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 노마드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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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교수이자 하버드 박사인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교수)의 책을 Ebook으로 읽다가 정말 꼭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서 여기 옮긴다. Ebook이라 페이지 수는 적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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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년 동안 우송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아니고 열의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내 수업을 들었던 많은 학생들을 보면 그들도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비치는 것은 성적만으로 평가하고 그에 맞춰 대우하는 사회의 폭력에 학생들이 굴복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심각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몰았는지, 왜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자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게 했다. 그 뒤 그들에게서 놀라운 변화들이 생겼다. 이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이 매우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대할 때 똑똑치 못한 아이로 단정 짓고 다루면 그 아이는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학교에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한 아이라도 그가 가능성 있는 아이로 대한다면 그 아이는 진짜로 그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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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을 감은 인간 - 상대의 양면성을 꿰뚫어 보는 힘
리사 맥클라우드 지음, 조연수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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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삼각형"은 이 책의 원 제목이다. 이 책은 세일즈맨을 위한 의사소통전문가가 쓴 책으로 타협,합의, 설득이 아닌 상생과 거듭남(?)의 의사소통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진실의 삼각형의 개념: 상대의 의견과 나의 의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거나 타협,합의하는 게 아니라 두 의견이 방향을 일치시켜서 하나의 꼭짓점, 즉 더 높은 수준의 해결책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마음에 들어온 말씀들.

111p. 어떤 일이든간에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것은 모두 세일즈 영역에 속한다.

135p. 무능한 세일즈맨에게 죄가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고객을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관점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138p. 탁월한 인간관계의 첫걸음은 바로 상대에게 오해를 사지 않는 것이다.

138p.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다.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으면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157p.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직업을 잠시 보류한 사람은 상대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오히려 분개한다.

181p. 우리는 선택할 필요가 없다. 둘 다 하거나 둘 다 될 수 있다.

222p. 우리가 기다리던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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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고지훈 지음, 고경일 그림 / 앨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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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

59쪽. '학출'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노동운동에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를 능가하는 성실함이었다. 전직 안기부 간부 출신이자, 고문의 배후라는 공공연한 의심을 받는 이에게 칭찬을 받게 하는 것 역시 그의 성실함이다.

 

 성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소중하게 여겨진 '인간의 덕목'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한때 김문수가 헌신했던 노동운동은 그 같은 '성실성'에도 계급적 이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노동자를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저 '비인간적인 체제'아래에서의 '성실'을 거부한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스트라이크(파업)'이었다.  

 

 어떤 사회체제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길 요구하는 것. 이는 공동체 구성원의 맹목적 성실함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모든 독재자들의 염원이었다. 히틀러, 스탈린과 같이 여기엔 별도의 좌우의 구별도 없었다.

 

 김문수. 한때 그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노동자들의 불성실함'을 투쟁수단으로 요구했을 그는 이제 저 계층구조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오로지 성실함만을, 맹목적인 성실함만을'요구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범인간으로 우뚝 섰다. 이 마지막 전향의 파괴력이야말로 앞선 두 종류의 전향보다 훨씬 더 깊고 또 오래도록 그 효과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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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교육과 일본인
이나바 쯔기오 지음, 홍준기 옮김 / 온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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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한국에 `가르치러` 온 일본인에 대한 연구.이 책에는 1900년대 일본에서 와서 한국 교육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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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교육과 일본인
이나바 쯔기오 지음, 홍준기 옮김 / 온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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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재단에서 연구 업적으로 '족보'도 인정해주는지 모르겠는데 만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번역이나 사전 편찬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서글프고 우울한 일이다. 나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족보나 가계보를 복원해내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임을 느끼게 된다. 특히 문헌에 이름만 남아있고 그 이름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도대체 이 사람이 뉘집 자제분인지 무척 궁금해지는데 어찌어찌 찾아서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신지 선행 연구자가 남겨주신 기록을 보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고루 이극로 전기나 석인 정태진 전기처럼 연구자가 연구 대상의 일가친척이어서 기록을 남겨 주는 것도 고맙다. 일가친척이 아니더라도 먼저 간 님의 업적과 이름을 기억하고자 그를 기리는 책을 내는 사람도 고맙다. 자료는 남겨놓으면 누가 봐도 본다.

 

   그런데 루돌프 사슴코처럼 길이길이 기억되어야 한다고 선행 연구자들이 판단해서 가계보나 족보를 남긴 경우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인물들처럼 인생을 서술할 때 육하원칙에 공란이 생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후손이나 일가친척이 없는 사람이거나 일제 시대에 이 땅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초학자의 입장에서 이름만 보고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전공 분야에 아주 깊이 연관된 사람이 아닌 이상 관련 연구자가 없어서 잊혀지기고 하고, 일본 사람이라면 한국인이 아니니까 한국에 기록이 없으니 연구자가 직접 일본 가서 뒤지거나  금전적 여력이 있으면 시티헌터나 김전일을 고용해서 뒷조사를 해야 할 판이다. 

 

   최근 친일파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친일파가 아니라 조선에 왔던 일본인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이 연구의 원조는 일본 책들이다. 지금 읽고 있는 <구한말 교육과 일본인>도 1990년대에 일본 큐슈 대학의 교육학 교수 이나바 쯔기오 선생의 연구를 모은 책이다. 이나바 쯔기오 교수는 큐슈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1970년대에 고려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일본에 돌아가서 구한말 교육에 관여한 일본인들에 대해 연구했다. 이 책에는 1900년대 일본에서 와서 한국 교육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일본인의 이름들 중에 내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여기 적는다.

 

타카미 카메(高見龜) : 1896년 2월 학부에서 발행한 <신정심상소학>에서 소학 교과서 편찬원으로 기록됨. '時事新報' 특파원으로 청일전쟁 전부터 조선에 와 있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후쿠자와 유키치와 관련이 있는 인물. 관립소학교 개설에도 관여.

 

아사카와 마츠지로(麻川松次郞) : 1896년 2월 학부에서 발행한 <신정심상소학>에서 소학 교과서 편찬원으로 기록됨.1892년 5월 이래 경성 일본인 거류민 소학교 교장 대리로 일함.

 

* 한국인 편집위원 현채, 김택영등과 타카미, 아사카와가 관여한 교과서 : 국민소학독본, 신정심상소학, 조선약사, 만국약사.

 

키무라 토모하루(木村知治) : 이 책에서 조선 최초의 교육학서라고 일컫는 <신찬교육학>(1895년 9월 15일 간행)의 저자.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郞) (1868~1936): 영어학자. 1891년 6월에 정부가 <일어학당>을 설립하게 위해 초빙함. 관립 일어학당의 초대 교관. 1890년 동경대학 졸업, 전공은 언어학과 국문학. 언어학과 주임인 쳄벌레인(Chamberlain)에게 언어학을 배움.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94~1946) : 동경외국어학교 조선어과 출신. 동료로 고쿠부 쇼타로, 오오기 야스노스케(大木安之助), 시오카와 이치타로((鹽川一太郞)등이 있음, 1895년 봄에 <을미의숙> 창립하고 교장으로 재직.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짐.

 

요사노 텟칸(與謝野鐵幹) :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제자임.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동생 카에엔(鮎貝槐園)의 친구. 스승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요청으로 1895년 4월 <二六新報>의 학예주임을 면직하고 을미의숙의 교사로 일함. 이 책의 254쪽에 보면 요사노 텟칸의 시에 "한국의 산에 벚꽃을 심고 한국인에게 일본 남아의 노래를 부르게 하자"는 내용이 있고, 1968년에 나온 <명치문학전집> 51권 13쪽에 "고려 민족에게 일본 문법을 가르치고 겸하여 일본 창가를 부르게 한 것은 특히 槐園과 내가 효시이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함.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짐.

 

시데하라 타이라(幣原坦) :  1870년생. 1893년 동경대학 문과 국사학과 졸업. 1898년 야마나시현립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1900년 교장 재임 당시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수로 전임하여 재직 상태로 한국정부에 학정참여관으로 고용. 1900년 11월 관립중학교 교사가 됨. 1905년 2월 16일 학부 학정참여관에 임명. 실질적으로  학부대신의 역할을 함. 식민지 교육의 기본 노선을 만듬. 한국의 초등학교에 일본인 교원을 투입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음. 1905년 6월 학부교과서편집촉탁 경성학당장 와타세 츠네키치(渡瀨常吉 당시 38세)와 교과서편집촉탁과 중학교 교사를 겸직한 다카하시 토오루(당시 26세)와 <일어독본>등을 편찬.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경질.

 

이노우에 카쿠고로(井上角五郞) (1860~1938) : 유길준, 박영효와 함께 <한성순보>와 <한성주보>발행에 관여. <경응의숙> 출신으로 후쿠자와 유키치 아들의 가정교사이자 식객으로 지내고 고토 쇼지로의 비서로 일함. 이 책 75쪽에 의하면 이노우에 카쿠고로의 회고가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츠키지 활판소에서 조선의 신문을 위해 한글 활자를 주문했고 이노우에가 이를 사서 조선에서 최초로 사용한 한글 활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학자 강위(姜瑋)에게 한국어와 국한문 혼용 문장을 배웠다고 한다.

 

타와라 마고이치(俵孫一) : 통감부 설치 이후 통감부 서기관에서 학부 차관이 되었다. 학정 사무의 총지휘자이자 책임자였다고 한다. 메이지 28년 동경대 졸업, 오키나와현 참사관으로 취임. 이후 카고시마현 내무부장으로 일하다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탁. 일본에서는 일반 행정가였지 교육행정에 관한 경력은 없었다고 한다.

 

미츠지 츠우조(三土忠造) :  1871년 카가와현 태생. 시데하라 타이라 이후 부임한 학정참여관. 학부 교과서 편찬에 종사함. 1898년에 <中等國文典(三土文典)> 편찬.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수였다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탁되어 1906년 학정참여관으로 부임함.  이 당시 교과서에 관여한 편찬진은 사무관 타나카 겐코(田中玄黃), 마츠미야 슌이치로(松宮春一), 우에무라 마사키(上村正己), 코스기 히코지(小杉彦治)였다고 함.  일본인 교원 인선의 책임자이자 감독자로도 일함.

 

마츠모토 무네하루(松本宗治) : 미츠지 츠우조의 동경고등사범학교 후배. 1908년 4월부터 관립 한성사범학교 교수로 종사하며 학부 위촉을 받아 <이과서> 이과 교과서를 편찬. <일어독본>외 학부 편찬 교과서로는 <이과서>만이 일본어로 쓰여있다. 1910년 10월 9일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 와세다대학의 창립자. 정치가. 이나바 쯔기오는 오오쿠마가 1910년 9월 15일 <교육시론> 제 915호에 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교육 통치책과 1910년 1월 <조선> 제 35호에 쓴 조선인 대상 일본어 교육론, 1911년 1월 <교육실험계> 제27권에 쓴 일본인이 조선어학습 불요론을 인용하여 오오쿠마가 초기 총독부 당국보다 더 철저한 동화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호리모토 레이조(掘本禮造) : 1881년 4월 별기군 교관으로 온 대한제국 고용외국인 1호. 일본 육군 소위. 임오군란 때 사망.

 

마스도 츠루키치(增戶鶴吉) : 1910년 평양고등학교장, 1911년  한성사범학교 학감. 구한국 교원 양성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 1911년 11월 한성고등보통학교 교유에 임명되었으나 그 직후에 사직.

 

 

    이 책의 단점은 책 뒤에 색인이 없다는 것이다. 색인이 있었으면 필요한 사람 이름만 찾아서 필요한 부분만 읽고 정리했겠지만 이 책을 대충 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고 진지하게 읽어달라는 저자와 역자와 편집자의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결국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이 책의 번역자인 홍준기 선생은 교육공무원이고 열정적인 블로거이다.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 책의 번역자인 홍준기 선생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주소는 http://blog.daum.net/idishong/이다 . 이 책을 읽게 해 주신 번역자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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