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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씨엘 세트 (1~23권)
임주연 / 대원씨아이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연재 당시 마고트 등장 때까지 읽고 완결 즈음 네타 밟고 체했다가 설 연휴 기간에 이북으로 정주행.
1권부터 23권까지, 특히 23권의 후일담 진행조차 산만해서 두 번을 읽었는데, 그 산만함조차 수단으로 하여, 전하려는 무언가를 향해 스물세 권 통째로 온 힘을 다해 달려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씨엘 전권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작가님이 캐릭터들을 방임하여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영도 작가 타입의 도구적 활용에 능한 분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수정했음; 이비엔과 크로히텐, 라리에트 모두 인류와 별의 생존을 위한 도구였단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주조연을 막론한 모든 캐릭터가 지닌 표면과 이면이 드러나면서, 선역과 악역은 모호해지고 그 경계에서 각자의 사정이 설득력을 획득한다. 마지막 권에 도달해, 그러한 사정과 이유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갈등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해진 행로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전율했다.
그러나 라리에트와 크로히텐, 그리고 이비엔이 밟는 궤적이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을 지니나 감정적으로는 이해도 공감도 안 된달까... 개인을 희생하여 어떤 위대한 목적을 이루려하는 캐릭터들에게 나는 늘 거리감을 느끼는데 라리에트와 크로히텐의 선택에서 그러한 위화감을 가장 강하게 느꼈다. 돌이켜보면 주요인물인 이비엔, 라리에트, 제뉴어리, 도터, 마지막으로 크로히텐까지 너무 우주구급으로 강한 사람이라 나로서는 쫓아가기가 버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마고트나 도터가 자신을 정체화하는 방식이나, 테나이얼과 옥타비아의 관계 등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제일 ?!?!?!?!?! 스러웠던 부분은 제뉴어리와 도터, 그리고 유지니아의 관계인데... 23권의 제뉴어리와 도터는 너무 혼파망이었다. 씨엘 스물세 권은 거대한 오픈 릴레이션십의 사고 실험이었던 것일까. 그런 것으로 하자.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오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장편만화. 도착지에서 찾게 된 답에 대해 납득하든 그렇지 않든, 여행 자체로 즐겁고 값졌던 시간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