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스 - 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 그룹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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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인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구입했다.

 

앞으로도 일에 대해 뾰족한 정의는 내릴 수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일의 모양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책에서 우리의 생각이 이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애씀의 기록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애쓸수록 마주하게 되는 건 드높은 현실의 벽과 훨씬 큰 불안함으로 둘러싸인 삶이었지만, 이상을 좇는 모험은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 『프리워커스』 中 p.45

 

 

저자인 모빌스는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라고 한다.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도 가지고 있고, 여러 회사들과 다양한 협업도 진행하며, 일하는 과정을 '모티비'라는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다. 책에는 모빌스의 멤버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일했던 시기부터 퇴사하여 모빌스를 시작하고 진행했던 다양한 협업과 프로젝트의 경험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빈틈을 보여주기 전에는 빈틈으로 물이 샐 거라고만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괜한 걱정일 뿐이었던 것 같다. 빈틈을 통해서 바람도 솔솔 통하고 빛도 들어왔다. 이제는 캄캄한 어둠이 두렵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 빈틈으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자.


- 『프리워커스』 中 p.154

 

'솔직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브랜드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딜레마와 고민에 공감하면서 읽다 보니 문득 일하면서 '진심은 통한다'라는 걸 실감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오히려 마음을 감추는 데 능숙한 사람이 되긴 했지만, 분명 진심과 솔직함이 통한다는 걸 체감했던 기억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고, 매일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걸 알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솔직하게 진심을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협업을 돌아보며 모든 게 잘 마무리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으로, '느슨한 연대'라는 달콤한 말 뒤에 따라오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슨한 연대라는 말은 아이러니였다. 느슨해서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계약과 같은 형식만 느슨했을 뿐이지 일에 있어선 훨씬 강한 유대가 필요했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도 분명해야 하고 무엇보다 강한 신뢰가 요구됐다. 결론적으로 전부 느슨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프리워커스』 中 p.164~165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나는 작년 '전주사회혁신한마당'에서 모 작가의 강연을 들으면서 처음 접했다. 그때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는데 사실 일에 있어서 '느슨한 연대'라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느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에 모 단체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가 매일 회의라고 모이면 일 얘기는 안 하고 연대 어쩌고만 해서 되는 일이 없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신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오는 회의라 재미있기는 했다고... 해야 되는, 완료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일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들을 꼼꼼하고 끈끈하게 점검하고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과 같이 속도를 높여 진행해야 되는 부분을 잘 구분해서 느슨하게 갈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오래 고민해 온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할 수도 있다는 예시의 가감 없는 기록으로 의미가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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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박진영.오창룡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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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차별금지법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이 달성되었다. 제정될 듯 제정될 듯 제정되지 않는 차별금지법을 두고 국민동의청원 10만명 달성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취지의 캠페인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인데 이 성공과는 별개로 아직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을 읽으면서 차별금지법이 떠올랐다. 우리는 무수한 차별을 얘기한다. 성차별, 장애인차별, 외국인차별 등등 그런데 이 안에 종차별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기후변화, 기후 위기가 너무나 체감되는 요즘, 이 지구를 마치 전세 낸 듯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지구유해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우리는 우리 외에 다른 종들도 이 지구에 살고 있고 그들의 권리가 있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들여서 생각해야 되는 존재임을 잊는다.


저자인 앨러스데어 코크런은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동물윤리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라고 한다. 막연하게 동물에 대한 보호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이렇게 정치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설득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말해서, 공동 구성원은 미래까지 서로 깊게 의존할 정도로 관계가 얽혀 있는 개인들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지녔지만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성원권을 인정해주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또한 기여를 성원권의 충분조건으로 여기고 필수 조건이라 간주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한다. 나아가 공동체에 단기간 체류하면서 다른 구성원들과 긴밀한 교류가 없는 사람들을 성원권에서 분명하게 배제하는 이유 역시 드러난다. 물론 결정적으로 이것은 많은 동물이 구성원으로 간주되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 집 안에서 살고, 거리에서 일하고, 공원에서 뛰노는 길들여진 동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킴벌리 스미스가 묘사한 '돌봄과 의존으로 얽힌 관계'로 존재하며 구성원의 자격을 충족한다(Smith 2012: 61면).


-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中 p.106~107


이 책은 단순히 동물을 우리의 사회 구성원, 공동체의 일부로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에 대한 정치적으로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거나 기여한 바가 없어서 이들을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넣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유아, 중증 장애인 등 국가가 법으로 정한 의무를 오롯이 스스로 실행할 수 없는 인간도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한다.

군견이나 경찰견,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인간과 함께 활약하는 동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들만이 예외라고 말하고 싶다면, 생각해 보자. 지금 모든 동물들은 환경에 순응하며 생태계의 흐름에 맞춰 살고 있다. 더욱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꺼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만이 생태계를 더럽히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모든 종보다 우월하다고, 그래서 우리의 권리가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믿는다면 진짜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해가 되는 행동을 누가 많이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능한 한 가장 엄격한 동물복지법을 제정한다 해도 여전히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복지법은 일반 법률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복지법은 헌법이 보호하는 자유나 권리와 충돌할 경우 쉽사리 무시될 수 있다. 그 정도는 독일의 한 예술가가 살아 있는 새를 접착제로 고정하여 전시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력한 동물복지법은 헌법 조항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 조항은 공동체가 동물보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헌법상의 다른 보호와 같은 토대를 제공해야 함을 명시하는 규정이다.


-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中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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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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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는 5·18 때 집에 침입한 군인에게 엄마가 폭행당하고 죽음을 맞는 걸 목격한 후 때때로 튀어나오는 다른 인격 때문에 곤욕을 겪으며 성장한다. 편의상 혜수라고 불렀던 다른 인격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지아와는 상반된 성격으로 각종 사건, 사고를 몰고 다녀 지아와 아버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엄한 훈육으로 혜수를 없앨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버지는 지아에게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일삼고,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튀어나온 혜수가 상해를 입힌 직장동료의 남편이 찾아온 날 지아는 혜수를 불러내기 위해 심하게 자해를 하는데... 다시 정신을 차린 지아는 20대 중반이었던 자신이 40대가 되었고 혜수를 불러내기 위해 자해를 했던 밤부터 19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걸 알게 된다. 혜수가 되었던 자신이 어떤 사건을 저질렀는지 불안에 시달리던 지아는 혜수가 머물렀던 묵진으로 가 19년의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분노의 복수극

지아의 다른 자아인 혜수는 지아의 분노가 응축되어 나타난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를 잃은 지아는 무기력하게 그저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간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 철순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때때로 살아남은 딸에게 쏟아부으며 딸의 증상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적극적인 치료나 돌봄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보다 의지했던 재필-엄마의 죽음의 단초는 갑자기 숨겨달라고 집으로 뛰어든 재필이 제공했다-도 결국은 자기 좋을 대로 지아와 혜수를 이용했고... 큰 반항이나 항변 없이 매사를 체념하고 수용하던 지아의 내면에서 들끓던 분노와 화는 혜수가 등장했을 때만 표출되었다. 그러나 사고만 치고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는 혜수에 대해서도 분노가 쌓이던 지아는 서슬 퍼런 직장 동료 남편의 등장에 책임이 있는 혜수를 자해를 통해 불러내는 걸로 나름의 복수를 꿈꾼다.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19년의 시간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른 채 말이다.

혜수는 지아가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뭔가 중요한 일들을 다 자신이 처리하는 느낌인데다 자신이 더 똑똑함에도 언제나 몸을 길게 차지하고 있는 건 지아인 게 혜수도 불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사고를 치고 다녔다. 지아가 깨어났을 때 당혹스러워할 것을 떠올리는 게 즐겁고 통쾌했으니까... 지아가 심한 자해로 자신을 불러낸 날, 직장동료의 남편만 혼쭐을 내주면 여느 때처럼 지아가 나타나서 괴로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날은 뭔가 달랐다. 지아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혜수는 지아를 어떻게 더 골려줄까 고민하다가 재필한테 자주 들었던 묵진까지 가게 된다.

혜수와 지아는 서로에게 분노했고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묵진에서 두 사람은 보다 근원적인 분노의 원흉을 만나게 된다. 방법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결국 혜수는 치밀하고 냉정하게 복수극을 설계하고 성공적으로-적어도 처음에는 그래 보였다- 해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복수는 너무나 많은 부수적인 피해자를 양성했고, 혜수 자신 또한 치명적인 상실을 겪은 충격에 지아가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그래서 이 복수극은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 그리고 화해

치밀하고 성공적인 거 같았던 복수극은 또 다른 복수를 불렀고, 그 복수는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끝낼 수 없도록 질주한다. 지아를 도와주라는 새아버지 철순의 부탁으로 따라온 병준은 도움보다는 사고를 더 큰 비율로 일으키고 따돌리기 위해 미행까지 했던 형사 출신 프리랜서 기자 규식까지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조력자도 없이 기억에 전혀 없는 동네와 사람들로부터 혜수의 19년의 삶을 재구성하느라 애쓰던 지아는 결국 복수극의 최종 보스를 마주한 가운데 무의식 속 혜수를 만나 19년의 시간을 복원하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와 기억의 복원을 통해 지아와 혜수는 서로를 향한 분노를 멈추고 비로소 연대하게 되는데...

지아와 혜수, 두 자아의 화해는 그저 악순환에 그칠 수 있던 이 복수극에 의미가 생기는 지점이다. 둘이 겪고 있는 괴로움은 아무 잘못도 없이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그저 안고 살아온 것이기에 누구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이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지아와 혜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던 아버지와 사건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라며 사람 좋게 굴었던 재필이 아니라,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의지해야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서로의 상처와 기억을 껴안은 마지막, 병준의 "너 지금 누구야. 지아야, 혜수야?"라는 질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혜수는 지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등장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받고 싶어 만들어진 자아였다. 사랑을 받는 동안 혜수는 행복했다. 행복해서, 그 끈을 19년이나 놓지 못했다.


-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中 p.605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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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투안의 무덤 - 어스시 전집 2 어스시 전집 2
어슐러 K. 르 귄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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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 전집 2권 『아투안의 무덤』은 어둠에 바쳐진 무덤, 그 무덤을 지키기 위한 대무녀의 환생이라는 아르하가 게드를 만나 겪는 해방담이다. 중반부까지 아르하의 대무녀로서의 시작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큰 사건 없이 펼쳐지다가 지하 미궁을 침입한 마법사 게드를 만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그녀가 깨우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해방의 무게였다. 자유란 무거운 부담이었다. 영혼이 걸머져야만 하는 낯설고도 엄청난 짐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물처럼 받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었으며, 선택이란 몹시도 힘든 것일 터였다.


- 『아투안의 무덤』 中 p.242

 

지하 미궁에서 마법사가 등장한 시점에 설마 게드인가 싶었을 때부터 게드가 아르하에게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는데 무덤과 신전 자체가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대무녀의 환생이라는 이유로 가족과도 떨어져 자신의 본래 이름도 모르고 살아온 아르하에게 아무리 마법사 게드라고 해도 새로운 삶을 향한 결심과 의욕을 불어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같이 바다로 나온 시점에도 아르하는 끊임없이 다른 세상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친다. 두려움은 은신의 욕망으로 이어지고, 게드는 그런 그녀에게 평정과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1권에서 게드가 고난의 항해 중에 만났던 오누이의 친절이 아르하가 수호하던 지하 미궁으로 그를 이끌었고, 결국 게드와 아르하는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그 오누이의 정체와 그들의 비극적인 삶의 내막을 완성해낸다. 그 오누이의 이야기와 게드를 통해 1권과의 연결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는데 읽는 내내 이후에 게드와 아르하가 함께 겪을 사건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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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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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작가가 쓴 단편 모음집 『우리가 쓴 것』은 10대부터 80대를 아우르는 여성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 무엇 때문인지 무거운 분위기를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따뜻함, 통쾌함, 흐뭇함, 말랑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면서 한 번씩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근데 승훈아, 나라면 싫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못하고 저렇게 누워만 있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교차로의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고 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섰다. 승훈이가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우리가 쓴 것』 中 p.42

 

연명치료를 고집하는 큰 언니의 손주 승훈이를 설득하려던 동주는 승훈이의 질문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과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던 그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더불어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지금 자신의 삶은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한다. 나는 승훈, 승훈의 엄마인 원숙, 그리고 동주까지 모두의 마음이 다 와닿아서 첫 단편 「매화나무 아래」부터 마음이 좀 아릿했다.

가부장적 가장의 전형이었던 아버지의 뜻밖의 가출로 가족들의 달라진 삶, 일상을 그려낸 「가출」은 심각하게 흐를 수 있는 사건의 일면을 오히려 담백하고 담담하고 다루어서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의 가출, 가장의 부재라는 소재로 이렇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났던 거 같다. 엄마만 있는 집에 자주 들르게 된 삼 남매가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 『우리가 쓴 것』 中 p.185

 

모 연예인 때문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가스라이팅, 연인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을 다룬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면서 정말 답답했는데 이야기가 후반으로 흐르면서, 특히 마지막 네 글자 덕분에 좀 시원해졌다. 자신의 의지대로 화자의 삶을 완벽하게 조종해낸 현남 오빠는 일종의 소시오패스라고 느껴졌다. 더 빨랐으면 좋았겠지만, 중요한 건 이제라도 벗어났다는 게 아니겠는가.

과부인 시어머니와 역시 과부인 며느리의 오로라 여행을 그린 「오로라의 밤」에서는 두 사람의 소원 때문에 좀 많이 웃었는데 오로라를 보고 빌기에 한 사람의 소원은 어쩌면 너무 소박하기도 하고 적나라한 게 아닌가 싶고, 다른 한 사람의 소원은 너무 보편적(?)이랄까... 오로라 여행을 다녀오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화자의 말에 공감이 되어서 웃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 한 달이 조금 넘는 나름 긴 여행을 떠날 때 돌아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내심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랐으니까 말이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와 「첫사랑 2020」에서는 10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는 아이가 겪는 사건에 엄마의 유년 시절과 엄마의 엄마, 할머니의 젊은 시절까지 얽혀서 3대의 서사가 같이 진행되고, 「첫사랑 2020」은 풋풋한 첫사랑마저 녹록지 않은 코로나 시대 초등학생들의 어려움(?)을 읽어낼 수 있다.

수록된 총 8편의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책, 영상, 기사, 유튜브, 다큐멘터리 등이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갈등이나 대립이 없는 이야기도 아닌데 쭈욱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는 게 신기해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 어떤 괴로움이나 고민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다소 흔들림이 있더라도 서로, 또 스스로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어려움이나 괴로움 속에서도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거라고 느껴졌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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