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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평점 :
[카뮈로부터 온 편지]
[번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6. 4. 2 ~ 2016. 4. 5 완독]
[인터파크신간리뷰단 활동]
"번역가는 잘 모르겠는데요 …… 그게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같은 책인데?"
p13
원래 영어식/ 일본식 어투로 번역이 되어있는 책에 대해서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보는 책 종류 중 다수를 차지하는 소설을 보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활자를 입체영상으로 바꿔주는 기능이 활발(ON)하게 진행이 되기 때문에 번역 어투나 뉘앙스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번역에 대해 관심을 가게한 엄청난 번역서가 존재했으니... 왕X의 게임이거나, X좌의 게임이라든가, 왕좌의 XX따위가 그것이다.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로 엄청난 명성을 얻게된 그 원작을 읽어보고자 도서관으로 달려갔지만 (영어 실력의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원서를 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원서를 구했지만 프롤로그 읽다가 고이 책장에 모셔뒀다.)
언어라는 것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해도 그 뉘앙스를 따라 잡기는 힘들다고요.
p50
그래서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번역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는데 좋은 시발점이 된 책이라고 본다. 솔직히 '장편소설'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책이라고 하지만 소설로 취급하기에는 몇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번째는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대한 오역 지적과 새로운 번역이 주를 이루고 있어, 번역 부분만 들어낸다면 단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이다.
둘째는 책을 계속 읽어 나가면 소설 <이방인>과 번역가 김수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보다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라 완독을 하고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 "우리가 읽었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마켓팅아닌 마켓팅을 한 실제 <이방인>(#링크)이 존재함을 손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세계문학전집으로 유명한 지갑도둑 민음사에서 출판된 <이방인>. 그리고 번역자가 '김화영'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캐치프라이즈는 이미 수십권의 번역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켓팅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에 대놓고 '세계문학전집의 이방인'을 까내려간 새움 출판사의 도발(?)이 있었기에 여러 논란이 있었음도 알 수 있었다. (#링크 : 이방인 - 번역논쟁) (#링크 :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번역가 이정서의 블로그 : 연재글이 모두 지워져 있다.) (#링크 : 논란에 대한 새움출판사의 입장)
오. 엄청난 키보드 배틀이 오갔나 보다. (꿀잼인데...)
번역이라...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한 권의 책은 이미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던 독자를 만나 다양하게 재해석되기 때문에, 번역가의 손을 한번 걸친 책은 날것(?) 그대로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번역가가 느낀 느낌이 번역서에 투영되기 때문에 '번역도 창작이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생각한다.(이럴때는 언어 실력이 좀 더 좋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소설은 사물에 대한 표현 하나로도 읽는 맛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p65
30여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카뮈 <이방인>에 대한 끊임없는 재번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또 그에 대한 새로운 번역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고도 있었지만, 제가 살펴본 사로는 그 번역서들 역시 선생님의 번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중략)
p125
이건 단지 문장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 인물의 캐릭터를 완전히 다르게 번역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p137
번역은 학문이 아닐 것입니다. 선학의 학문적 업적과 권위가 문학 작품의 번역까지 독점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p248
이러한 몇몇 이유로 '장편 소설'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에 대해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려 공식적인 입장을 공고히하는 담화문(談話文)이라 생각된다. 번역에 대한 번역가 이정서의 생각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으니 자신의 의견과 비교해 생각하면 재미있다.
나는 일단 번역이라는 자체가 일(Work)이기 때문에 번역을 맡은 사람이 알아서 어련히 잘했겠지... 라는 믿음아닌 믿음이 있어서 별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 다만 책의 말미에 몇장씩 추가되어 있는 역자의 말은 대부분 읽지 않는다. 3자의 입장에서 번역을 마친 후에 자신이 책을 통해서 어떠한 느낌을 받았다라는 보는 자체가 내가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책을 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타인의 생각을 엿보고자 역자의 말을 보아 내가 놓친 다른 측면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뭐 심기를 거스르는 왕좌의 게임 같은 번역만 아니면 번역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번역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한다. (뭔 개소리냐고?)(아차.. 적다보니 라노벨은 번역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변할 수도 있네...)
예를 하나 들자면 전공 서적. 심화 과정으로 나아가는 전공 서적을 직접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꼭 이런 방법을 권하는? 교수가 있다.), 훌륭한 번역서로 배우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빙글빙글 돈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에서 시작된 번역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이방인의 번역 논쟁 등... 흥미롭게 봤다.
+ 이 리뷰는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