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 - 금수저 없는 당신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법
크리스 길아보 지음, 강혜구.김희정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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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저계급론에 절망하던 저로하여금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할 수 있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켜준 책입니다. 한국사회에 100% 온전히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내용은 알차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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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 10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독서법
카바사와 시온 지음, 은영미 옮김 / 나라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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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청난 비법이 숨겨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실제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독서법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바쁜 직업을 가졌음에도 월 30권의 독서를 한다는 저자를 보고 저 또한 자극받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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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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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어려웠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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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헬조선'' '지옥불 반도' '망한민국' 이라는 단어들을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 이다. '헬조선'은 전반적으로 암담한 한국의 사회 현실을 지옥에 비유하며 생겨난 인터넷 신조어지만, 현재는 각종 언론 매체에 거론되면서 퍼지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과거 유행하던 '이태백',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같은 단어들과 비교하면 가히 직설적인 표현이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절망과 좌절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단어인 것 같다.

지옥에 비견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첫 째, 현실에 순응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둘 째, 현실을 개혁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

  셋 째, 현실에서 도피하여, 한국을 떠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세 가지 방법 밖에는 없을 듯 하다. 당신이 이미 현실에 절망해버린, 20대 젊은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고르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헬조선' 한국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아보기 위한 발버둥, '해외 이민'은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탈(脫)조선'이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해외 이민'을 고려하거나 계획중이거나 이미 이민을 간 상태이다. 각종 이민 관련 커뮤니티의 가입자는 나날이 늘어가는 상황이고, 직장인 중에는 주말에 기술 학교를 다니며 기술 이민을 준비하는 부류도 있다. 심지어는 이민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이민계(契)까지 등장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역시 '헬조선'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20대 젊은이의 현실을 다룬 책이다. 주인공 '계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 직장인이다. 주인공은 마땅한 꿈도 희망도 없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다. 각박한 현실에 지친 '계나'는 한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호주로 떠난다.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떠나서 호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실제 호주 이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작가의 문장은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절망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은, 비판적이지만 명쾌한 문장은 주인공 '계나'의 이민 과정이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 처럼 느껴질 정도로 읽는이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계나'의 일화는 허구가 아닌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아는 사람 이야기 같이 다가온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어쩌면 한국이 떠나라고 부추긴 '계나'를 보고 혹자는 공감할 수도, 혹자는 부러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나'에게 애국심이 부족하다느니, 인내심이 부족하다느니, 고생을 덜 해봤다느니 등의 개인의 노력 문제로 귀결되는 뻔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한국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비유해 보자. 정글에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에게 먹히는 누우라든지, 톰슨가젤같은 초식동물도 존재하는 것이다. 즉 '계나'는 한국이라는 정글 속에서는 일개 초식동물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톰슨가젤이 노력한다고 사자가 될 수 없는 것 처럼, '계나'같은 사람들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누가 계나를 비판할 것인가? 초식동물에게는 초식동물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물론 또 누군가는 사람사는데가 똑같다느니, 이민가면 달라질 것 같냐느니, 어딜가나 다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면서 사족(蛇足)을 붙일 것 이다.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민은 최선을 고르는 것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선택인 것 같다.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베르세르크'라는 만화가 있다.'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다.'라는 명대사가 인상적인 만화였다. 시쳇말로 '간지'가 났다고 해야되나, 무언가 있어보이는 대사였기 때문에, 싸이월드 프로필에도 써놓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다보니, 문득 이 대사가 떠올랐고, 다시 한번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을까란 물음에 대해 답해보기로 했다. 맞는 말이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삶은 투쟁의 연속, 어딜가도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말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을 떠나는 '계나'같은 사람들이 낙원을 찾는 것 일까? 절대 아니다. 한국을 떠나도 삶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종착지가 낙원이 아님을 알면서도 한국에서 도망치는 이유는 한국에서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이민 또한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톰슨가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나 말고 다른 가젤이 잡아먹히기를 바라면서 아둥바둥 살아가느니, 더 넓은 초원으로 도망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더 용기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매커니즘으로, 담장 안 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주하지 않고 결햄함으로써 그녀는 또래와 엇비슷한 생활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도전한다. 과연 계나는 먹고 사는데 급급한 생존을 존재하는 삶으로 전환 할 수 있을까. <작품해설, 허희> 

 



"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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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자크를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아마도 발자크는 서양사람일 것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둘 사이의 느껴지는 오묘한 이질감에 이끌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다. 발자크가 작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발자크는 분명 소설의 전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때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절. 부모가 지식계층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와 친구 뤄는 오지의 농촌마을로 하방(下方)하게된다. '나'와 뤄는 사실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했지만, 지식인 취급을 받으면서 농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무의미한 날들이 계속되던 중, '나'와 뤄는 마을을 돌며 재봉일을 해주던 재봉사의 딸 '바느질 소녀'와 알게되고, 무미건조한 날들은 조금씩 활기를 띄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재미가 들린 '나'와 뤄는 우연히 옆 마을에 하방온 '안경잡이'의 자물쇠가 잠긴 비밀 가방을 발견하게 되고, '안경잡이'의 부모님이 문학인인 것으로 보아 그 가방 속에는 책이 들어있을 거라 유추하게 된다. '나'와 뤄는 '안경잡이'에게 책을 빌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안경잡이는 책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리는 안경잡이의 부탁을 들어준 다음에야 겨우 책을 빌릴 수 있게 된다. '나'와 뤄는 발자크의 소설을 읽게 되고, 발자크의 소설은 나와 뤄를 가슴띄게 만들었다. 우리는 '바느질 소녀'에게도 발자크의 소설과 문학을 알려주었고, 얼굴이 아름다웠지만 시골뜨기였던 그녀는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 점점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발자크의 소설을 시작으로, 문학을 접하게 된 아이들은 점점 변하게 된다. '마오' 주석과 공산당 이외에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던 그 시절, 문학이라는 매체가 가져다주는 파급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본디 인간은 금지된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어두운 밤 남몰래 발자크의 소설을 탐독하던 '나'와 뤄에게 문학 작품이란 아담과 이브가 탐하던 에덴동산의 선악과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문학이라는 선악과는 이들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계몽'이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 속에서 발자크의 소설은 '나'와 뤄에게 농촌으로 추방된 삶을 견디는 힘이 되었고, '바느질 소녀'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꿈 꾸게 하는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밑 바닥으로 추락해버린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비록 '나'와 뤄. 그리고 '바느질 소녀'의 뒷 이야기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문학의 즐거움에 눈을 뜬 그들은 광기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살았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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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
"소나타가 무엇이냐?"
촌장이 의하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노래라는 것이냐?"
"대충 비슷한 겁니다."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즉각 촌장의 눈빛에 충직한 공산당원다운 경계심이 나타나면서 어조가 적대적으로 변했다.
"네가 연주할 노래의 제목은 무엇이냐?"
"노래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건 소나타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제목을 물었다!"
촌장이 내 눈을 쏘아보면서 고함쳤다.
또다시 그의 왼쪽 눈에 맺힌 핏멍울 세 개가 내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모차르트......"
나는 망설였다.
"모차르트 뭐라는 거냐?"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뤄가 나를 대신해서 마무리를 해주었다.
얼마나 대담한 말인가! 하지만 그 대담함이 효력을 발휘했다. 마치 무슨 기적적인 얘기라도 들언 듯이 위협적이던 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기쁨의 미소를 짓느라 눈가에 주름까지 생겼다.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고?"
촌장이 되뇌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활을 쳐드는 순간 갑자기 주위에서 터져나오는 열렬한 박수소리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곱은 손가락들로 현을 훑어가자, 모차르트의 악절들이 충실한 친구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차르트의 명쾌한 음악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흡사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기라도 하듯 좀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매정해 보이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부드러워졌다. 이윽고 흔들거리는 남포 불빛 속에서 그 얼굴들의 윤곽이 차츰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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