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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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힐링 에세이 같았던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무실에 놓아둔 책을 보고 제목만으로 너무 힐링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웃었었다. 근데 이 책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에 대한 강의다. 기본소득은 코로나 시국의 재난지원금과 맞물려 너무 많은 얘기가 나와서 잘 아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제대로 공부한 느낌이라 좋았다.

 

정말 열심히 노동하면 누구에게라도 소비능력이 생기는 걸까요? 잠입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는 기자이자 작가가 있습니다. 이 작가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자신이 일한 경험을 담은 『노동의 배신』(200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처지가 악화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 에런라이크는 음식점 종업원, 청소부, 월마트 점원으로 직접 일하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지더라는 겁니다. 시간당 7달러 조금 넘는 금액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축은 고사하고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질 뿐이더라는 거죠. 실제 경험을 통해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이 확산되는 현재의 소비사회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과 충분한 소득이 생긴다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죠.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31

 

 

우리는 모두 열심히 일하는 걸 중요하게 배우면서 성장했다. 열심히 벌어서 잘 쓰고, 잘 저축하고 뭐 이렇게 해서 인생의 다음 계획을 세우고... 대부분 그렇게 하라고 배우면서 자라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달라진 사회 속에서 과연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게 가치가 있고, 그게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인지부터 언급하며 문제 제기에 들어간다.

고용이나 일자리 상황이 계속 악화일로인 것은 일을 하고 있는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 예산을 쏟아붓고, 창업을 독려하고, 고용을 보조해도, 일시적일 뿐이다. 앞으로 점점 발전이라고 추구되는 것들 안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노동이 최소화되고, 우리가 쓸모없는 존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걸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이건 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일에 대한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의 시작도 바로 여기, 마땅한, 제대로 된 일자리라는 게 정말 너무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직접 점점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처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외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이 일을 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든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그런 건 각자도생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 여기에서 저자는 먼저 '모든 시민의 총소득을 늘리는 사회적 배당금'으로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세계 각지에서 실험 중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배경이 되는 이론들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해서 정치적인 쇼로만 느껴졌던 기본소득이라는 게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실현 가능할 수 있을지 이해가 되었다.

 

정리해본다면 자본은 시장에서 직접적인 수요가 많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선택해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로서는 자본과 소비를 만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모두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설령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많은 세금이 부과된다고 해도 결국 이 돈이 시장에서 계속 소비에 쓰인다면 다시 자본의 주머니 속으로 돈이 돌아가는 구조라 자본도 그다지 잃을 게 없는 제도일 수 있다는 거죠.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149~150

 

저자가 두 번째로 다루는 '모두를 위한 사회적 상속'이라는 기초자본은 개인적으로는 아예 처음 듣는 단어 같았으나 책을 읽다 보니 완전히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출발선이라는 게 아예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그 불평등한 출발선을 어느 정도 맞춰 보자는 건데 이 역시 배경이 되는 이론이나 주장, 그리고 다양한 나라들과 우리나라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책적인 형태를 살펴보고 역시나 어떻게 진행 가능한 지까지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기초자본의 목표는 '한 정치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이 출발선상의 평등을 최소한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매달 소비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연령에 이른 구성원들에게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목돈, 소위 종잣돈을 지급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18세, 21세 등 일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국가가 성년이 되어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2,000만 원이든 3,000만 원이든 목돈을 한꺼번에 주자는 겁니다. 기초자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목돈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中 p.174~175

 

이건 어디까지는 저자의 이야기이고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또 어떤 허점이 발견되어 악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실행되고 있는 각종 제도 중에서 일말의 구멍도 없는 완벽한 것은 없다. 학교에서 급식비나 학비 지원 서류를 쓰면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자주 봤으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기본소득'이나 '기초자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서 실질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게 현명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슬픈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모두 점점 쓸모 없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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