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중독]


[★★★★]


['다음'이라는 꿈]


[2016. 11. 22 ~ 2016. 11. 24 완독]




 지금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란 게 자리를 배분하는게 아니라 자리를 배분받지 못한 이들에게 네가 왜 자리를 배정받지 못햇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예요. 그리고 그 설명이 '네가 준비가 덜 됐다'인 거죠.

p24

 초등학생의 올백신화가 있죠. 초등학교까지는 가능하죠. 국영수예체능 다 잘하는게. 하지만 올라가면 그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는데... (중략) 커리어에 흠집없이 그래도 가야하고..(중략) 모아니면 도에요 인생이(All or None.)

p58



 ...

두분 정면 샷이 너무 부담스러운데...(죄송.)


 대한민국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몇몇 있다. 가격에 대해서 별다른 일언반구가 없다는 말이다. 아플 때 들어가는 병원비/ 약품비와 XX와 XX.. (이건 적으면 논란거리라..패스). 그리고 공부에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있다. 우리가 공부의 크고 진하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청소년기를 수능에 올인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잡기위해 스펙에 올인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서 진급을 위해서/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는 삶. 오죽하면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 죽을때까지 공부하라는 자기 계발서가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항상 예외는 있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였던 서태지, 사후에도 이따금씩 미디어에 등장하여 살아있음을 뽐내는 앙드레 김, 10대 청소년의 우상인 연예인들도 전통적인 공부와는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이들이라 하겠다.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면서 금이 가다가 부서져버리는 것 같아요.

p18


 '어느날 문득, 갑자기' 이런 표현을 쓰기가 무색하게 이 땅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삶에서 공부가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 이제는 공부가 안정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아니면 잠깐의 눈결로도 봐왔을 것이지만 우리는 외면해 왔다.


 예외는 예외 일뿐,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오로지 공부뿐이라는 것을 기정 사실화 했다. 누군가 이러한 명제에 도전을 한다면, 공부를 못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낙오자/ 패배자/ 낙오자 등의 이름표를, 공부를 잘한 이에게는 배가 불렀다/ 니가 잘나서 그런 소리를 하지? 등의 이름표를 붙여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공부 중독>이 시사하는 점은 상투적이지만 계속 언급해서 다수의 인식을 바꿔야 하는 작업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시대(時代)와 세대(世代)를 구분해서 쓴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기간을 세대, 역사적인 시간/ 지금있는 시기와 같은 뜻은 시대로 구분된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다른 세대를 살고 있다."라는 말이 나오고 앞선 세대에 '기성세대(旣成世代)'라는 말을 붙여 구분짓고 있는 지 모른다. '다른 세대를 살고 있다."는 자라온 모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를 아우르는 가치관이 차이가 있다는 말의 다른 이름이라 말할 수 있다.


 한국은 적어도 평균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뜻입니다. 평균이 되지 못하면 탈락이고 낙오이며 패배라는 인생이라는 말이 돼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균이라는 건 절대 평균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무 높다는 거죠.

p114



 좁디좁은 '좋은' 대학의/ 직장의/ 진급의/ 성공의 ... 문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 공부에 공부를 외쳤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전망이 탁 트인 전망에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값비싼 와인 한잔과 함께 짱짱한 음향 시스템을 겸비한 커다란 TV로 영화를 보는...(엇. 내 꿈..) 그런 삶? 이런 삶이 '평범'하다고는 할 수가 없는 상위 몇 %의 삶일 것이다. 이러한 삶을 '평범'의 테두리 안에 넣고는 값비싼 평범을 이루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해 놨을 것이다.


 룰없는 무제한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는 소수의 승리자를 낳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이러한 게임의 가장 공평하고 공정하며 강력한 공부라는 성공으로 가는 철옹성. 오로지 이 철옹성을 함락시켜야만 했는 공부라는 괴물에게 점차 사람들 묻는다. 이 철옹성을 돌아가거나 피해가면 되는 것 아니야고. 꼭, 이 뒤에만 성공이 있느냐고, 꼭 성공을 이뤄야되는 거냐고 말이다.



 공부가 문제가 되니까 노동을 시키면서도 노동이 아니라 '그게 곧 공부다'라는 식으로 손쉽게 착취할 수 있는 거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나를 환경에 맞추는 방법.

2. 환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

이 두 방법이 적절하게 조화게 되어야 올바른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 경쟁의 폐해는 모두가 잘 알고 있으나 견고한 시스템 아래에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슬로건은 어느새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이기주의적(Not 개인주의) 세대를 길러냈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타인은 기꺼이 밟혀도 되는 존재이며, 남을 돕는 이는 이상한 사람/ 사회부적응자, 극도의 효율 중시는 어느새 하위 계층은 돌보지 않는 제도를 속속들이 만들어 냈고, 불의를 보면 돕는 것이 아닌 피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소개될 정도가 되었다. (요즘 추세를 보면 특정 사건을 말리거나 도우려고 하다가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우정, 사랑 등과 같은 인간 관계는 이해 타산이 맞지 않으면 성립 조차 되지 않는 단어로 전락해버렸고, 자신의 발견에서 타인의 발견으로 이뤄지는 사회성은 결여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 졌다.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인생이 공부를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게 만드는 현실은 획일적인 성공 가도의 길만을 강요해왔고, 그 길은 아랍의 석유 부자가 아닌 이상은 승리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매해 가늠할 수 없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사교육비 추세를 보아 하면, 우리는 아직도 공부 신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다양성을 인정해라.",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으면 70억의 개성이 존재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보이지 않는 공부 성공 신화의 막차를 타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공정하자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다양성을 죽이고 획일성만 키우며 오히려 특정한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유리해지는 불공적인 역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p85

 


 이러한 신화를 빨리 벗어나서  앞에 언급한 '공부와는 별개로 성공한 예외'가 많아져야 한다는 내용에 공감한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는 그저 돈만 많으면/ 권력을 쥐고 있으면 성공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각자가 정한 성공이라는 틀을 새롭게 만들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각자의 성공을 기꺼이 축하해 줄 수 있는 분위기도 덤으로 가질 수 있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이 공부를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전 세대가 맛보았던 공부 판타지는 시효가 다되었음을 말이다. 물론 아직도 '공부'가 어느정도는 먹히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공부를 통해 꿈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그 공부가 실패한다면 인생은 그냥 끝인 것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공부 중독>은 기존의 '공부'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를 조정해서 내 삶을 보호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돼요. 구조가 쉽게 안 바뀔 것 같으니까요. (중략) 라이프 스타일을 조정하죠. 자신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자원에 맞는 형태로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요. 혼자 산다 던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한다든가, 섹스파트너만 둔다던가, 아이를 낳지 않다든가, 공동 가족을 만든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p129

 우리는 성장이 멈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살아가야 한다. 이 시대는 이전 세대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이며 매순간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살아갈 능력이 있는지 평가한다. 그래서 누구도 어떤 방향이 옳다고 쉽사리 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니 내가 바라는 것은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먹고 살수는 있게, '다음'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성적표가 자신의 성취에 의해 매겨지는 게 아니라 애가 대학 갈 때, 취업할 때, 결혼할 때, 이렇게 세번, 자신의 인생 성적표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에서 내가 뭘 얻었고, 내가 뭘 재미있게 생각했고, 내가 그 동안 살면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갔고, 어디에 취직했고,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집안과 결혼해서 어느 동네게 살고 있는가를 가지고 자기 인생의 성적표를 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인거죠.

p144



<책 속의 책>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 - 가이 윈치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 엄기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