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0교시
정효찬 지음 / 이다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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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th-Nov-2008

 

  가필드 공원의 식물원에 설치되었던 니키 드 생 팔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들을 작년엔 그저 건성으로 보았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던 가을에 유빈이와 함께 몇 번 더 찾아가서 보긴 했어도 별 생각없이 놀러가는 기분으로 보고 말았다. 그녀의 작품들이 유명하긴 했지만,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고, 작품 감상보다는 유빈이와 산책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더 그러했다. 실제로 본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은 디카에 기록을 하는 차원으로 남겨 두었지만 산다고 바빠서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미술 0교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의 사진들이 기억나서 찾았다. 만일, 미술0교시를 읽지 않았다면 그 사진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다른 무수한 이미지 파일 속에 숨겨졌을 것이다. 

 

  미술 0교시를 읽고 나서 니키 드 생 팔의 생애가 궁금했고, 이름도 생소하기만 했던 한 여성의 삶이 그 책을 읽으면서 눈에 뜨였다. 그래서 나도 이참에 니키 드 생 팔에 대해서 좀 더 공부를 했다. 예전에 기록해 둔 나의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다시 본 그녀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찍어 두지 않았다면 찾아 보기 어려운 그녀의 작품들이기에 이럴 땐 내가 찍새라는 것이 참 만족스럽다.

 

  실제 작품보다 찍어서 복제해 둔 사진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처음 그녀의 진짜 작품들을 바라보았을 땐 배경지식이 전무했고, 단지 여성이 만든 조형물이라는 정도였다. 한마디로 내가 그 작품들에 대해 무지했고, 예술품보다는 내 아이, 유빈이의 안전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 0교시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책 속에 등장한 그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니까 '미술 0교시'는 니키 드 생 팔의 작품과 내가 소통할 수 있게 해 준 매개체였던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니키 드 생 팔은 책에서 그다지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책의 부분이긴 하나, 니키 드 생 팔의 생애와 그녀의 작업들을 읽으면서 내 삶도 되돌아보았다.

 

  책을 펼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은 아니다. 모든 책들을 그렇게 읽어야만 한다면 나처럼 모범생도 아니고, 학구적인 인물이 아닐 경우, 책으로 인해 내 삶이 버거워질 것이다. 책은 언제나 나의 필요에 의해서 구입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읽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필요한 부분을 위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볼만큼 나는 책 구입에 인색했다. 도서관 대여기간 때문에 불편하니까 책을 구입했고, 부분부분 참조만 했던 책들도 꽤 된다. 책을 만든 이도, 책에 박식한 이도, 책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책을 쓴 사람이나, 만든 사람의 의도에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부분부분만 골라 정보와 지식을 흡수한 책 역시 내겐 필요한 책이다. 다 읽지 못한 책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책으로 기억이 되면 책장에 잘 모셔 둔다. 책을 읽을 시간은 앞으로도 더 많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어렵거나 따분한 부분은 나이가 좀 더 들면 쉽게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에서이다. 다시 볼 필요가 없는,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라면 몰라도 내가 골라 산 책들과 때론 선물받은 책들은 언제나 나를 시시때때로 성장시켜 주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음반을 살 때 실려 있는 곡이 모두 만족스러워서 구입을 한 것은 드물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만족을 주는 음반이나 책은 없었다. 사람도 완벽하기 때문에 만나거나 좋아하기 보다는 나와 대화가 가능하고 서로 이해가 되기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때론 음반자켓이 멋있어서, 또는 곡의 제목이 근사해서, 음반에 실린 한 두 곡의 선율에 매료되어 구매하기도 하고, 단 한 곡이라도 만족스러우면 그 음반은 내게 귀한 음반이 된다. 요즘은 컴퓨터가 대세이기에 곡을 들어보고 맘에 드는 곡만 MP3로 다운을 받아 구입을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해도 나는 아직까지 음악은 꼭 CD로 구매하여 듣는 편이다.

 

  미술 0교시에서 니키 드 생 팔에 대한 이해도가 넓혀 졌으니, 내게 미술 0교시가 소중하고 귀한 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특히, 나같이 평면의 사진에 관심을 두고 살며 입체 조형물에는 문외한이었던 사람에게 이 책은 조각과 조소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기 전엔 '니키 =  나나' 밖에 몰랐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니키 드 생 팔의 작품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도 잊고 살았다. 그 사진들을 다시 찾게 하고,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이끌어 준 <미술 0교시> 정효찬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그의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한 이디미디어 출판관련 사람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또한 이 공간에 기록하기 위해, 다시 책을 들춰 보고 자료를 찾아 공부하게 이끄는 나의 블로그도 참 고맙다. 이러한 나의 블로그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는 블로거님들 역시 감사하다. 블로그의 활발한 소통으로 나의 생활이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도록 이끌어 주기에 보람을 느낀다. 디카에 불과하지만 찍어 둔 스냅사진을 정리하면서 일상생활에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신분이 전업주부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도 책 한 권과 블로거와의 소통은 나를 지적으로 즐겁게 성장시켜 주었다. 이젠 블로그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때론 흔들리는 나의 정신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준다. 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그녀의 고통을 간접 체험했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니키 드 생 팔의 생애를 알게 해 준 미술0교시. 내게 책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대상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미술 0교시> 이 책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책과 전혀 소통을 하지 못한, 어느 방해꾼 블로거의 등장으로 미술0교시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 훼방꾼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Star fountain 1999)

 

파란 여성의 별 분수라는 조형물입니다.

두 개의 단지에서 물이 흘러 내리는 장치였는데, 

내부의 기계점검으로 일시적으로 작동이 멈추었던 날입니다.

 



 (Horus et sa grace, Horus and his grace, 1996)

 

매의 모습을 한 태양신과 그의 영광이라는 작품입니다.

그의 영광은 관능적이고 생명력이 풍부한 여성이군요.^^

 



 (Clarice again, 1966)

 

클라라 clara라는 여성이름의 또 다른 별칭입니다.

슈만의 클라라도 아이를 많이 낳긴 했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시킬만큼

풍만한 여성의 모습니다.

 

이 작품은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안내가 있어요.

작품 제작연도가 오래되어서 그런 것도 있고,

개인의 소장품이라서 그렇답니다.

 



 

나나의 시리즈가 있던 습지 실온 식물원 내부입니다.

 



 

한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죠.

운동감이 넘칩니다.

등에서 물줄기가 나와요.

 



 

여기도 한발로 몸을 지탱하고 있어요.

온 몸에서 물이 사방으로 쏟아집니다.

 

미국에 와서 이런 몸매의 여성들을 직접 보고 많이 놀랬었는데,

니키 드 생 팔은 자신의 작품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었네요.

흑인 여성을 형상해 낸 모습입니다.

미국엔 많은 흑인 여성들이 혼자 아이들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눈엔 몸의 문양은 자웅동체 아메바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생명의 젖줄,

가슴에는 꽃과 하트 문양을 보게 됩니다.

균형감각이 참 놀랍습니다.

 



 

저 육중한 몸집인데도

발끝으로 살짝 딛고

넘어지지 않는 모습이라니...

 



 

실온 식물원에는 저렇게 연못이 있는데,

니키 드 생 팔의 조형물로 활기와 생명력이 넘쳐났어요.

 



 

(Les trois graces, 1999)

같은 해에 제작된 작품들입니다.

유빈이도 영광스러운 세 여인들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죠.

 



 

연못으로 물이 흘러가도록 조성된 개울입니다.

인공적으로 설치했는데 100년의 세월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유빈이: 어머, 저기 내가 좋아하는 개울물이 흐르네..

 



 

개울가에 서성이는 유빈이

그냥 두면 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정말 신경쓰여요.

이끼가 많아 미끄럽거든요.

 



 (Grand elephant vase,1991)

 

여긴 숲 속의 코끼리

코끼리 등이 화병처럼 식물을 꽂을 수 있게 되었어요.

 

시카고에는 날씨가 추워서 코끼리가 죽고 없습니다.

여름에 딱 한번 보았는데 동물원의 코끼리가 참 안쓰럽더라구요.

2년 전에 죽고 나서 이젠 코끼리를 볼 수 없어요.

 

니키 드 생 팔의 코끼리로 대리만족하며 쓰다듬는 유빈입니다.

 



 (Chair, 1998)

 

근육질의 단단한 남자처럼 보이네요.

의자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주황색 몸매를 한번 쓸어보는 유빈이^^

몇 번 데리고 다녔더니 많이 대범해졌어요.

 



 

그 의자의 벨트입니다.

꽃들로 가득 찼네요.^^

 



(Chair, 2000) 

 

옥구슬같은 타일로 장식된 의자이지요.

매끈하면서도 앉으면 엉덩이 지압효과까지^^

참 편안했던 의자입니다.

 



 

그 의자의 젖꼭지입니다.

역시나 꽃무늬네요.^^

 



 

의자의 머리부분인데,

아주 작은 해골이 있어서 저도 놀랬어요.

 

아버지를 관 속에 묻고,

자신의 상처가 된 남자의 죽음을 늘 의식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긴 그녀가 그 의자를 만들었던 같은 해에

만든 해골의 내부입니다.

 

사이즈가 아주아주 컸어요.

치아 사이로 유빈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보이세요?

 



 

해골의 내부랍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과

반.짝.임.에 유사성이 보이네요.

 



(La Caveza, skull 2000)

 

죽음까지도 유쾌하게 형상해 낸 니키 드 생 팔의 해골.

죽기 2년 전에 저런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의 죽음도 함께 준비해 나갔겠죠.

이렇게 화려하고 거대하며

친근한 해골은

그녀 덕분에 처음 봤습니다.

해골,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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