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한말 교육과 일본인
이나바 쯔기오 지음, 홍준기 옮김 / 온누리 / 2006년 4월
평점 :
연구재단에서 연구 업적으로 '족보'도 인정해주는지 모르겠는데 만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번역이나 사전 편찬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서글프고 우울한 일이다. 나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족보나 가계보를 복원해내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임을 느끼게 된다. 특히 문헌에 이름만 남아있고 그 이름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기록이 없는 경우에는 도대체 이 사람이 뉘집 자제분인지 무척 궁금해지는데 어찌어찌 찾아서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신지 선행 연구자가 남겨주신 기록을 보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고루 이극로 전기나 석인 정태진 전기처럼 연구자가 연구 대상의 일가친척이어서 기록을 남겨 주는 것도 고맙다. 일가친척이 아니더라도 먼저 간 님의 업적과 이름을 기억하고자 그를 기리는 책을 내는 사람도 고맙다. 자료는 남겨놓으면 누가 봐도 본다.
그런데 루돌프 사슴코처럼 길이길이 기억되어야 한다고 선행 연구자들이 판단해서 가계보나 족보를 남긴 경우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인물들처럼 인생을 서술할 때 육하원칙에 공란이 생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후손이나 일가친척이 없는 사람이거나 일제 시대에 이 땅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초학자의 입장에서 이름만 보고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은 전공 분야에 아주 깊이 연관된 사람이 아닌 이상 관련 연구자가 없어서 잊혀지기고 하고, 일본 사람이라면 한국인이 아니니까 한국에 기록이 없으니 연구자가 직접 일본 가서 뒤지거나 금전적 여력이 있으면 시티헌터나 김전일을 고용해서 뒷조사를 해야 할 판이다.
최근 친일파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친일파가 아니라 조선에 왔던 일본인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이 연구의 원조는 일본 책들이다. 지금 읽고 있는 <구한말 교육과 일본인>도 1990년대에 일본 큐슈 대학의 교육학 교수 이나바 쯔기오 선생의 연구를 모은 책이다. 이나바 쯔기오 교수는 큐슈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1970년대에 고려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일본에 돌아가서 구한말 교육에 관여한 일본인들에 대해 연구했다. 이 책에는 1900년대 일본에서 와서 한국 교육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일본인의 이름들 중에 내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여기 적는다.
타카미 카메(高見龜) : 1896년 2월 학부에서 발행한 <신정심상소학>에서 소학 교과서 편찬원으로 기록됨. '時事新報' 특파원으로 청일전쟁 전부터 조선에 와 있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후쿠자와 유키치와 관련이 있는 인물. 관립소학교 개설에도 관여.
아사카와 마츠지로(麻川松次郞) : 1896년 2월 학부에서 발행한 <신정심상소학>에서 소학 교과서 편찬원으로 기록됨.1892년 5월 이래 경성 일본인 거류민 소학교 교장 대리로 일함.
* 한국인 편집위원 현채, 김택영등과 타카미, 아사카와가 관여한 교과서 : 국민소학독본, 신정심상소학, 조선약사, 만국약사.
키무라 토모하루(木村知治) : 이 책에서 조선 최초의 교육학서라고 일컫는 <신찬교육학>(1895년 9월 15일 간행)의 저자.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郞) (1868~1936): 영어학자. 1891년 6월에 정부가 <일어학당>을 설립하게 위해 초빙함. 관립 일어학당의 초대 교관. 1890년 동경대학 졸업, 전공은 언어학과 국문학. 언어학과 주임인 쳄벌레인(Chamberlain)에게 언어학을 배움.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94~1946) : 동경외국어학교 조선어과 출신. 동료로 고쿠부 쇼타로, 오오기 야스노스케(大木安之助), 시오카와 이치타로((鹽川一太郞)등이 있음, 1895년 봄에 <을미의숙> 창립하고 교장으로 재직.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짐.
요사노 텟칸(與謝野鐵幹) :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제자임.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동생 카에엔(鮎貝槐園)의 친구. 스승 아유가이 후사노신의 요청으로 1895년 4월 <二六新報>의 학예주임을 면직하고 을미의숙의 교사로 일함. 이 책의 254쪽에 보면 요사노 텟칸의 시에 "한국의 산에 벚꽃을 심고 한국인에게 일본 남아의 노래를 부르게 하자"는 내용이 있고, 1968년에 나온 <명치문학전집> 51권 13쪽에 "고려 민족에게 일본 문법을 가르치고 겸하여 일본 창가를 부르게 한 것은 특히 槐園과 내가 효시이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함.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짐.
시데하라 타이라(幣原坦) : 1870년생. 1893년 동경대학 문과 국사학과 졸업. 1898년 야마나시현립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1900년 교장 재임 당시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수로 전임하여 재직 상태로 한국정부에 학정참여관으로 고용. 1900년 11월 관립중학교 교사가 됨. 1905년 2월 16일 학부 학정참여관에 임명. 실질적으로 학부대신의 역할을 함. 식민지 교육의 기본 노선을 만듬. 한국의 초등학교에 일본인 교원을 투입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음. 1905년 6월 학부교과서편집촉탁 경성학당장 와타세 츠네키치(渡瀨常吉 당시 38세)와 교과서편집촉탁과 중학교 교사를 겸직한 다카하시 토오루(당시 26세)와 <일어독본>등을 편찬.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경질.
이노우에 카쿠고로(井上角五郞) (1860~1938) : 유길준, 박영효와 함께 <한성순보>와 <한성주보>발행에 관여. <경응의숙> 출신으로 후쿠자와 유키치 아들의 가정교사이자 식객으로 지내고 고토 쇼지로의 비서로 일함. 이 책 75쪽에 의하면 이노우에 카쿠고로의 회고가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츠키지 활판소에서 조선의 신문을 위해 한글 활자를 주문했고 이노우에가 이를 사서 조선에서 최초로 사용한 한글 활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학자 강위(姜瑋)에게 한국어와 국한문 혼용 문장을 배웠다고 한다.
타와라 마고이치(俵孫一) : 통감부 설치 이후 통감부 서기관에서 학부 차관이 되었다. 학정 사무의 총지휘자이자 책임자였다고 한다. 메이지 28년 동경대 졸업, 오키나와현 참사관으로 취임. 이후 카고시마현 내무부장으로 일하다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탁. 일본에서는 일반 행정가였지 교육행정에 관한 경력은 없었다고 한다.
미츠지 츠우조(三土忠造) : 1871년 카가와현 태생. 시데하라 타이라 이후 부임한 학정참여관. 학부 교과서 편찬에 종사함. 1898년에 <中等國文典(三土文典)> 편찬.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수였다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탁되어 1906년 학정참여관으로 부임함. 이 당시 교과서에 관여한 편찬진은 사무관 타나카 겐코(田中玄黃), 마츠미야 슌이치로(松宮春一), 우에무라 마사키(上村正己), 코스기 히코지(小杉彦治)였다고 함. 일본인 교원 인선의 책임자이자 감독자로도 일함.
마츠모토 무네하루(松本宗治) : 미츠지 츠우조의 동경고등사범학교 후배. 1908년 4월부터 관립 한성사범학교 교수로 종사하며 학부 위촉을 받아 <이과서> 이과 교과서를 편찬. <일어독본>외 학부 편찬 교과서로는 <이과서>만이 일본어로 쓰여있다. 1910년 10월 9일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
오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 와세다대학의 창립자. 정치가. 이나바 쯔기오는 오오쿠마가 1910년 9월 15일 <교육시론> 제 915호에 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교육 통치책과 1910년 1월 <조선> 제 35호에 쓴 조선인 대상 일본어 교육론, 1911년 1월 <교육실험계> 제27권에 쓴 일본인이 조선어학습 불요론을 인용하여 오오쿠마가 초기 총독부 당국보다 더 철저한 동화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호리모토 레이조(掘本禮造) : 1881년 4월 별기군 교관으로 온 대한제국 고용외국인 1호. 일본 육군 소위. 임오군란 때 사망.
마스도 츠루키치(增戶鶴吉) : 1910년 평양고등학교장, 1911년 한성사범학교 학감. 구한국 교원 양성의 실질적 최고 책임자. 1911년 11월 한성고등보통학교 교유에 임명되었으나 그 직후에 사직.
이 책의 단점은 책 뒤에 색인이 없다는 것이다. 색인이 있었으면 필요한 사람 이름만 찾아서 필요한 부분만 읽고 정리했겠지만 이 책을 대충 읽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고 진지하게 읽어달라는 저자와 역자와 편집자의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결국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이 책의 번역자인 홍준기 선생은 교육공무원이고 열정적인 블로거이다.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 책의 번역자인 홍준기 선생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주소는 http://blog.daum.net/idishong/이다 . 이 책을 읽게 해 주신 번역자께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