지한 세계다. 그야말로 지금 이 안에 남은 것으로 내일을 궁리해야 한다. 우리 모두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 맥주 이름 역병이 세계에 퍼진 뒤 방 안에 갇혀 냉장고 안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사놓은 책중에 안읽었던 책은 무엇인지 훑어봤던 시간이 있었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것이, 무언가를 오래 응시하면 그것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언어 작가로서 다와다 요코는 이 감각을 정말 잘 표현한다. 익숙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라볼 때의 낯섦. 언어를 넘나들며 사고하다 허물어지는 자아의 경계.


 다와다 요코가 그린 닫힌 세계에서는, 안에 남은 것들이 서로 뒤섞인다. 정지해있던 언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확장하는 세계가 아닌 침잠하는 세계의 에너지를 그린다.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라는 것은 이처럼 우습다. 나와 ,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소리치는 세상에서, 가만히 응시하는 것으로 경계를 더듬는 다와다 요코의 글들은 나를 마구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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