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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에서 생각하는 모어교육
박정은 지음 / 일지사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쉬운 말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전공 책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한다. 이 책은 이민, 국제결혼 가정에서 일어나는 언어 문제에 대해 쉬운 말로 존조리,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공자가 아니라 외국에 사는 남들이 애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이 책은 4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1부는 캐나다의 언어 교육 제도에 대한 보고서이고 2부는 엄마의 언어로 아이를 길러야 하는 이유에 대한 논문, 3부는 재외동포 자녀의 한국어교육에 대한 논문, 4부는 한국인 가정과 국제결혼가정의 사례집이다.

 

이 책은 내가 신문 기사를 읽고 과연 이 주장이 타당한지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읽게 되었다. 우선 내가 밑줄을 그어 놓은 기사 내용을 먼저 여기 옮긴다.


소강준 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아빠가 한국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로 엄마랑 얘기하는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한국어의 정확한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어휘력도 낮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말 ''어눌'' 다문화가정 어린이, 정체성도 ''흔들'' 마이데일리 사회, 생활/문화 | 2008.09.14 (일) 오전 10:51

 

사실 이 기사는 여기 제시하기 좋아서 제시한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어가 서툰 이주 여성의 자녀들의 한국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음, 그래?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박한다. 그 내용이 2부와 3부에 제시되어 있다. 특히 2부에는 저자의 그 조곤조곤한 문체로 밑줄을 팍팍 긋고 싶은 문장들이 나온다. 몇 개 여기 옮긴다.

 

84쪽. 엄마의 언어는 모유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양육을 하는 엄마는 자신에게 가장 자신 있고 언어적 경험이 풍부한 언어로 육아를 할 권리가 있고 아이 또한 엄마의 언어를 접하며 자랄 권리가 있다. 그 누구도 이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

 

89쪽. 육아를 담당하는 엄마의 역할은 그저 아이에게 제 때에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서 말을 익히고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을 익힐 때까지는 대부분이 엄마놔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에 엄마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는 성인들끼리의 대화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중략)훈육은 바로 이러한 일상을 통해서 엄마의 철학과 인생관을 자녀에게 전하는 과정이다.(중략. 90쪽으로 이동) 엄마에게 가장 자신있는 언어로도 아이를 훈육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은데 과연 언어적인 경험이 부족한 현지어로 충분히 만족스럽게 훈육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저자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어느 나라에서 왔거나 결국 엄마가 아기를 낳고 길러야 하는데 엄마가 아기에게 자기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없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미식축구 스타 '하인즈 워드'의 엄마가 생각났다. 결국 이주여성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란다면 한국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하인즈 워드는 한국어로 길러준 엄마에게 영어로 고맙다고 말한다. 하인즈 워드가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그게 가능한 것이다.

 

저자는 엄마만 외국 출신인 가정에서 엄마의 언어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음을 수시로 밝힌다.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 육아가 성공하여 그 가정의 아이들이 이중언어화자가 된 사례도 제시하고, 하인즈 워드처럼 엄마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모국어를 구사하지만 엄마와의 강한 유대감, 가족 간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사례도 제시한다.

 

여기에 저자는 엄마의 언어와 아빠의 언어, 그리고 이들 모두가 이주자의 경우에서 제3의 공식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 자녀를 기를 때 언어 사용에서 상황 맥락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화용론적 해법인 셈이다. 분별 있는 언어 생활 교육이 이중 언어 교육과 직결된다는 주장인데 흥미롭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화자가 아니더라도 대화 참가자를 언어적으로 소외시키는 것은 그리 예의있는 행동은 아니다. 이른바 인터넷 통신 언어를 아무데나 사용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던가?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현재 한국의 이주여성 가족,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저소득계층의 이주여성 가족에게서 발생하는 언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법을 제시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어교육의 사회언어학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느끼는 점이지만 언어 교육의 문제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작다. 또한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고학력으로 자신이 소속된 지역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이들이지만 한국 농촌, 저소득계층의 이주여성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책은 '이주여성의 한국어 문제'에서 '언어 권리'를 잊고 있었던 나를 일깨워 주었다.  Spolsky의 "사회언어학"에 실린 '언어 권리'에 대한 내용을 여기 옮기며 글을 마친다.

 



① 인간에게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국가는 자국 내 언어적 소수집단이나 개인들이 언어적인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다.

 

② 다른 언어(다른 방언)을 사용한다고 해서 일자리, 교육, 사법, 의료보험등에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권리.

 



③ 한 언어의 화자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언어를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는 특권층 언어로 가려는 언어교체를 되돌릴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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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바꾸는 5분 혁명
가미오오카 도메 지음, 은미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은 전형적인 자기계발서, 저자는 일본인. 책 표지만 보면 요즘 흔하디 흔한 일본에서 온 실용형 자기계발서로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내 선입견을 치워야 했다. 이 책은 만화책이었다. 그것도 네컷 만화. 비빔툰이나 반쪽이, '오월의 개'같은 스타일을 생각하면 되겠다. 주제는 '일상 생활의 묵은 습관을 바꿔서 사는 것이 재미있어지는 방법'이다.

 

 저자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이다. 저자의 작업실은 저자의 가정이다. 집에는 두 아이가 있고 남편이 있다. 재택근무자는 집 밖으로 나가서 일하는 사람보다 집중도가 떨어지고 우울해 질 수도 있다. 저자는 재택근무자인 자신의 삶을 가꾸고자 한다. 그녀는 어김없이 돌아오는 원고 마감과 안 하면 표시나고 해도 표시가 안 나는 집안일과 한참 자라는 아이들 키우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 고민의 결과가 네컷 만화에 재미있게 담겨 있다.

 

 만화만 읽어도 재미있다.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다. 그리고 "햐, 이런 것은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은데?" 하는 내용도 있다. 물론 그것들이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단하지 않은 것들을 지켜서 저자가 훌륭한 재택근무자로, 집안에서 일과 살림을 잘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게 존경심이 느껴진다. 자, 이제 나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부터 치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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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법학자의 그림 이야기
김민호 지음 / 예경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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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법학하는 사람이나 미술사가, 미술평론하는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 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잘 쓴 책이다. 우선 글이 좋다. 잘 썼다. 법에 대한 이야기와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개연성있게 제시되어 있다. 법률 전문 용어도 글에 자주 나오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글 안에서 겉돌지 않게 제시되어 있다. 읽는 내 입장에서는 '법보다 미술이 가깝다.' 저자가 예시한 작품들은 유명한 그림들이고 또 잘 모르는 그림이더라도 책 안에 화보로 제시되어 있으니 봐서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면 되지만 법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니 낯설고 어색한 것들이 많다. 저자는 법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을 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 그런 거였어?'라는 말이 나온다.(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다 읽고 나서 다시 해 볼 참이다.) 거리가 멀어 보이는 주제를 통합해서 제시하고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 읽는 이에게 '어, 그런 거였어?'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 이게 참 내공이다. 부럽다. 읽고 나서 저자 홈페이지도 찾아 보았다.  http://web.skku.edu/~mkim/index.html 대단한 교수님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법학자는 언어학자보다 언어의 의미에 대해 신중하다. 법률 용어에서는 '-라고 본다'와 '-라고 추정한다'도 법적으로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나같은 덜렁쇠가 법학자가 안 된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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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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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프리슈(Max Frisch의 놀라운 단편소설 <책을 읽지 않는 책 애호가>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책 수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을 수집하는 일은 키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책 수집가는 말한다.

 

"책이 흔해 빠진 것이 되지 않도록, 습관 속에서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책을 보호해야만 해요. 모든 경험은 상당한 절제심과 엄청난 인내와 체념 그리고 강한 엄격함을 통해서 보존되어야만 해요."

 

- 엘케 하이덴라이히 "여자가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을 때 생기는 위험에 관해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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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전
조흔파 지음 / 아이필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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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조흔파 선생의 '악도리 쌍쌍'이라는 소설을 좋아했다. '꼬마전'도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얄개전은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 했다. 영화 '얄개전'의 이승현 소년과 소설 '얄개전'의 나두수의 이미지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얄개전'의 이승현 소년은 순진하고 착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소설 '얄개전'의 나두수는 정말 '독한 놈'이다. 강렬한 복수심을 갖고 있어서 절대 당하고는 못 살고, 상대방이 죽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수준으로 지독한 장난을 치고도 전혀 반성이 없다. 무서운 것도 없다. 교사, 종교, 학교, 가족, 어른들.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영화 '얄개전'을 먼저 봤기 때문에 '귀여운 장난꾸러기 이승현'을 생각하고 소설 '얄개전'을 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못 읽고 집어 치웠다. "난 정말 이런 애 싫어." 나두수에 대한 나의 평가였다. 

 

그리고 어제 얄개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상당히 놀랐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전쟁 직후인 50년대의 소설인데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과거가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 죽지 않는 아이. 부잣집 아들이어서 아쉬운 것 없이 신나게 사는 아이. 품행이 바르지는 않지만 그늘은 없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얄개전은 판타지인가? 어제 '얄개전'을 다시 읽고 혹시 이 소설이 번안 소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지, 이 당시 소년들 중에 두수와 같이 대책없는 개구장이가 있을 수도 있지. 1950년대의 한국을 손창섭 선생의 소설같은 분위기로만 규정하는 내가 편견에 차 있는 지도 모르지. 이 당시 영화가 흑백영화라 세상도 흑백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인 박창해 선생의 작품 '바둑이와 철수'의 '철수'는 일제 시대를 거친 적이 없는 것처럼 밝고 씩씩한 소년이다. 만주의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박창해 선생의 유년 시절이 '과거가 없는 소년' 철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당신의 증언에 의하면 만주에서 강아지를 친구처럼 키웠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할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말타기를 하고 아버지와 숨바꼭질을 하고, 동네에서 일본인, 러시아인, 중국인, 조선인 친구들과 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조흔파 선생의 '두수'라는 캐릭터도 '과거가 없는 소년'처럼 보인다. 이 당시 외국에서 나온 다른 소년 소설을 참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두수' 캐릭터의 문헌적 배경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하고 조사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조흔파 선생이 '두수'를 온전히 외국의 다른 소년 소설에서 가져 오지 않았다면 '두수'도 당신 안의 한 소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얄개전'을 읽고 조흔파 선생에 대한 학위 논문이나 연구 논문이 나온 것이 있나 좀 찾아봤는데 아직 나온 것이 별로 없었다. 아직 때가 안 된 것인지, 연구 대상으로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것인지 학계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의 작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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