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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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에 총 3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었다. 그중에 두 권이 장르소설이었는데 요 『시크릿 플레이스』는 정기구독했던 『미스테리아』에서 알게 된 작품이었다. 대여해 온 두 권 중에 이게 더 읽는 데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그대로 맞았다는... 학생 대부분이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인 사립 여학교 세인트킬다의 미해결 사건을 풀어내는 여정은 한 번에 쭉 읽어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1년 전 세인트킬다의 교정에서 붙어있는 남학교 세인트컬름의 학생 크리스 하퍼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금방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조사를 거듭할수록 모든 용의자가 제외되는 상황으로 흐르고,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된다. 아버지가 형사인 여학생 홀리는 교내 대나무숲 역할을 하는 게시판 시크릿 플레이스에서 '난 누가 그 애를 죽였는지 알아'라는 글씨가 오려 붙여진 크리스 하퍼의 사진을 발견하고 미제사건수사과의 모런 형사에게 가져온다. 이게 미제사건수사과를 벗어날 기회라고 생각한 모런 형사는 1년 전 책임자였던 살인수사과 콘웨이 형사에게 협업을 제안하고 세인트킬다로 향한다. 


『시크릿 플레이스』 中 p.312


두 형사는 먼저 시크릿 플레이스에 크리스의 사진을 붙일 수 있는 여학생들을 추려 낸다. 학교에서 여왕처럼 행동하는 조앤의 무리 4명, 그리고 제보자인 홀리와 친구들 3명, 이렇게 총 8명의 학생이 가능했다는 걸 알아낸 모런과 콘웨이는 그들을 따로 또 같이 만나보면서 1년 전 진실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야기는 1년 전 크리스가 죽었던 즈음의 과거와 사건을 새롭게 조사하는 현재 두 형사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되는데 그 안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꾸는 동상이몽이 독자들 앞에서만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관계 등에 있어서- 특별함을 꿈꾼다. 아마 그런 마음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가 10대가 아닐까 하는데 홀리와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준 건 자신들의 관계를 특별한 걸로 만들려는, 아니 그렇게 믿는 유달리 강한 유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홀리가 아버지인 매키 형사 앞에서 그 애들이 바로 내 가족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도 잘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이 특별하다는 착각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도... 나 혹은 우리의 특별함에 눈이 멀면 다른 걸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크리스라는 첫사랑을 맞이한 설리나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자신들의 특별한 관계가, 우리라는 특별한 존재가 어떻게 될까 봐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에만 갇혀버린 홀리, 줄리아, 베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4 사람이  조앤의 무리처럼 적나라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할 줄 알았으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가 설리나의 머리에 손을 넣어서 들어 올리자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떨어졌다. 설리나는 크리스의 팔에 입술을 대려고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마치 수중 댄서 같았다. 시간이 오직 둘만을 위해 멈추고 일 분 일 분이 그들에게 백만 년을 주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시크릿 플레이스』 中 p.344


크리스가 설리나의 마음과 같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줄리아, 홀리의 우려, 조앤 무리들의 험담처럼 크리스에게 설리나는 그저 며칠의 즐거움 뒤에 차버릴 전리품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이 진짜 끝까지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그저 그런 예상일뿐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친구들과의 맹세와 첫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비극적으로 크리스를 잃은 설리나의 영혼 없는 모습이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들은 아무도 지키지 못했고 그렇게 견고하다고 믿은 관계까지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홀리가 자신과 친구들을 가족이라고 묶은 순간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깝고도 먼, 너무 사랑하지만 때로는 벗어날 수 없어 환장할 거 같은 가족 말이다. 이 소녀들에게는 '가족 같다'가 아니라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평범하게, 다소 유치할지라도 원초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더 좋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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