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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파가 지나간다 - 로버트 브라우닝

 바람의 그림자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분노의 포도 - 존 스타인벡

 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대전 광역시

 순수, 외로움, 유년

 

 센티멘탈 - 끌로드 볼링

 500번의 구타 OST - 프랑수아 트뤼포

 

 

 

 배경은 90년대 초의 대전이다.

 

 90년대 초의 대전은 광역시가 아닌 직할시였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 끝무렵으로, 문 앞에 선 IMF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 이후의 무드이다.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넘어가는 기점이다. 대내외적인 무드가 얼마나 극에 영향을 줄 지는 모르겠다. 물론 민주화에 대한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그 당시는 민주화의 열망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혹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극 안의 인물이나 대화에 영향을 줄 것이다. 아마 생각으로는 2와 3의 주변 인물에 많을 것이다. 대전의 연극계는 지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군인 역시 하나회 정리로 말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고딕풍이 될 지도 모른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들어갈 것이다. 사폰이 쓴 '바람의 그림자'의 영향을 받은 극이니 만큼 영향을 뺄 수는 없다. 고딕풍과 기계에 대한 분위기를 얼만큼 잘 살릴 것인가.

 

 내용에 대한 구상은 없다. 어떻게 될 지 스스로 모르겠다. 작법에 대해서, 이전의 경우를 따라가보려고 한다. 예전에 썼던 '겨울 서곡'처럼 생각하지 않고 휘갈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써진 소설이 잘 쓴 소설이다' 라는 피츠제럴드의 말이 기억남을 것이다.

 

 테마는 있다. 테마는 '순수' 이다. 이 경우에 생각나는 소설은 웰즈의 '벽문'이다. 대전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내 무의식에 맡겨야 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 90년대 프로야구 우승팀부터 개봉했던 영화, 드라마들. 사건들. 청주 와우아파트 사건도 아마 들어가지 않을까.

 

 어느 시대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90년대 초 역시 과도기였다. 90년대 초의 경제, 정치 등등.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려고 하고,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되던 시기가 아니었나. 혹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 없다. 극에서 얼만큼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셋이다.

 

 1.

 대전시 소제동에 사는 사회복지사이다. 장애인 복지관을 하려고 했으나 그 때에는 장애인 복지관이 별로 없다고 들었다. 대덕장복의 경우에도 2000년 이후에 생겼고. 밀알 복지관 직원으로 하려 했으나 마뜩찮아 노인 복지관으로 하는 게 나을 듯 싶다.

 

 대성여고 앞 미화 길에 산다. 어릴 적부터 대전에서 살았다. 원래 살던 곳은 대동천 건너편에 산 걸로 생각중이다. 그 때 강간을 당한 걸로 설정하려고 한다. 어릴 때 본 로봇 소녀를 다시 보기 위해 대전에 남아있다. 살인사건의 여부는 글을 진행하면서 결정하려고 한다.

 

 2.

 지금은 없어진 유천동 홍등가의 창녀이다. 나이는 그 직종의 평균이다. 가장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일단은 기둥서방이 하나 있는 걸로 정하고…… 추후에 대흥동 예술의 거리로 나아가게 할 생각이다. 연극쪽으로 보낼 생각인데, 손님을 통해서 계기를 마련할까 생각중이다.

 

 가장 인생이 뒤바뀌는 주인공이다. 1과 어떻게 얽힐지 모르겠다. 얽히지 않을지도 모르고, 얽힐지도 모른다. 친동생에서부터 지나가는 사람에까지 경우는 다양하다. 굳이 소설을 살리고 싶다면 2가 없는 편이 낫겠지만, 소설의 목표중 하나인 '대전의 재구성'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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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개론은 제가 혼자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입니다. 옛 사랑의 기억을 달래주던 김동률의 노래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관에 갔었죠. 영화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밤에 티비로 다시 봐도 영화가 주던 그 감정이 올라오더군요.

 

 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할 몇 부분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빛의 활용입니다. 모름지기 빛(혹은 조명)은 극의 분위기를 결정하죠. 특히 로맨스는 그 빛을 따라 인물의 심리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인물들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유명한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의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인데요, 그의 데뷔작이라고 볼 수 있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제대로 드러나죠. 창을 뚫고 들어오는 줄기빛으로 만화책에서 볼 법한 연출처럼 설렘의 음영을 드러내죠. 빛을 잘만 활용하면 어떤 못난 인물도 감동적일만큼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데, 여기 건축학개론은 화사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특히 주인공들의 젊었을 때 모습을 봄처럼 찍었습니다. 초반에는 화사하다 못해 아주 눈이 부셔요. 강의실에 들어오는 빛이나, 그 사이로 들어오는 수지의 모습. 빛을 통해 설레이게 하죠.

 

 그리고 편집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 영화의 영상은 한 시간축을 이루는 시퀀스가 따로 덩어리로 떨어져서 관객들에게 보여지죠. 예를 들면 이제훈이 수지랑 철길 위를 걸은 다음에 나오는 영상인데, 바로 밤으로 넘어가죠. 납득이가 나오는 부분도 극의 흐름과는 좀 동떨어집니다.  현재와 과거를 나타내는 부분도, 초반이 지나면 연출상의 설명 없이 넘어갑니다. 대부분 이런 편집을 하기 위해서는, 화면을 넘길 때 최대한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연출상의 기법을 씁니다. 납득이가 처음 나오는 장면이 그런데요, 이제훈과 수지가 같이 걷다가 수지가 가니 옆에서 납득이가 나타나죠.대부분 이런식으로 편집을 위한 기름칠을 합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그런 부분에서 휙휙 넘어가죠.

 

 어떻게 보면 관객들에게 불친절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듣지 않는 이유는 이 시퀀스들이 한데 뭉쳐 한 이야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연기, 이야기, 여러 연출들의 힘이지요. 오히려 자연스러운 화면넘김을 위한 연출에 신경썼다면 마지막에 주는 감동이 줄어들지도 모르니,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런 연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주는 감정이 첫사랑의 설렘 보다는 이미 세월이 주는 회한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은 첫사랑일 뿐이었습니다. 음대에 다니던 아리따운 아가씨는, 돈 많은 의사랑 결혼하고, 위자료를 더 받기 위해 이혼하기를 미룹니다. 하나뿐이며 지긋지긋해하던 피아노 재주로 다른 피아노 학원이 있음에도 또다시 학원을 차립니다. 썅년 맞지? 라고 묻는데, 썅년 맞죠. 그리고 이 썅년은 아버지를 수발들며,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제주도에 집을 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현실적인 썅년에게 설레지 않아요. 혹 설렌다 하더라도 그건 풋풋함을 상실한 이혼녀와 약혼남의 위태한 사랑입니다. 청춘의 로맨스는 현실에 부대끼며 속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도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게 철없는 짓을 많이 하고, 또 그 철없음을 나중에 깨닫죠. 게스 티를 보여주는 장면이 그런 의도 때문입니다. 단순히 멜로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근본적인 심상, 이문열이 선집의 소제목으로 말했던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을 보여주기 위해 넣어야 했어요.

 

 그리고 이 효과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으로 완성됩니다.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 택시 기사가 보았다시피 한겨울 새벽 거리를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심야 택시의 묵시록적인 관통 속에서 휙 지나가듯 내 첫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완성된 순간 비스듬히 금이 가버렸다.>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서 적은 것처럼 빈 집에 놓인 CD플레이어와 전람회의 음반, 그리고 다시 한가인에게 도착한 기억의 습작은, 스케치가 끝내고 완성한 기억과, 그리고 완성된 순간 금이 가버린 쓸쓸한 기억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마지막, 카메라가 공중에서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은, 이제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습작을 마치고 현실로 눈을 돌릴 때의 회한의 심상, 그 울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좋은 영화는 많지만, 좋으면서 재밌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좋은 영화를 추천하면 사람들이 그 좋음을 인정하면서도, 좋음에 대한 무게에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웃음이 끼면 그 좋음이 가볍고 쉽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그 부분을 납득이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마 납득이가 없었다면 관객수 100만은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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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집중해서 써보는 감상글이다. 나만 권여선을 떠올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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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믿다'의 권여선이 마음에 들었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도 괜찮았다. 분홍 리본의 시절을 뽑아든 건, 그 회한의 서술 때문이었는데, 이런. 표독하게 날 선 언어들이 뎅강뎅강 자신의 느낌을 정의한다. 못나고 비뚫어진 사람들을 적었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지만, 고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태연하게 베어버린다. 이런 글을 생각했던 게 아니었었다.

 

 근데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책은 사뭇 달라졌다. 관조와 회한의 어조이다. 냉정한 문장들은, 조금 여유를 가진 모습으로 바꼈으며, 때문에 느긋한 흐름에 피곤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 글은 쓰겠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상태다. 누군가 권여선을 잡았다 풀어놓은 듯하다. 서울의 달빛 0장에서 보인 김승옥의 분노처럼, 무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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