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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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해에서 태어났다.

-나는 하모니카를 수준급으로 분다.

-나는 햄버거를 좋아한다.

-나는 돈 욕심이 별로 없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군대에서다. 반년만에 들어온, 게이로 추정되는 맞후임과 나는 허구헌날 사무실에서 잡담을 하곤 했는데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김애란이었다. 후임의 추천으로 단편들을 읽게 되었는데, 3년동안 고시원에서 살았던 나로선 <노크하지 않는 집>을 읽고 다른 단편들을 찾아보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얄궂게도 후임의 집은 꽤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날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나는 햄버거 후임은 성게알이었다. 오마카세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도 그 때였다. 후임은 기억나지 않는 여러 가게 이름들을 말하며, 성게알은 바다의 슈크림이라는 둥 성게알 맛을 열심히 묘사했다. 성게알이 꽤 비싼 식재료인지, 또 후임이 살았던 동네가 그렇게 부촌인지 알게된 건 전역하고 한 참 뒤다. 후임에게 간식을 그렇게 열심히 사주었건만, 전역하고 꼭 다시 보자는 후임의 마지막 인사는 아마도 거짓말이었던 듯 하다. 이놈자식!


 전역하고 한동안은 아둥바둥 살았다. 구복이 원수라며 종이상자 자르는 알바를 하다 손가락 살을 뭉텅 잘랐다.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게 지겨운 거였다는 김애란의 말이 생각났다. 사는게 지겨워 손가락을 자르는 사치를 부렸다.

 그 때 내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준 형과 연이 닿아 아직도 드문드문 연락을 한다. 아버지 장례식때도, 이번 생일에도 먼저 연락이 와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손가락에 흉터는 아직 남아있어도 난 그 때의 구복이 참으로 복되다 여기며 살고 있다. 내가 분당으로 이사올 때 즈음, 우리 가족은 거짓말같은 모종의 행운으로 더이상 애면글면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보자는 알바 형의 말은 아마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김애란의 이번 장편은 고등학생 2학년 어떤 반의 자기소개 게임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을 5가지 이야기 하는데, 반드시 그 중 하나는 거짓말이 들어갈것. 이토록 매력적인 게임이라니. 책을 수없이 읽다보면, 넷플릭스를 하루종일 보다보면, 혹은 그냥 살다보면 결국 거짓말 언저리에야 진심이 담긴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게된다. 때로는 거짓말 속에, 때로는 거짓말이 끝나는 지점부터. 감명깊게 읽은 소설 속에서, 혹은 광고와 광고 사이 그 짧은 순간에.


 나 역시 소설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음악 선생님이 참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노래부르기 시험땐 다른 곡을 다 놔두고 굳이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를 원어로 불렀다. 가사를 1주일동안 달달 외운 뒤에 파리넬리에 빙의해서 열심히 불렀던 기억.

 그러던 어느날은 갑자기 하모니카로 수행평가를 하겠다고 했다. (이게 교육과정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음악시간에 참 괴상한 것들을 많이 배웠기에 킹리적 갓심이..) 쉬워보였던 하모니카에도 참 여러가지 기교가 많았는데 그 중 바이브레이션이 그렇게 어려웠다. 소리가 나오는 곳을 손으로 열었다 막았다 하면 되는 간단한 것인데 다들 그럴싸하게 들리진 않았던 이상한 기억. 열심히 연습하다 반쯤 포기했던 어느날 실수로 하모니카를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이놈의 아귀힘. 횡액이 내 팔자는 아닐진 몰라도 이 약한 아귀힘은 날때부터 많은 걸 놓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때부터 떨어뜨린 하모니카를 불기만 하면 바이브레이션이 자동으로 되는게 아닌가! 옆에서 열심히 바이브레이션을 연습하던 원태는 억울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나는 덕분에 우리반에서 유일하게 하모니카 만점을 받았다. 열심히 연습했다는 사소한 거짓말과 함께.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났다면 그냥 내 사소한 행운 이야기로 끝이 났을 테지만, 1조 하모니카 시험이 끝나고 다음날 2조의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히 공부만 하던 친구였는데, 하모니카를 집에 두고와서 내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난 흔쾌히 빌려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친구 역시 내 하모니카를 떨구어버렸고, 그렇게 내 하모니카는 완전히 고장이 나며 운명을 다했다. 뭐, 시험은 끝났고 앞으로 평생 하모니카 불 일은 없지 않을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친구가 나에게 새로 산 하모니카를 건네주었다.


“정호 니한테 하모니카 엄청 소중했을텐데 미안하다..”


 난 머쓱히 새 하모니카를 받아들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냈다. 왜인지 그 때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방정맞게 거짓말로 연주한 내게도, 그 거짓말에서 뭔가를 소중히 들었던 친구에게도. 그 친구가 사준 하모니카는 부산 집 서랍에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이번 김애란의 장편이 좋았다. 단편만큼 좋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거짓말로 진실을 이야기 하는 창작자로서는 마음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글을 써서 돈을 벌어보자는 허황된 꿈은 이제 접어 두었지만, 나도 4줄의 진실과 줄의 거짓말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다. 어쩌면 또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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