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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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나름 우리들의 작은 전통(?)이다. 원태가 안 해본 보드게임을 하나 들고오라고 해서 보드게임이 꽂혀진 창가의 책장을 살펴보았다.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우리 집은 북향이라 해가 들지 않는다. 다만 하루 중 딱 한 번 빛이 집으로 들어올 때가 있는데 바로 해가 질 때다. 창가에 있는 책장으로 빛이 사선으로 얼마간 비쳤다 사라진다.


 책과 보드게임의 색이 미세하게 바랬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 때였다. 하루중 30분 남짓 비치는 석양에도 꾸준히 색은 바래고 있었구나.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편은 아닌지라 슬프진 않았다. 다만 영속하는 상실을 조용히 감각했다. 가만히 멈춰있는 것들도 조용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이별하고 있다.


 연휴에는 책을 4권 읽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는 레즈비언 친구에게 읽고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클레어 키건의 소설 2권. 들고온 책은 이 3권이었지만 너무 빨리 읽는 바람에 동네 서점으로 가서 앤드루 포터의 새 단편집을 사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읽을 때마다 레이먼드 카버를 떠올리게 하는 앤드루 포터는 상실을 표현하는 재능이 참 탁월하다. 포터의 소설에는 나도 모르게 지나온 것들, 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이 담겨있다.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상실을, 어느날 문득 무언가 달라졌다는 감각을 그려낸다. 그게 무엇이었지는 결국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춰 선 사람들을 조용히 응시한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모두 정지해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삶은 흐른다는 점이 비극이자 작은 위안이다. 이미 지나쳐버린, 그리고 가물거리는 빈 곳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결국 그 주위를 담담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앤드루 포터는 잘 알고 있다.


 이번 설의 보드게임 모임은 승률이 좋았다. 1등을 여러번 했다. 아마도 게임 잘하는 재우가 오질 않은 탓일지도.. 재우는 결혼을 준비한다며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했다. 태윤이는 자랑을, 원태는 인생네컷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집안이 여자친구와 찍은 인생네컷이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많은 것을 지나쳐온 느낌이 든다. 꺼져가는 불씨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나, 100미터 전력질주 달리기나 숨가쁜건 매한가지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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