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출간 40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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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열여드레 그날 해 질 녘이 다 되어서 군인들이 두대의 두대의 스리쿼터에 분승해서 떠난 다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운동장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조회대 뒤 우익 가족이 있는 데로 몰려 살아남은 가족끼리 서로 붙안고서 마을에서 들려오는 타 죽는 소 울음보다 더 질긴 울음을 입에 물고 있었다. 내 입에서도 겁먹은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운동장의 진창흙은 함부로 내달린 스리쿼터 바퀴자국으로 여기저기 무섭게 패어 있고, 벗겨진 만월표 고무신짝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다. 
그 위로 불타는마을의 불빛이 밀려와 땅거죽이 붉게 물들었다. 

교실 창이 이내 벌게졌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하늘 가득히 붉은 노을처럼 번져가는 불기운에 압도되어 더욱 서럽게 곡성을 올릴 뿐 누구 하나 울타리께로 가서 불타는 마을을 직접 내려다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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