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슬리퍼 - 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2019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 선정도서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 / 산지니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입했던 책이다. 계속 읽게 되지 않아서 스페인까지 들고 왔다. 손에 잡고 읽으니 그렇게 오래 걸리는 책은 아니었는데 읽으면서 정말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저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은 기자이고 이 책은 미국 LA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시체로 발견된 총 10명, 그리고 유일하게 생존했던 1명의 흑인 여성 피해자를 만든 연쇄 살인범을 체포하고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까지를 그녀가 기록한 것이다. 인종, 사회적인 지위, 지역적인 문제로 외면받았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 수집한 증거가 막다른 길목에 다다를 때도 포기하지 않고 전담반을 꾸려 이 사건을 추적했던 형사들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적혀 있다.

1980년대에 시작된 사건이 2006년에 이르러 범인이 체포되고 2016년에 와서야 사형 선고가 이루어진 정말 징글징글한 과정이었다. 범인의 DNA와 사용한 총알이 피해자들에게 남아 있었으나 일치하는 기록을 찾지 못해 수사관들은 번번이 좌절해야 했고, 추적하던 형사가 은퇴할 시점이 되면 다른 형사가 이어받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다행히 가족 DNA 검사를 통해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DNA와 일부 일치하는 사람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범인이 검거되었다. 나는 범인이 검거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재판 날짜가 정해지는 과정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법대로 하다가 숨넘어가겠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들었다. 체포 시점부터 사형 구형 시점까지 10년이라니... 범인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는 걸 보기 전에 피해자 가족들이 먼저 숨넘어갈 지경이 아닌가.

읽으면서 법이란 게 뭔가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범인을 잡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가족 DNA 검사도 처음에는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두 번째 시도에서 허가받은 것이었다. 법은 정의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러면 어디서 정의를 찾아야 하는 걸까. 선고까지 10년에 이르는 저 과정을 버텨낸 피해자 가족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청부하지 않았다. ;.;)

책 안에서 피해자들의 개인사도 세심하게 다루어지고 있어 저자가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느끼는 책임감, 사명감을 잘 알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검사, 변호사들의 개인 이력까지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한데 기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기자인 저자는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으리라.

세세한 기록인 만큼 책을 읽으며 저자와 희생자 가족, 형사들이 느꼈을 분노, 절망 등을 그대로 함께 느낄 수 있는 반면, 그만큼 정말 같이 진이 빠지기도 한다. 반성이나 후회나 아무런 인간적인 감정이 안 보이는 범인에게 과연 체포 이후 10년이란 시간을 재판에 허비해 줄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정말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