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헬조선'' '지옥불 반도' '망한민국' 이라는 단어들을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 이다. '헬조선'은 전반적으로 암담한 한국의 사회 현실을 지옥에 비유하며 생겨난 인터넷 신조어지만, 현재는 각종 언론 매체에 거론되면서 퍼지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과거 유행하던 '이태백',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같은 단어들과 비교하면 가히 직설적인 표현이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절망과 좌절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단어인 것 같다.

지옥에 비견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첫 째, 현실에 순응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둘 째, 현실을 개혁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

  셋 째, 현실에서 도피하여, 한국을 떠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세 가지 방법 밖에는 없을 듯 하다. 당신이 이미 현실에 절망해버린, 20대 젊은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고르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헬조선' 한국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아보기 위한 발버둥, '해외 이민'은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탈(脫)조선'이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해외 이민'을 고려하거나 계획중이거나 이미 이민을 간 상태이다. 각종 이민 관련 커뮤니티의 가입자는 나날이 늘어가는 상황이고, 직장인 중에는 주말에 기술 학교를 다니며 기술 이민을 준비하는 부류도 있다. 심지어는 이민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이민계(契)까지 등장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역시 '헬조선'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20대 젊은이의 현실을 다룬 책이다. 주인공 '계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 직장인이다. 주인공은 마땅한 꿈도 희망도 없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다. 각박한 현실에 지친 '계나'는 한국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호주로 떠난다.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떠나서 호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실제 호주 이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작가의 문장은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절망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은, 비판적이지만 명쾌한 문장은 주인공 '계나'의 이민 과정이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 처럼 느껴질 정도로 읽는이로 하여금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계나'의 일화는 허구가 아닌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아는 사람 이야기 같이 다가온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어쩌면 한국이 떠나라고 부추긴 '계나'를 보고 혹자는 공감할 수도, 혹자는 부러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나'에게 애국심이 부족하다느니, 인내심이 부족하다느니, 고생을 덜 해봤다느니 등의 개인의 노력 문제로 귀결되는 뻔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한국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비유해 보자. 정글에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에게 먹히는 누우라든지, 톰슨가젤같은 초식동물도 존재하는 것이다. 즉 '계나'는 한국이라는 정글 속에서는 일개 초식동물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톰슨가젤이 노력한다고 사자가 될 수 없는 것 처럼, '계나'같은 사람들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누가 계나를 비판할 것인가? 초식동물에게는 초식동물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물론 또 누군가는 사람사는데가 똑같다느니, 이민가면 달라질 것 같냐느니, 어딜가나 다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면서 사족(蛇足)을 붙일 것 이다.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민은 최선을 고르는 것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선택인 것 같다.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베르세르크'라는 만화가 있다.'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다.'라는 명대사가 인상적인 만화였다. 시쳇말로 '간지'가 났다고 해야되나, 무언가 있어보이는 대사였기 때문에, 싸이월드 프로필에도 써놓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다보니, 문득 이 대사가 떠올랐고, 다시 한번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을까란 물음에 대해 답해보기로 했다. 맞는 말이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삶은 투쟁의 연속, 어딜가도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말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을 떠나는 '계나'같은 사람들이 낙원을 찾는 것 일까? 절대 아니다. 한국을 떠나도 삶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종착지가 낙원이 아님을 알면서도 한국에서 도망치는 이유는 한국에서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이민 또한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톰슨가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나 말고 다른 가젤이 잡아먹히기를 바라면서 아둥바둥 살아가느니, 더 넓은 초원으로 도망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더 용기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매커니즘으로, 담장 안 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주하지 않고 결햄함으로써 그녀는 또래와 엇비슷한 생활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도전한다. 과연 계나는 먹고 사는데 급급한 생존을 존재하는 삶으로 전환 할 수 있을까. <작품해설, 허희> 

 



"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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