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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영하의 온도, 참 괜찮은 눈이 오기 직전.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편식은 책 편식이다. 영화나 음악은 인기 있으면 한 번쯤 보고 듣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2019년 9월 알라딘 베스트셀러 리스트만 보더라도 이병률의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는 사람이 라이트 노벨 『어느 날 공주가 되어버렸다 2』나 『2020: 부의 지각변동』을 같이 읽을 것 같지 않다. 내 주변에도 보통 무슨 책을 읽냐고 물어보면 - 애초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긴 하지만 - 판타지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이면 라이트 노벨, 자기 개발서라면 자기 개발서 등 그 분야가 한정적인 경우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대답이었다.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소설이나 자기개발서로 빠지긴 하지만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이들의 자화상만을 지독하게 판다. 나는 소설을 좋아했고 에세이는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찾은 건 순전히 광고 때문이었다. 자극적인 광고였다. '뇌출혈, 응급수술 그리고 식물인간.' 제목 마냥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감상에 젖을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소설 같은 광고였다. 으레 에세이라고 하면 위인들의 성공담이나 보통 사람들의 공감, 즉 뻔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는 뻔할 것 같지 않았다.
책은 네 챕터로 나뉘어 짧은 말들을 담고 있다. 각 산문의 길이는 대부분 짧은 편이다. 신문사 칼럼보다 조금 길며 단편 소설의 한 장(章) 보다 짧은 길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중량감이 대단하다. 시를 읽을 때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것처럼 글마다 집중해야 했다. 조금만 대충 넘기려고 하면 '어느 시점이 넘어가자 우리가 바라는 게 기적인지 이별인지도 모르게 되었다.'와 같이 날카로운 문장들이 빛나고 있었다.
각 부(部)의 구분은 불명확하다.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한 개인의 관점이 발전하는 과정에 따라 나눈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예를 들어 2부에서는 어른으로 홀로 서는 경험담들이 대부분인데 「용서의 나라」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p. 159) 저자의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1부에서는 성장하는 한지혜의 모습이 드러나고, 4부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제언이 담겨있다 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책은 조밀하게 짜여져 있다.
책이 담고 있는 기본적 정서는 '고군분투'다. 어릴 때부터 셋방을 전전해야 했던 네 남매의 일원으로서 저자는 가난을 실감했고 그를 잊기 위해 책으로 숨어야 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에 대해 갖는 그녀의 심정적 동질감은 바로 '변두리 의식'(p. 85)이었으며 대학을 다닐 땐 극장을 자주 가지 못해 대신 예술의 전당 자료열람실에서 희곡을 읽고 팸플릿을 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p. 190) 가난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 고질병은 그녀의 선택지를 언제나 제한한다. '피차 모른 척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p. 99)은 그녀가 동생에게 욕 한 바가지를 퍼부으며 치사하게 용돈을 줄였을 때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녀는 가난으로부터 현실의 쓴맛을 일찍이 알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심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냉정한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도 엄마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p. 194)는 고백은 에세이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그녀는 첫아이를 낳자마자 형제자매를 만들어줄 생각은 단념하고 '동생 대신' 결연아동을 후원한다. (p. 227) 아주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만약 그녀의 사유가 여기까지 였다면 나는 이 산문집을 끝까지 읽지 않았었을 것이다. 가난이 준 현실적인 태도는 동시에 그녀가 사회 문제 역시 잘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사회 이슈에 대한 지적은 따뜻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다.「참고문헌 없음」에서 그녀는 민감한 양성평등 문제에 관한 그녀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힌다. '어떤 태도와 주장은 내게도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다양한 가지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었다.'(p. 236) 그럼에도 그녀 문단 성폭력 기록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된 이유는 차별의 문제는 여성이 아닌 보편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진영논리가 아니라 인류애적인 관점을 잃지 않는 모습은 혐오에 대한 그녀의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한다는 건 지극히 감정적인 문제이므로 된다 안 된다를 논하기는 애매한 것 같다. 그러나 그 혐오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좀 다른 문제다.'(p. 241)
산문집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저자의 생각에서 끝나기 때문에 균형을 잃기가 쉽다. 앞서 언급한 『개인주의자 선언』의 역시 개인주의자로서 지향을 넘어서 지나친 이분법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어쩌면 지나치리만큼 객관적인 관찰기다. 좋은 의미로 「호출기, 흔적 없는 그리움」만큼 건조한 연애담은 처음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 한국 문학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여성적이라고 비판 한 적이 있다. 내가 한국 소설에 빠진 것도 담담하고 따뜻한 느낌 때문이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에게 반론으로 건네줄 책이 생겼다. 여기 참 괜찮은 글이 있다고.
죽음이 미뤄질 때마다 다행스러웠지만 그건 한편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그만큼 늘이는 일이기도 했다. - P124
흐르는 시간을 흘리지 않고 무언가로 만드는 알림은 내 안에서 울려야 한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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