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0교시
정효찬 지음 / 이다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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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0교시를 읽었다. 조소를 전공한 저자 정효찬은 나의 작은 오빠와 동갑내기이다. 그는 대학 강사, 일명 '지식의 보따리 장사'를 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이라는 권위적이고 안일한 수업방식보다는 미술에 읽힌 일화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열린 미술 교육을 그는 지향했다. 저자의 나이 때문인지 지금은 은행 간부로 일을 하지만, 한 때 미술학도 지망생이기도 했던 예전의 작은 오빠가 떠올랐다.

  아주 솔직하고, 조금은 수다쟁이처럼 느껴지기도 한 대학 강사의 생생한 수업노트를 펼쳐 보는 기분은 읽는 내내 즐거웠고, 나와는 전공분야가 달라서 상세한 조소 작업과정을 곁들인 설명은 흥미로웠다. 자신의 대학원 시절의 에피소드를 편안하게 현대 미술의 개념과 함께 풀어가는 것도 재미었었고, 그가 학생들과 소통하며 6년 간 수업을 하며 느낀 내용이 한 권의 책으로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의 저자는 미술관련 강사로는 상당히 성실하게 비춰진다. 그를 한번도 만나 보지 않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소위 미술대학이라는 곳에서 학생신분으로 있어 봤기에 감히 독자로서 내리는 평가이다. 현대미술에서 일반인이 보기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이 있는 것처럼, 미술관련 대학 역시 아무런 수업 준비 없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수업 중에 술 냄새 펑펑 풍기며 수업하던 불성실한 교수와 강사에 환멸을 느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강사라는 것이 일반 사무직과 비교했을 때 불안정하고 낮은 급료라 현실의 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로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때 학생의 신분이었고, 수업 중에 그것까지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미술 0교시의 저자는 나중에야 어떻게 변질될지 몰라도 그 책을 집필하는 동안은 꽤 괜찮은 대학 강사로 보였다. 수업이야 어떤 형태이든 미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과 소통을 하고 수업준비를 하는 모습은 과목이 현대 미술의 이해인만큼 아주 바람직해 보였다. 이러한 그의 수업방식은 권위적인 대학에서 엽기강사로 몰려 쫓겨난 경험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그래도 학생을 성실하게 가르친 노력이 인정되었는지 다시 대학강단으로 복귀를 한다.

  이 책은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에 한 챕터씩 5일 동안 읽는다면 일주일 동안 한 학기 미술 수업을 듣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생활 때문에 생계형으로 전공을 선택한 직장인이라면 환영할 만한 책이다. 그리고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교양서적으로도 부담 없이 읽혀진다. 대학 강사가 6년 동안 준비한 공부를 15,000원이라는 책 값 만으로 지식을 흡수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투자라고 본다. 학점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아주 경제적으로 미술공부를 할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적극 권하고 싶다.

  미술 0교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입시제도가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미술까지 0교시라니……. 미술은 자유로운 소통이 있을 때 생명력을 얻는 것인데, 책 제목이 이미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깎아 내리는 것 같아서 의아했다. 정말 책을 팔고 싶은 사람이 만든 책인지, 어떤 미술 관점에서 그 제목을 정했는지 그 내막이 참 궁금하다. 현대미술처럼 상식을 뒤집는 차원에서 설정한 제목이라 해도 판매가 목적인 책일 경우, 책 제목으로는 위험요소가 크지 않을까. 편집인에게 신랄한 비평이 될 수 있어 미안하지만 어쨌든 이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저의 솔직함을 용서해 주세요. 기획하신 편집인님……. 어쩌면 이런 것이 이슈가 되어 책이 뜰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책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땐 저는 책을 읽고 싶다는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그림 도판의 인쇄 상태가 상당히 좋았고, 책의 저자가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없었다. 마치 예전의 나의 작은 오빠를 책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별보기를 좋아해서 '하늘별'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주말마다 산에서 별을 보며 젊은 20대 청춘을 보냈던 작은 오빠. 자신이 좋아하던 미술을 전공했다면 이 책의 저자와 유사한 모습이 되어있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했다.


  과거의 미술과 현대 미술에 관한 저자의 견해는 나와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저자의 솔직한 글을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만일 조소 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조예가 깊었다면 책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로웠으리라. 고흐의 <아이리스>보다 경복궁의 하늘이 더 좋았던 것을 사진으로 찍어 독자에게 보여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글 속에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미술 대학원을 졸업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주부의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 가장 끌리는 내용은 아무래도 여성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3장, 끝나지 않는 사랑> 중에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1930~2002)의 작품과 그녀의 삶이 내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시선을 머물게 했다. 니키 드 생팔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앤디 워홀을 총으로 쏘았던 발레리 솔레나스(Valerie Solanas, solanis 1936~1988)처럼,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발레리 솔레나스가 사기꾼 같은 앤디 워홀을 만나 자기 삶을 파괴해 나갔던 것과는 달리, 니키 드 생팔은 슈팅 페인트(Shooting paints1961~1963, 총으로 그녀를 억압한 대상에 붉은 물감을 채워 쏘는 행위 예술)로 자가 치유를 선택한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에서 두 자녀를 낳았지만, 남성중심의 독재적인 가정과 보수적인 아내 역할을 거부했다. 자신을 억압해 온 아픈 기억들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그녀는 미술을 선택했고, 두 번째 남편인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를 만나면서 그녀의 작품은 꽃을 피우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여성은 인생의 반려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녀에게 장 팅겔리는 미술 작업 동반자로서 이상적이었고, 16년간 스튜디오에서 함께 지내다가 1971년에 그와 재혼을 한다. 결혼하였어도 그는 미술 작품을 함께 제작하는 대등한 관계를 지켰고, 그녀의 상처를 함께 하고 치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Image:Tinguely by Wolleh.jpg 
Jean Tinguely photographed by Lothar Wolleh

 

  니키 드 생팔의 작품에는 여성성이 넘친다. 꽃과 나나는 니키 드 생팔과 동일시 될 정도로 여성성의 상징이 잘 드러난다. 작년 여름 우리가 사는 시카고에도 가필드 공원의 식물원이 100주년 맞이 기념으로 니키 드 생팔의 작품들이 왔었다. 그녀의 작품은 식물원의 정원을 활기로 가득 채웠다. 그 때 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감탄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그녀의 슬프고도 아픈 삶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더욱 감동이었다. 평생 그녀를 괴롭혔던 어린 시절의 나쁜 기억들은 예술이라는 창작 행위를 몰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1973년 '아빠Daddy'라는 영화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상처를 드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악몽과도 같은 기억과 작별을 한다.


 
Niki de saint phalle

 

  그녀가 생전에 영향을 받았던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의 구엘공원Park Guell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아 지금 그녀가 죽고 없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의 정원과 나나의 조형물이 있는 도시는 언제나 생기발랄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숭고미까지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물로 잘 살려 내었다. 미술 0교시를 읽고 작년에 가족과 함께 식물원에서 니키 드 생팔의 조형물과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딸 유빈이에게는 니키와 같은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때의 그 사진들을 조심스럽게 다시 찾아 들춰 본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은 이 세상에 어쩌면 없다.

또 그런 상처 속에서 그냥 나를 던져 놓는다면

우리는 순수를 두 번 다시 경험하기 힘들 것이다." (미술 0교시, p.167)

  미술 0교시, 정효찬 지음, 이다미디어 출판. 이 책은 책의 표지와 외형을 많이 따지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나의 시각을 아주 불편하게 만든 책이다. 허나 책은 껍데기보다는 그 내용이 알차야 좋은 책이기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읽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맘에 담고 싶은 글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참 만족스러웠다. 올 연말에는 이 책을 은행에서 일하는 작은 오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고 싶다.


소통을 위한 엉뚱한 생각…….

 

  정효찬님, 저는 미국에 거주하는 당신의 애독자입니다. 구겐하임에 있는 잭슨폴록의 그림을 저도 직접 봤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런 감동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그림을 위해서 구겐하임 여사와 로비를 벌였던 잭슨 폴록의 불행과 그 그림을 그리게 하고 구겐하임 여사와 로비를 성사시키느라 아이 낳기를 거부하면서까지 내조를 했던 그의 조강지처가 떠올랐습니다. 잭슨 폴록의 실제 그림은 사이즈와 질감의 차이일 뿐, 그것에서 전해지는 감동보다는 ‘돈 많은 구겐하임 여사의 취향이 참 특이하구나.’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보고 참 실망했고, 그의 작품은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보다 볼거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고흐의 삶도 불행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렇게 유명하긴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화가의 생애가 담긴 글의 힘, 필력의 힘이 무섭죠. 대체로 교육받은 일반 사람들은 문자에 더 익숙하고 스토리에 혹 하니까요. 그러니 잭슨 폴록의 실제 작품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절대 기 죽지 마십시오! 고흐의 작품은 그가 남긴 편지만큼 처절해 보이지 않았으며,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만큼 흥미롭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인님, 저는 이 책을 잘 읽은 독자로서 표지가 너무 맘에 안 듭니다. 훈련된 제 시각에 인내심을 테스트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미술 0교시가 잘 팔려서 다시 책을 만들게 된다면 표지를 좀 어떻게 개선해 주세요. 저라면 모나리자만 남겨 두겠습니다. 모나리자를 0교시 옆에 배치하고 나머지 엉뚱한 소리하는 그림의 인물들을 다 뒤로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표지 아래의 그림 세 가지를 꼭 전부 쓰고 싶으시다면 브란쿠시의 조각상은 가운데 두고, 왼쪽엔 클림트의 그림, 오른쪽엔 고흐의 그림을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시선처리가 조금은 안정될 것 같습니다. 표지가 너무 산만하고 복잡해서 표지를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거든요. 교정보시는 분들이 오타를 바라볼 때 느끼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저도 이 표지를 보면 자꾸만 손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지요? 죄송해요. 딴지를 너무 많이 걸어서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책의 고수이신 편집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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