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22 1 - 50주년 기념 특별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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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 캐치-22에 대해 처음 읽은 건 워커 퍼시의 소설 ‘영화광’의 역자 후기에서였다. 역자분이 말하길 당시 전미도서상 최종 결선에 3작품이 올라갔는데, 워커퍼시의 '영화광'과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 그리고 마지막이 조지프 핼러의 '캐치-22' 였다고 한다. 그 두 작품을 제치고 수상을 했으니 영화광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가! 에 대한 내용이었고, 내 기억에 캐치-22는 ‘그만큼 대단한 소설’ 정도로 기억되고 지나갔다.


 그리고 한 달쯤 후에 우연히 캐치-22라는 제목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비프의 마지막화에서다. 에이미는 허리에 22라는 숫자를 문신했는데, 대니가 그 의미를 묻자 캐치-22라는 소설에서 따왔다고 대답한다.


“그거 알아? 조지프 핼러의 캐치-22는 원래 캐치-18이었는데, 편집자가 지맘대로 숫자를 바꾼거야”


편집자는 도대체 왜 18을 22로 바꾼 것일까? 대니의 그 대사가 이상하게 내 호기심을 자극해 바로 소설을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이별하고 드라마 비프의 엔딩을 보며 과몰입 하기도 했거니와, 궁금해서 캐치-18을 구글에 검색 했더니 온통 캐치티니핑 18화 리뷰만 나와서 그 전모를 당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편집자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내 마음대로 숫자를 바꾼 적이 있다. 이전 회사에서 예절교육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다 큰 성인에게 정말 이런 것이 필요한가 싶었지만 사람들이 매일 게시판에서 욕을 하고, 언젠가부턴 조식으로 나오는 이즈니 버터를 도둑이 다 쓸어가는등 회사가 비프의 대니와 에이미로 가득했던 탓이다. 그 중엔 주차 문제로 하도 싸움을 하니 주차장 사용 에티켓을 교육하는 편이 있었는데, 케릭터가 24번 자리에 차를 주차하는 장면을 만들어야했다. 아트워크를 전달받은 나는 내 마음대로 숫자를 42로 고쳤다. 아무래도 42야말로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니까.


 아무도 신경 안 쓸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애니메이션을 본 아트워크 디자이너분이 나에게 와서는 왜 24를 42로 고쳤냐고 물어봤다. 디자이너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좀 웃긴 일이다. 아마도 주말동안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인간은 대체 왜 24라는 숫자를 굳이 뒤집어서 수정했을까? 42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알고보니 디자이너분의 생일이 2월 4일이라 그 숫자를 선택한 것이었고, 그래서 숫자가 바뀐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고 한다. 작업물에 자기 이야기를 숨겨놓다니, 당신도 나처럼 꽤 음습한 사람이었군. 난 어떤 소설에서 나온 유머라고 솔직히 대답은 못하고 ‘그냥 이유없이 바꿨다’라고 얼버무렸다. 인간이란 사소한 것들에도 의미를 집어넣는다. 다만 의미와 무의미는 이렇게 쉽게 뒤집힌다.


 도대체 캐치-22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대하며 배송 온 책을 펼쳤다. 편집자는 어떤 의미를 자기 맘대로 넣었을까. 다행히 캐치-18에서 캐치-22로 바뀐 것에 대한 일화는 소설 50주년판 서문에 실려있는데, 생각보다 시시한 이유라 실망했다. 하지만 뒤이어 1000페이지짜리 이 소설을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드라마 비프가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 광기와 부조리의 대잔치에 홀려버렸기 때문이다.


 소설은 2차대전의 미국 비행대대의 이야기다. 드라마 비프처럼 정말 온갖 미친 사람들이 다 나오는데, 아마도 주인공 요사리안은 그 중에서 가장 미쳤으면서도 가장 정상적인 인물일 것이다. 요사리안은 주어진 50번의 비행을 끝내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캐스커트 대령이 자꾸 목표 비행 횟수를 5번, 10번씩 찔끔찔끔 올리는 바람에 계속해서 횟수를 달성하지 못하고 전쟁에 머무르게 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드라마 비프에서 대니와 에이미는 모두 삶을 완성하기 위한 한 조각을 가지려 노력한다. 이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계약만 성사시키면 내 삶은 완성될 것 같은데. 우리는 모두 기대를 품고 마지막 비행을 떠나는 요사리안을 닮았다. 하지만 그 비행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는.


 캐치-22는 이런 모든 부조리와 모순의 상징이다. (Catch에는 함정, 조항, 노림수 등의 미묘한 뜻이 많은데, 소설에선 주로 조항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기를 쓰고 귀국하려는 요사리안은 이 22항으로 인해 전쟁을 그만둘 수 없다. 캐치-22가 대체 무엇인지는 여기 적을 수 없지만, 순환논리와 자기모순을 가진 부조리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미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면 전역을 할 수 있지만, 미친 사람은 스스로 미친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정도의. 소설은 온갖 캐치-22들의 향연이다. 캐치-22를 이유로 무의미한 하루와 죽음들이 이어진다. 인간에게 이것은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예절교육 영상의 24와 42라는 숫자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야 마는 족속들이니까. 인간은 무의미를 견딜 수 없다.


 드라마 비프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하려고 산 캠핑화로를 반품하려 했더니, 직원이 반품 그만하라고 비꼬는 아이러니. 죽음의 순간에 만난 죽이고싶은 인간. 행복이 이뤄졌다 싶을때 다시 시작되는 고통. 이쯤 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의미를 향해 달려갔더니 무의미로, 사랑이 증오로, 행복이 불행으로 뒤바뀌는 순환. 인생은 모래시계같다. 모래가 다 떨어질때쯤 누가 맘대로 다시 뒤집는다는 것이 엿같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를 하나 만들었다. 태초의 인간은 머리가 두 개, 팔다리가 각각 네 개, 심장이 두 개로 현재의 두 인간이 합쳐진 형태였다는 것이다. 남녀뿐만이 아니라 남남, 여여도 가능했다니 PC하기까지.. 어쨌든 제우스가 오만해진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두 동강 내버린 형태가 지금의 우리라고 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세상은 캐치-22로 가득 차있고, 한 사람의 삶은 비어있는 퍼즐이다. 모래시계는 끊임없이 뒤집히고, 방금 얻은 퍼즐이 내가 찾던 한 조각인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다. 이 탐색이 언제 끝날지조차 알 수 없다. 어릴때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영혼의 반쪽을 만나는 날을 꿈꿨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만났다고 기뻐하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캐치-22로 모래시계가 뒤집혔지만. 그래도 때론 24가 42로 뒤집혀 답을 줄 때도 있겠지.


 소설과 드라마 모두 비슷하게 개판인 세상을 그리지만, 결국 드라마 비프의 결말에 마음이 간다. 인생은 영혼의 짝과 함께하는 2인3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다리가 부러진 에이미와 팔이 부러진 대니가 절뚝이며 걸어가는 것에 좀 더 가깝다. 22라는 숫자처럼 꼭 닮은, 비슷하게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드라마가 끝난다. 비어있는 것은 내 안의 퍼즐이 아니라 어쩌면 나와 너 사이의 공간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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