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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현상학
아우렐 콜나이 지음, 배리 스미스 외 엮음, 하홍규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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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사회 (양장)
김은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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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복합체 (양장)- 도시, 기술 그리고 신경제
샤론 주킨 지음, 강민규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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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정치, 돈 (양장)- 미국 의료의 역사사회학
폴 스타 지음, 이별빛달빛(이종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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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해치는 25가지 미신- 환경을 보호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의 어떤 믿음
대니얼 B. 보트킨 지음, 박경선 옮김 / 개마고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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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과학과 정치- 일반인을 위한
공우석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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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심리학-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
조지 마셜 지음, 이은경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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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선언- 우리는 실패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 지음, 이세진 옮김 / 마농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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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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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관조의 힘을 생각하다



  촛불 정치가 끝나고 광장은 둘로 나뉜 채 우리에게 어느 한 쪽에 서길 요구한다. 공감과 연대 그리고 개인주의가 모두 시대정신이 된 이 시점에 중심 잡기란 쉽지 않다. 지난 몇 년간 페미니즘이 화두였다면 올해는 페미니즘이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한 해였다. 젠더 감수성은 한국의 인권을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시대의 급류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개인을 잃지 않았던 여섯 명의 지식인이 있다. 스스로 세상과 다른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는 사람에게나, 혹은 세상의 목소리에 꼭 합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나 이들의 사유를 따라가보는 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카고대학의 영문학 교수 데보라 넬슨은 책 서문에서 방향성을 명확히 한다. 이 책은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른 20세기 여성 지식인 여섯 명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냉정과 비정, 유보와 절제가 차지할 공간을 만들어 낼 감동 연구에 경계선을 둘러치고자 한다.' (p. 32) 동시에 각개의 사유의 일부를 뽑아 통합하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사유에 집중해 보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들의 삶과 사상이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를 조망한다.

 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수난을 '천형'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종교적 보상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시몬 베유의 말은 그 시작부터 시작한다. 다이앤 아버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같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이고 아직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메리 매카시나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조앤 디디온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동안 두각을 두드러냈던 여러 분야의 인물들은 감정 동기화에 충실하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는 '감정의 전시를 아예 배제하거나 최소화하면서도 수난에 대해 진지하고 참여적이며 고통스럽게 다가가는 태도'(p. 28)로서 저자는 조앤 디디온의 개념을 빌려와 '터프함'이라고 부른다. 책의 제목 『터프 이너프』는 있는 그대로를 결연하게 직시한 이들을 가리킨다.

 여섯 명의 사상적 흐름, 그리고 그와 얽혀 있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건조하게 그렸다는 이유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야 했던 아렌트의 일화나 그런 아렌트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죽는 날까지 선을 그었던 메리 매카시의 모습을 본다면 현실을 직시한다는 게 공사를 막론하고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다. 아버스는 역경을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과거를 "면제받는 느낌은 고통스러웠다"(p. 319)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연대를 배척하는 건 아니다. 아버스는 '공감을 거부하는 것이 관심과 리얼리티를 위한 공감을 열어준다'(p. 309)고 이해했으며 한나 아렌트는 개인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았다. 조앤 디디온 역시 오랜 시간 부정적으로 여겼던 '자기 연민'에 관해 한층 누그러트린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데보라 넬슨은 그들이 거부하는 건 무분별한 감정의 파시즘이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진정한 존재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임을 강조한다.

  4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표지는 언뜻 학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명 한 명이 책 여러 권을 쓸 만큼 넓고 깊은 사고를 담았던 사람들이니 책이 조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수전 손택의 말』, 『시녀 이야기』들을 번역했던 김선형 교수는 어려운 말을 배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뉘앙스를 살려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는 이미 데보라 넬슨이 한 번 인용하고 정리함으로써 수정된 원문에 또 새로운 의역을 가한다면 원저작의 사상이 아예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좋은 선택이었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합류를 강요하는 시대가 조금은 불편한 당신에게, 진정한 연대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당신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여성처럼, 아버스는 공감을 거부하는 것이 관심과 리얼리티를 위한 공감을 열어준다고 이해했다. - P309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사랑‘에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저는 한 번도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노동계급도, 아니 이런 종류의 그 어떤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친구들을 사랑하며 내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 P130

데보라 넬슨의 《터프 이너프》는 이 팽배한 유비의 사회적 역학을 들여다보면서, 여성의 젠더에 ‘할당‘된 적절한 감정의 온도가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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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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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만남을 위한 짧은 소설


 2019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트케의 작품성은 오래도록 인정받았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전범 옹호 경력은 심각한 논란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관객 모독』이 단지 언어극이라면 그의 발언은 현실 세계에서 소수 민족을 언어로서 모독했다. 그렇지만 노벨위원회는 문학적·미학적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는 변을 남기며 문학적 우수성을 정치적 배려와 비교해 헤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상을 받게 된 한트케는 자신의 선정이 정말 놀라운 일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10년 전쯤에도 발언의 비윤리성 탓에 수상 거부 비슷한 일을 당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사를 읽었던 그이지만 적어도 논란이 될 발언을 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건 알게 된 걸로 보인다.


 한트케의 작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짧은 편지를 받은 남성의 긴 일인극으로 시작한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이제는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라고 쓰인 편지를 함께 읽은 것치고는 그 대가가 혹독하다. 이 남자는 편지를 받아들고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뉴욕에 도착해 그녀를 찾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필라델피아로 떠난다. 그래도 '그러다 보니 잔뜩 압축된 채 점점 세차게 요동치는 도시가 평온한 대자연으로 보이기 했다'(p. 50)와 같은 묘사 덕분에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호텔 마크인 도마뱀을 보고나서 마침내 선언한다. "나는 이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p. 61)

 싱글 맘 클레어 메디슨과 아이를 데리고 함께 여행을 떠나며 비로소 글의 주제가 드러난다. 주인공은 클레어를 관찰하고 아이를 돌보고 떠난 유디트를 기억하며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는다. 유디트는 말을 남기진 않지만, 주인공이 남긴 발자취를 확인한다. 유디트가 짧은 편지는 악몽에서 깨어난 채 '잠든 클레어의 몸속으로 돌진해 들어'(p. 109)간 이후 기진맥진해 잠들 때야 끝난다.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할 때 시작한 긴 이별은 주인공이 타인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사물들의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제껏 내가 얼마나 나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깨닫게'(p. 121) 되는 식이다.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 그는 밤보다 낮을 더 기다리게 되고 유디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내가 그녀를 때려 죽일까봐 두려웠어." (p. 130)

 주인공이 차츰 그녀를 잊었고 그녀가 지금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을 때 유디트는 찾아온다. 클레어와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남은 돈을 다 쓰고 서정성이 담긴 『녹색의 하인리히』를 다 읽었을 때 유디트를 만난다. 총성이 울려퍼지며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황이 전개된다. 주인공과 유디트는 존 포드를 만나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특이한 인칭 문화, 그들의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책은 끝난다.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p. 204) 글쎄, 이 결말은 꿈일까 실재일까.


 한트케의 작품들은 일찍이 직접 말하면서도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 역시 그저 지리멸렬한 이별의 과정을 다루기 위해 쓴건 아닐 것이다. 한트케 자신도 작품을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서술하려 했다고 말했지만, 행간에 드러나는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스트리아 국적의 작가로서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쓴 한트케는 꾸준히 클레어와 대화를 통해서 미국과 유럽의 문화적 차이를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우리'라는 말의 관습적 사용에 대해 존 포드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함께하는 공적인 행동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겁니다."(p. 196) 한트케는 개인과 집단의식의 공유에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네들은 서로를 모방하면서 스스로를 숨기려는 경향도 있더군요." 존재 간의 연결성을 인정하지 않으나 내면에 체화한 유럽인들을  지적하며 우리가 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이라는 걸 강조한다. 극 내내 이어지던 『녹색의 하인리히』역시 그 책의 저자 고프리트 켈러의 개인적 경험이나 주인공만의 공감이 아니라 클레어와 공유를 통해 공공성을 획득한다. 

 한트케가 '왜 밀로셰비치를 옹호했는가?'를 찾아보며 읽은 글 중에 인상적인 그의 인터뷰가 있었다. 유고 전쟁에서의 학살은 밀로셰비치만 저지른 것이 아니며 반대로 나토군에 의해서도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한트케가 볼 때 전쟁이라는 건 그 시발점은 존재하지만 일단 발발하고 나면 양측 모두 작 중 주인공과 유디트처럼 미쳐가는 것이다. 한트케는 서방의 언론 보도가 한 축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밀로셰비치를 옹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한트케가 '위대한 유고'를 그리워해서라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미 어린 나이에 희곡 뒤에 숨겨진 기호로서의 언어에 주목하고 『베를린 천사의 시』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함께 나아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한트케가 그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전범을 옹호했을까?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이별을 말하지만, 그 이별을 위해서는 양극이 존재해야 함을 절실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단지 가만히 있는데 발전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진실한 공존을 통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 선정 이후 그를 비토하는 많은 미디어와 네티즌들이 잘못되었다곤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한트케의 말과 글을 심층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유디트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나는 무언가를 처음으로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주변 세계라는 것이 더이상 악하지만은 않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 P69

당신들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물건의 실제 소유자가 아닌 종업원들도 심지어 이렇게 말하곤 하죠. ‘그 물건은 /내게서/ 다 팔린 상태입니다!‘ 혹은 ‘/나는/ 카자흐스탄 스타일의 깃이 달린 셔츠도 있습니다!"라고요.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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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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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하의 온도, 참 괜찮은 눈이 오기 직전.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편식은 책 편식이다. 영화나 음악은 인기 있으면 한 번쯤 보고 듣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2019년 9월 알라딘 베스트셀러 리스트만 보더라도 이병률의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는 사람이 라이트 노벨 『어느 날 공주가 되어버렸다 2』나 『2020: 부의 지각변동』을 같이 읽을 것 같지 않다. 내 주변에도 보통 무슨 책을 읽냐고 물어보면 - 애초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긴 하지만 - 판타지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이면 라이트 노벨, 자기 개발서라면 자기 개발서 등 그 분야가 한정적인 경우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소설이나 자기개발서로 빠지긴 하지만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이들의 자화상만을 지독하게 판다. 나는 소설을 좋아했고 에세이는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찾은 건 순전히 광고 때문이었다. 자극적인 광고였다. '뇌출혈, 응급수술 그리고 식물인간.' 제목 마냥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감상에 젖을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소설 같은 광고였다. 으레 에세이라고 하면 위인들의 성공담이나 보통 사람들의 공감, 즉 뻔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는 뻔할 것 같지 않았다.


 책은 네 챕터로 나뉘어 짧은 말들을 담고 있다. 각 산문의 길이는 대부분 짧은 편이다. 신문사 칼럼보다 조금 길며 단편 소설의 한 장(章) 보다 짧은 길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중량감이 대단하다. 시를 읽을 때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것처럼 글마다 집중해야 했다. 조금만 대충 넘기려고 하면 '어느 시점이 넘어가자 우리가 바라는 게 기적인지 이별인지도 모르게 되었다.'와 같이 날카로운 문장들이 빛나고 있었다.

 각 부(部)의 구분은 불명확하다.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한 개인의 관점이 발전하는 과정에 따라 나눈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2부에서는 어른으로 홀로 서는 경험담들이 대부분인데 「용서의 나라」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p. 159) 저자의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1부에서는 성장하는 한지혜의 모습이 드러나고, 4부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제언이 담겨있다 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은 조밀하게 짜여져 있다.

 책이 담고 있는 기본적 정서는 '고군분투'다. 어릴 때부터 셋방을 전전해야 했던 네 남매의 일원으로서 저자는 가난을 실감했고 그를 잊기 위해 책으로 숨어야 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에 대해 갖는 그녀의 심정적 동질감은 바로 '변두리 의식'(p. 85)이었으며 대학을 다닐 땐 극장을 자주 가지 못해 대신 예술의 전당 자료열람실에서 희곡을 읽고 팸플릿을 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p. 190) 가난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 고질병은 그녀의 선택지를 언제나 제한한다. '피차 모른 척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p. 99)은 그녀가 동생에게 욕 한 바가지를 퍼부으며 치사하게 용돈을 줄였을 때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녀는 가난으로부터 현실의 쓴맛을 일찍이 알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심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냉정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p. 194)는 고백은 에세이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그녀는 첫아이를 낳자마자 형제자매를 만들어줄 생각은 단념하고 '동생 대신' 결연아동을 후원한다. (p. 227)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만약 그녀의 사유가 여기까지 였다면 나는 이 산문집을 끝까지 읽지 않았었을 것이다. 가난이 준 현실적인 태도는 동시에 그녀가 사회 문제 역시 잘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사회 이슈에 대한 지적은 따뜻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참고문헌 없음」에서 그녀는 민감한 양성평등 문제에 관한 그녀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힌다. '어떤 태도와 주장은 내게도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다양한 가지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었다.'(p. 236) 그럼에도 그녀 문단 성폭력 기록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된 이유는 차별의 문제는 여성이 아닌 보편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진영논리가 아니라 인류애적인 관점을 잃지 않는 모습은 혐오에 대한 그녀의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한다는 건 지극히 감정적인 문제이므로 된다 안 된다를 논하기는 애매한 것 같다. 그러나 그 혐오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좀 다른 문제다.'(p. 241)


 산문집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저자의 생각에서 끝나기 때문에 균형을 잃기가 쉽다. 앞서 언급한 『개인주의자 선언』의 역시 개인주의자로서 지향을 넘어서 지나친 이분법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어쩌면 지나치리만큼 객관적인 관찰기다. 좋은 의미로 「호출기, 흔적 없는 그리움」만큼 건조한 연애담은 처음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 한국 문학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여성적이라고 비판 한 적이 있다. 내가 한국 소설에 빠진 것도 담담하고 따뜻한 느낌 때문이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에게 반론으로 건네줄 책이 생겼다. 여기 참 괜찮은 글이 있다고.

죽음이 미뤄질 때마다 다행스러웠지만 그건 한편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그만큼 늘이는 일이기도 했다. - P124

흐르는 시간을 흘리지 않고 무언가로 만드는 알림은 내 안에서 울려야 한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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