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서다 - 불행한 시대 이상한 나라에 사는 우리의 자세 우리 시대의 질문 3
김중미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곁에 서다]


[★★★☆]


[사회를 향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2016. 6. 16 ~ 2016. 6. 20 완독]






사회를 향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사람을 살리고자 나섰는데 가치 중립적인 게 있을 수 있을까요?

(덧, 뉴스에서 그렇게 어필하는 생계형 범죄... 와는 별개로..)

p170

큰 흐름을 거스르는 건, 아주 용기가 필요해... 그리고 나는 그 용기를 존중해.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아.

즉, 너 같은 사람을 특수한 사람 축에 들어가지. 그에 비해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쓰레기 들이지.

근데, 그게 평범한 인간이야.

만화 <진격의 거인> 中


 개인적으로 '나'라는 인물을 스스로가 판단한다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이 든 이후에는 '나는 어떻다'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는 인지해야 죽을 때까지 최대한 올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가끔은 그런 생각을 꺼내보기도 한다.


 그럼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도 내가 '착하다', '올바르다'라는 생각을 별로 들지 않는다. 물론 친구들이 별명으로 쓰레기니, 또라이니, 싸이코니 하는 (... 잠깐만... 이것들이...) 수식어는 집어치우고 그냥 '평범하다'랄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싶고, 일은 적당히 하고 싶고, 주말에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싶은... 그런 평범한 인간. 불의를 참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인간 말이야. (쩝...)


 

 우리 아이들은 거의 다 노동자로 살아가겠죠. 저는 가장 큰 착각이 '내 아이는 노동자가 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인 것 같아요.

p45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조지 오웰)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과정과 활동이 모두 정치다.

p54

 "선생님은 전쟁터에 계신 거예요.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어도 총 맞으면 아파요. 다쳐요. 총을 못 쏘게 해야죠. 선성님 직장처럼 열서너 시간씩일 시키는 곳에서 아무리 저염식을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해도 고혈압 못잡습니다. 그런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다가는 죽습니다.

p157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어찌 보면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

뉴스에서 최소 한 번쯤은 들어본 강정마을, 세월호, 삼성반도체, 성 소수자, 용산 참사. 우리와 가장 가까운 얘기지만 가깝지 않은 얘기로 치부하며 살아온 평범한 이들에게 던지는 책임과 의무에 관한 이야기들.


 우리는 안다.

'모두가 아닌 일부'라는 단어에 숨어 자행되는 비합리적인 일들. 최저 시급을 챙겨주는 것은 멍청한 짓, 월급에는 야근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논리, 주말에 출근하는 것은 당연하고, 산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 (실제로 직장에서 다치는 것이외에 오랜 기간 일해서 누적된 병(디스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산재처리가 어렵다는 것) 일부의 마법, 일부의 기적. 다 머나먼 곳의 이야기지?



다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고, 환산되는 것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p160

 변호사법 제1조 제1항

-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기독교는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산속에서 숨어지내야 했던 소수자들을 위한 종교로 출발했습니다.


 타인을 위해, 미래를 위해, 내 아이가 살아갈 희망찬 나라를 위해 등. 스스로가 '옳다'라고 믿는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이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 나는 그저 타인, 제삼자. 그 길에 발끝이 닿을까 봐 두려워하는 쓰레기. (...) 타협안은 누군가가 고군분투하면서 앞으로 걸어갈 때, 겨우 경계선에서 마음속으로 응원하거나 성명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 다겠지.


 <곁에 서다>라는 책이 용기 있는 우리 이웃이 정감있게 어깨동무를 하며 지나가는 소리로 '너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니?'라고 물어오는데, 허를 찔린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 그리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그저 비릿한 미소가 입에 걸린다. 슬프네. 내 용기는 어디 있을까.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지 의문이 들어요,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데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에 내 삶을 그냥 맡겨 놓는 게 오히려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p268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 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 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First they came>

- 마르틴 뉘묄러 -


<책 속의 영화>

: <우리 학교> <박치기> <60만 번의 트라이>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어 퓨 굿맨>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밀크>


<책 속의 책>

: <성장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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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같은 꿈을 꾸다 1 - 난세신인
조경래 지음, 오연 그림 / 길찾기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삼국지 같은 꿈을 꾸다]


[원가의 밑에서 솟아나는 대업의 꿈]


[2016. 6. 18 ~ 2016. 6. 19 완독]






 나는 오랜만에 정사 삼국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번 책이지만 저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니 같은 책이라도 제 각각 새로운 느낌을 준다.

p15

 '과연 나는 그들의 인생을 바꿀 자격이 있는가?'

p245


 오랜만에 들어온 의뢰(?)로 읽기 시작한 <삼국지 같은 꿈을 꾸다>. '이미지 프레임'이라는 회사가 어디 회사지...라고 검색을 해보니 길찾기(...). 이거 용자 회사 아닌가? (#참고 링크) 이렇게 훌륭한(?) 회사가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리뷰에 힘을 줘봤자 내 필력이 거기서 거긴지라 내마음가는 데로 써보자.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와 무협으로 대표되는 장르 소설과 일본에서 시작된 라이트 노벨은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하고 있다보는 편이라, (솔직히 그런쪽으로 출간이 많이 된다.) '이런 종류겠지..'하며 별다른 생각없이 Yes라고 했다가 집에 도착한 책의 두께를 보고 놀랐다. (오..Sh...)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회에 갈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이미 그 곳을 외울만큼 잘 알고 있지만 이 특정 피아니스트가 그 곡을 어떻게 해석할지 듣고 싶은 거지요.

소설 <디어 존, 디어 폴> 中


 일단 정사(正史)는 아니다.​ (표지가 너무 정사틱해서..)

 표지가 이문열의 삼국지(#링크 표지)를 다시 리메이크한듯 보이는 중국풍 그림의 인물에 난세신인이라는 한자. 노숙(魯肅) 자경(子敬)이라는 소제목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시작은 평범하다. 취미가 독서인데 무려 정.사. 삼국지를 몇번이나 독파한 (미친...) 삼국지 덕후가 불현듯 잠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삼국지 시대라는 놀라운 설정! (클리셰를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중요하지) 근데 기라성같은 무장을 냅두고 왜 원술의 부하 이풍의 자제로 등장하는 거지? 코에이(Koei)의 삼국지를 하드 코어 모드로 즐기셨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왜 원술일까. 유비 진영이나, 조조 진영은 이미 닳고 닳은 소재라고 치고, 간간히 손씨 집안도 나오니까 패스. 아무리 생각해도 '반동탁연합'에서 가장 멍청한 진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원술인데 말이다.

 "다만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하나로 덤비면 저는 열로 덤빌 것이요, 상대가 열로 덤비면 제가 백으로 덤비면 된다는 것을요. 역략이 닿지 못한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p49

 일도(一刀)에 하늘을 가르고 발차기 한방에 적군 병사가 우수수 쓰러지는 고능력자 배틀물(소위 '먼치킨물')이라면 대충보고 덮었을 지도 모른다. 영웅이 활약하는 것도 좋지만 '삼국지 연의'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에서 이런 식의 전개로 흘러간다면 '별로'라고 생각이 드니까. (물론 연의도 정사는 아니다.)


 오직 주인공 이준경에게 주어진 능력은 단 하나. '정사 삼국지'의 내용을 독파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개략적인 흐름이 아니라 삼국지 연혁 도감과 인물 도감을 알고 있다는 점. (적다보니 엄청난거자나... 인간 로또 아니야..) 스스로의 능력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숙, 여몽, 송겸, 육손과 같은 쟁쟁한 인물의 호감을 얻고 함께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여, 군주가 원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진영으로 거듭나는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p202

 그래, 내가 믿을 것은 물량 공세다.

p126

 "일단 믿자. 저들의 실력을 , 저들의 마음을."

p252


 특히, 자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진영의 쟁쟁한 천재들을 물리치기 위해 택한 '물량공세'라는 현실적인 타협안과 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천재 동료들과 맞물려 앞으로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정사 삼국지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방진 전법, 현대 철학 등을 철저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평범하면서도 범재 이상의 기운이 철철 흘러 넘치니 '성장물'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개인의 능력을 국가와 회사의 부속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p249

 빙한어수(氷寒於水)는 물에서 나온 얼음이 물보다 더 차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으면 청출어람(靑出於藍), 빙한어수(氷寒於水)라고 한다. (사자성어)


 뭐. 재미있다. 즐겁게 읽었다. 다른 말이 필요한가?

전 10권으로 끝나는 <삼국지 같은 꿈을 꾸다>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지만... (이 두께로 10권이라니..) 주인공인 이준경의 행보를 따라가면 '단 한명의 사람도 꼭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몸소 일깨워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유비, 조조, 손책,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등과 같은 출중한 인물만 기억하고, 또 흠모하고 있지만 사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단 한명의 사람'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다음 권이 기대되는 재미있는 소설.




 제갈량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어리석은 존재들이 아니다. 앞으로 나라를 운영하는데 꼭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p413

 수한님을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때는 그대의 정의와 나의 정의를 판가름해 볼 수 있겠지요.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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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그림자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5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나선숙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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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그림자]


[★★★★]


[이 녀석들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2016. 6. 8 ~ 2016. 6. 13 완독]]





스포일러 일부 포함. (엔더의 게임 시리즈를 봤으면 그닥)



"넌 콩 한쪽 만큼의 가치도 없어."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엔더의 게임>의 속편 <죽은자의 대변인>인 줄알고 내용도 보지 않고 구매를 했다가 살짝은 실망했었던 <엔더의 그림자>. <죽은자의 대변인>은 2000년에 <사자의 대변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정식발매(정발)되었지만 절판되어 구해보기는 힘든 실정이라 슬프다.


 사실 인터넷 중고 매장에서 찾아봤는데 절판이라고 최저 10만원!! 와우! ... 영문판 사서 내가 번역해서 보고 만다. (이렇게 읽을 수는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짜증나는데.. 실력이 미천해서 제길..) 어느 도서관에 꼽혀있기를 바란다.


 <엔더의 그림자>는 <엔더의 게임>의 동시간에 벌어진 사건을 엔더가 아닌 빈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다른 시각으로 맛보여 준다. 이미 뻔하게 알고 있는 사건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다. 소설의 몰입감은 예측이 가능하든 안하든 앞으로 벌어질 내용을 상상하며 보는 맛이 있는데, 이미 완성되어 버린 특정 사건을 다시 다루고 있으니 재미가 반감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존 스칼지의 <마지막 행성>을 다른 시선으로 본 <조이 이야기>를 매우 재미있게 봐서 오슨 스캇 카드라는 작가만 믿고 책을 읽어 나갔다. (사실 이미 구매해 버린 측면도...)



 이 녀석들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p123


 이미 6년? 7년전에 봤던 <엔더의 게임>이라 큰 흐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 세세한 내용과 엔더를 둘러싼 등장 인물도 '이런 인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 였으니 나의 사소한 걱정은 아무런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기억력이 꽝이라 좋은 점!)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 두 단어가 소설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남의 것을 뺏지 못하면 손쉽게 죽음에 이르는 로테르담의 거리, 콩 한쪽의 값어치도 없어 빈(Bean)이라 불리는 꼬마의 악전고투 생존 일기. 신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못하지만 비상한 머리 하나로 먹을 것을, 쉴 곳을, 보호 받을 장소를.. 이윽고 우주 전투 학교로 차출되는 과정은 어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한다.



 모든 일이 끝나면, 아킬레스는 로테르담 파파들 중에서 리더로 부상하리라. 그리고 사전트는 그의 옆에 있을 것이다. 아킬레스의 앙갚음에 대한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묻을 것이다. 그것이 사전트와 이 가족과 로테르담의 모든 아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p87

그는 그녀에게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에게 그 모든 것들은 음식과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불과 했다.

p117

 나중에 자신에게 득이 될 것 같은 뭔가가 생각나면 그 일을 행하는 것 뿐이었다.

p179


 타인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적으로 등장한 버거에 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냉철한 지휘관이지만 따뜻한 소년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엔더와는 다르게 빈은 아이이지만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득과 실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누가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 점이 인상깊다.


 전술 학교에 가기까지 이러한 빈의 태도가 The 엔더. 그러니까 세간에서 유명한 '전설의 엔더'를 만나서 부터 그에게 홀린듯이 빠져드는 태도는, "남따위 필요없어! 세상은 솔로플레이야!"라고 외치던 빈이 상호 협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인간 관계가 친구라는 말을 언급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해 안타깝기도 하다. (진성 츤데레였는데..)



 엔더 위긴, 그는 버거들의 3차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방어하는 함대 지휘관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다.

p485


 버거와의 마지막 전쟁으로 가는 도중까지의 빈의 성장과 빈의 과거를 쫓는 지구의 칼로타 수녀의 이야기가 반복되며 진행되는 <엔더의 그림자>는 빈이 엔더와 같은 이타주의로 변모하면서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작중에는 애타주의라 표기되어 사전을 찾아봤는데 동일한 의미더라)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지휘관 엔더를 위해 그의 그림자를 자처하여 부대를 만들어주고, 엔더를 돌봐주는 등 보좌를 훌륭하게 완수하는 빈.


 버거와의 전투를 상정한 게임이 진짜 전투임을 유일하게 알아챈 두뇌이지만 자신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모든 부담을 엔더에게 넘긴 부분이 '역시 빈은 빈이군..'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새롭게 쓰여진 "게임"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봤던 <엔더의 그림자>. 소소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부분을 둘째치고, 엔더가 작중에서 그렇게 크게 언급되지 않고 거의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좋았다. 작가의 실력에 탄복한다. 멋져.





"전 그 녀석의 친구가 아니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우린 형제라고"

"형제를 쉽게 포지하진 않아요."

p370

 다른 사람들이 불러주는게 내 이름이다. 그게 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부르는게 내 이름이다.

p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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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반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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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우리는 이미 괴물일지 모른다]


[★★]


[2016. 5. 23 ~ 2016. 6. 8 완독]





악은 인간에게 낯설지 않다.

p7

악은 평범한 현실이다. (책의 내용을 살짝 비틈)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암암리에 인정받고 있는 몇가지 도시 전설(?). 자신이 속한 집단에 꼭 또라이 한명씩은 있다는 또라이 보존의 법칙, 사람이 평생 떨 지랄은 정해져 있으니 가면 쳐 냅둬야 한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 두가지 법칙이 가리키는 인간의 특성은 '세상에 미친X이 많다는 것이다.' (주변에 없으면 제.발. 그것이 본인임을 인식하기를...).


 그리고 뉴스에서 드러나는 정신나간 범죄 행위가 하루를 거르지 않고 터져나오는 세태를 보면 우리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방향을 잡고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뉴스에서 드러나지 않는 범죄는 또 얼마나 많을까?)


 좋은 규범과 올바른 가치가 실종 되었다고 모두가 혀를 차며 자신은 이성적이고 법없이도 살아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에게 묻고 싶다. 정말 당신은 그러한가? (특히 내가 그렇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나는 욕망을 거세하면서까지 도덕적 군자로 살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욕망이 다가 온다면 충분히 타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설 <가토의 검> 中

변치 않는 자아가 있다는 가정은 극도로 의문스럽다.

p17


 "세상 참 좋아졌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등의 말을 손쉽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봐서는 세상은 크게든 작게든 항상 새롭게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2016년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환경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환경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가 괴물이나 또라이, 미친X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새로운 환경. 이는 사람의 모든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환경과 함께 가치관, 성향, 정체성 등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민자/ 망명자를 배척하는 민족주의 집단의 득세와 주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차별하는 (대놓고) 인간의 등급화 등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가기에 충분한 단초라 생각한다.



우리의 외면, 내적 경험, 태도 등은 우리가 수신하는 메시지들에 의해 결정된다.

p30

 지식은 윤리에 종속된다. 가지가 없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덧. 존재해서도 안되고..)

p80


 특히 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있는 그대로 습득을 한다는 다음 세대(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 '문화(환경)에 길러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 사회, 문화로 아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정체성의 형성이 '사람의 존재가 그렇게 태어난다'라기 보다는 '성장에 더 밀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自我)'라는 이데올로기는 환경과 문화, 규범과 가치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천차만별의 형태를 띄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개인은 '편견 덩어리'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옳으며 그 편견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인생의 목표가 아닐까 싶거든...


 

 모두가 자신의 규정을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데올로기는 원시적이고 낡았고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p37

 어쨌든 역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종교는 도덕적 힘을 잃었고 이제 과학이 방향타를 잡았다. (인간은 악하고 죄가 있다는 종교적 관점이 변화 할 수 있다는 관점의 등장으로 인해서 큰 변화를 맞이 하였지요. 그 중 하나가 과학인데.. 만능 과학주의는 또 다른 문제점)

p65

 '자연도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개인을 노린다.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을 희생시켜 성공을 일구어내는 자가 가장 강한 남성 혹은 가장 강한 여성이다. 판단의 기준은 성공이다. 

p87


 이러한 새로운 규범/ 가치의 등장으로 인한 시대 관념의 변화는 좋은 수도 혹은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변화의 고삐를 개인이 어느 방향으로 잡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 즉 문화/ 시대상/ 환경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결코 긍정적인 지표를 보이지는 않는다.


 사회의 해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며,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자가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윤리적인 사람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인터넷 자경대가 자신의 말이 곧 진리임을 전파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각종 프레임/충(蟲)/헬(hell)조선 싸움으로 번졌는데, 아무리 새로운 문제가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옛날 때가 좋았지" 류의 발언.

이런 식의 구호들이 잘 팔린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나에겐 이런 현상이 인간의 이성이란 불안한 직관을 덮은 얇은 칠에 불과하다는 증거로 밖에는 안보인다. p125


 옛날이 더 좋았어! 이런 생각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가슴이 아프다.

p127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낳고 있는데, 내가 그 새로운 것을 좋아 할지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여기에 없어서 그걸 못볼테고, 너는 보겠지. 형이나 나같은 사람들은 폐물이 되었고 세상을 떠나야 하지만, 이 사회의 의미있는 것들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야.

 소설 <파수꾼> 中

 

 옛날이 무조건 좋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만들어 나가야할 의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교훈으로 삼아야지 곱씹을 거리는 아니라고 보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누가 뭐래도 우리는 많은 학자가 규정한 '신자유주의'라는 틀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출발은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은 스스로의 이익을 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히 경쟁해 쉬지 않는 성장으로 최고의 결과를 배출해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개인탓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과게에는 경제가 종교, 윤리, 사회의 조직들로 이루어진 전체 조직에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선 그렇지가 않다. 윤리와 사회가 '시장'에 복종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 이론으로 그치지 않는, 훨씬 더 포관적인 이데올로기이다.

p130

 정통 자유주의는 국가와 사회의 엄격한 분리를 추구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소위 자유 시장에 복종시키려고 한다.

p130

 경제적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지적 업적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깔고가는 능력주의와 결합해 "우리나라는 사람이 자원이다."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엄청난 능률(?)와 효율(?)을 발생시켜 한강의 기적이 되었다. (긍정적인 측면만 기술한다.) 이렇게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는 지금 어떻게 평가되고 있나.


 '경제적인 가치를 생성하는 것' 이외는 모든 것이 등한시 되어 오랜 기간 지켜온 좋은 전통과 문화는 사라지기 일보직전이고, 올바른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철학같은 위대한 질문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좋은 문구로 전락했다. 인문의 가치는 개인이 죽을 때까지 생각하고 훌륭한 인성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요즘 보면 '힐링'같은 '트랜드', '유행'의 일종이지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소위 '성공'으로 대변되는 소수의 인원은 새로운 엘리트 계급으로 성장하여 다시 과거와 같은 학벌, 돈, 권력과 같은 폐쇠적인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모두가 리더(Leader)가 될 수 없음에도 '당신도 리더가 될 수 있다!'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대학은 취업, 인풋/아웃풋으로만 존재하지 고등 학문/ 지적인 성장을 위한 곳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성공이 새로운 도덕의 기준이라면 새로운 비도덕적 인간은 실패자이다.

p182

"노인들은 살인적인 등록금에 관심없고, 젊은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 노인들의 빈곤과 자살에 관심이 없다."

책 <분노 사회> 中

 공익을먼저 생각하는 공동체 윤리가 실종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도덕적 기준은 수수 공리주의 성격을 띤다. 모든 것은 생산, 성장, 이윤의 개념으로 측정된다.

p188


 우리를 지탱해왔던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성장이 멈춰버린 지금, 성장때문에 묵인되어 왔던 문제들이 물밀듯이 터져나오면서 사람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변화해 왔던 사회의 자화상, 우리의 정체성. 새로운 규범의 이름은 효율이고 목표는 물질적 이익이며 단 하나의 덕목은 소유욕이 되어버린 시대에게 말이다. (p194)


 '성공'이라는 이름은 모든 것을 규정하고 판단 기준이 되어 세상을 재단(裁斷)해왔다. 이윽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게 되었다.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불러와 결국 사회 자체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는 타인의 존재 유무이다.) (사회는 동일성과 차이, 공동체와 개인의 균형이 유지될때 제 기능을 다한다.)


 위기가 세상을 잠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말한다. "이대로는 안된다!"



경제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었다. 사방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중략) 모두가 똑같은 확신을 품고 있다. 어쨌든 내 탓은 아냐. 나는 피해자일 뿐이야.

p249

 청소년이나 청년들만 신자유주의적정체성을 키운 것이 아니다. 부모들 역시 이런 방향으로 힘껏 떠밀려 왔다.

p250

 그러나 우리가 행동은 그렇게 하고 있을까? 올바르게 고쳐 나가고 있는가? 역시나 스스로의 이익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말은 누가 못하겠는가? 나조차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렇다. 이러한 정체성을 기성 세대에, 아니면 청년 세대에, 그것도 아니라면 청소년 세대에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제 기능을 다하는 이상적인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잘못하고 있는 것은 고쳐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함을 알것이다. 당신이 아니고 나, 자신.


 '어떻게 고치자'라는 해법보다는 우리가 괴물이 된 원인에 초점을 맞추고 심도있게 파악을 해왔던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미 괴물일지 모른다.





인간은 때때로 운명의 주인이 된다네.

우리가 아랫것 노릇하는 잘못을... 브루투스,

별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니까.

p264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First they came>

- 마르틴 뉘묄러 -



 <책 속의 책>


<멋진 신세계> - 헉슬리 

<능력 주의의 등장> - 마이클 영

<덕의 상실> - 매킨 타이어

<에덴의 동쪽> - 존 스타인 벡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책임의 압박감, 왜 부모는 죄책감을 느끼나> - 카트 샤무브로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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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 100엔 보관 가게]


[★★]


[그자리 그대로]


[2016. 6. 4 완독]





무엇이 오든 주인은 보관합니다. 그게 일이니까요.

p26

손님은 하루에 한 사람이 올까말까.

p10

"이곳을 지금 이대로 두는 것이 제겐 중요합니다."

p112


 현실에는 없을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는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의 보관가게.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가게가 아니다.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하루 보관료를 100엔으로 계산해서 선금으로 받은 후,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가게 주인에게 물건의 소유권이 넘어가는 특이한 가게.


 인적이 드문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 처마에 걸린 포렴(#링크 일본식 간판)이 아니라면 가게인지 모를 아담한 가게에는 항상 책상에 앉아 손으로 책을 읽어가는 맹인 주인이 손님을 기다린다. 이곳이 처음이 아니라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목소리만으로 먼저 손님의 이름과 보관한 물건을 기억하는 뛰어난 기억력의 주인장이 현실에서 한발자국 벗어난 몽환적 느낌을 자아낸다.



 "행복하니?"

 "글쎄, 다 이런 거 아닐까?"

p152


 무엇보다 독특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보관 가게와 주인장'이 중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모두 다르다. 처마에 걸린 포렴, 물빛 자전거, 진열장, 고양이, 소녀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모두 달라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물건이 삐지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온다)


 한 때는 푸근한 할아버지의 느낌으로, 다른 때는 새침한 아가씨의 느낌으로 보관가게를 그려내니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가게와 맹인이라는 신체적 한계 때문에 밖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주인장에게 다른 역동성을 부여해주어 좋다.

 

 그리고 각 단락마다 행복, 약속, 기다림 등의 주제의식이 깔려있어 시종일관 훈훈함을 유지하여 마음 한구석이 따뜻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자리 그대로'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나의 기억에나 존재하는 추억 속의 장소같은 <하루 100엔 보관 가게>. 즐겁게 읽었다.




 "나와 주인은 동시에 비누 아가씨를 보았다."

덧. 작중에 언급된 오르골의 트로이 메라이.


오르골 버전 (링크)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버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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