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살인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릴 헤어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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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도 읽어도 계속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 장르 소설을 끊지 못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 중에 하나다. 추리 소설이 주는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의 쾌감(?)까지, 그동안 읽는 내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겪는 감정적인 재미가 컸다면, 요 책이 좀 다른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제목이 '영국식 살인'이라서 영국식 살인이라는 건 무엇인가, 무엇이 다른가 계속 궁금해했는데 살인의 방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동기가 영국이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풍습과 관습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왕실, 여왕, 왕자들, 이런 것으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영국에서의 귀족이라는 존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게 단순히 사건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재미를 주었다.

영국의 귀족이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세습 귀족과 20세기 중반에 도입된 세습은 할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종신 귀족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고, 영국 의회의 상원 의원은 이런 세습 귀족, 종신 귀족과 성직자로만 구성된다고 한다. -게다가 임기도 종신이란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상원을 귀족들의 집이라는 의미로 'House of Lords', 국민들의 대표인 하원을 'House of Representatives', 대표자들의 집이라고 부른다고... 영국에서는 오로지 장남에게만 세습되는 귀족의 작위를 장남의 사망으로 그 자녀나 사촌이 물려받게 되면 상원 의원이 될 수 있다는데 이게 살인의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식 살인』이라는 것은 영국이라는 나라, 그 안에 귀족이라는 부류의 관습, 바로 그 때문에 발생한 살인 사건이었다. 워벡 가문의 고문서를 조사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말렸으나 이국의 이방인으로서 의심과 불안 속에서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했던 보트윙크 박사는 마지막에 이렇게 제안한다.

 

영국 헌법을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바꾼다면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되지 않을까요?

장관님도 윌리엄 피트처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음 사람도 그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죠.

-『영국식 살인』 中 -

 

그냥 생각해 봐도 타고난 신분 때문에 저런 특혜를 가진다는 게 상황과 사람에 따라 상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 된다. 책의 주석에 따르면 입법과 예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원에 대한 각종 부작용과 여론 악화로 노동당 정부가 미국의 상원과 비슷하게 선출직으로 개혁하는 안을 추진했다고 하는데 찾아보니 개혁이 이루어지기는 했는데 직선제 도입은 아직인 거 같다.

특권과 부를 가지는 대신에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참전하는 것이 귀족 청년들이라고 하니 이건 군대도 어떻게든 면제, 국적 때문에 원정 출산도 마다않는 우리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 대비 참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싶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국민과 국가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그에 대한 귀족의 의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하긴 영국 왕실의 왕자들도 군대 갔다 오지 않았던가...

추리 소설 한 편으로 영국을 공부하게 될 줄이야. 사회적인 배경이 갖는 특수한 풍습이 사건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악질 범죄자,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것보다 참신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시대에도 귀족과 평민을 나누며 특권을 통해 계급 사회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혹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지막에 옮긴이의 글을 꼭 읽기를 추천한다. 번역가이자 미스터리 애호가인 역자가 영국 귀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관련된 추리 소설을 짚어 주는데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외에도 다양하게 등장하니 이런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로운 역자 후기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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