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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전
조흔파 지음 / 아이필드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에 조흔파 선생의 '악도리 쌍쌍'이라는 소설을 좋아했다. '꼬마전'도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얄개전은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 했다. 영화 '얄개전'의 이승현 소년과 소설 '얄개전'의 나두수의 이미지가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얄개전'의 이승현 소년은 순진하고 착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소설 '얄개전'의 나두수는 정말 '독한 놈'이다. 강렬한 복수심을 갖고 있어서 절대 당하고는 못 살고, 상대방이 죽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수준으로 지독한 장난을 치고도 전혀 반성이 없다. 무서운 것도 없다. 교사, 종교, 학교, 가족, 어른들.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영화 '얄개전'을 먼저 봤기 때문에 '귀여운 장난꾸러기 이승현'을 생각하고 소설 '얄개전'을 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못 읽고 집어 치웠다. "난 정말 이런 애 싫어." 나두수에 대한 나의 평가였다.
그리고 어제 얄개전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상당히 놀랐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전쟁 직후인 50년대의 소설인데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과거가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 죽지 않는 아이. 부잣집 아들이어서 아쉬운 것 없이 신나게 사는 아이. 품행이 바르지는 않지만 그늘은 없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얄개전은 판타지인가? 어제 '얄개전'을 다시 읽고 혹시 이 소설이 번안 소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지, 이 당시 소년들 중에 두수와 같이 대책없는 개구장이가 있을 수도 있지. 1950년대의 한국을 손창섭 선생의 소설같은 분위기로만 규정하는 내가 편견에 차 있는 지도 모르지. 이 당시 영화가 흑백영화라 세상도 흑백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인 박창해 선생의 작품 '바둑이와 철수'의 '철수'는 일제 시대를 거친 적이 없는 것처럼 밝고 씩씩한 소년이다. 만주의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박창해 선생의 유년 시절이 '과거가 없는 소년' 철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당신의 증언에 의하면 만주에서 강아지를 친구처럼 키웠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할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말타기를 하고 아버지와 숨바꼭질을 하고, 동네에서 일본인, 러시아인, 중국인, 조선인 친구들과 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조흔파 선생의 '두수'라는 캐릭터도 '과거가 없는 소년'처럼 보인다. 이 당시 외국에서 나온 다른 소년 소설을 참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두수' 캐릭터의 문헌적 배경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하고 조사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조흔파 선생이 '두수'를 온전히 외국의 다른 소년 소설에서 가져 오지 않았다면 '두수'도 당신 안의 한 소년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얄개전'을 읽고 조흔파 선생에 대한 학위 논문이나 연구 논문이 나온 것이 있나 좀 찾아봤는데 아직 나온 것이 별로 없었다. 아직 때가 안 된 것인지, 연구 대상으로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것인지 학계가 판단할 문제이지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의 작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