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블랙아웃]


[현실적인 대재앙이 닥쳐 온다면?]


[2016. 3. 20 ~ 2016. 3. 23 완독]


[인터파크신간리뷰단 활동]





 블랙 아웃이 뉴스에서나 듣던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나 천재 지변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처하게 될 재앙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p53

 전령망 통제 시스템 운영은 대부분 컴퓨터가 담당한다. 컴퓨터는 1000분의 1초 간격으로 전류 흐름을 자동으로 조정하고, 오퍼레이터들은 자동 조정에 실패할 경우 최후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다.

 p12 


 개인적으로 500장이 넘어가는 어마 무시한 책이라는 점은 둘째치고 소설을 전개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좋았다. 아마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기욤 뮈소의 책을 즐겨 읽었던 사람이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아니면 말고) 이들의 소설이 취하는 방식은 여러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진행이 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구조라고 생각이 된다. 작은 내(개천)가 모이고 모여 굵은 강이 되고 그 강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바다가 되는 그러한 맥락의 구조. 언급한 이름 이외에도 많은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구조이자 내가 좋아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누군가 전력망에 침투하고 조작해 전력망을 마비시킬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디서든 그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다는 뜻 아닌가요?"

p93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전산 오류로 인해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도 암흑에 휩쌓인다. 현대 사회에서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이슈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전력망이 복구가 되면 신랄하게 비판을 해야 지라며 "곧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 아웃>으로 명명된 전력 문제는 며칠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삼일... 오일... 10일... 계속되는 전력난으로 문명은 큰 위기를 맞이한다.


 전력팀, IT 기술자(라고 쓰고 해커라 읽는다.), 기자, 여행자, 정부 등 모두가 세계적인 정전 사태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시적인 마비일까 전략적인 테러일까? 과연 블랙 아웃은 해결될 것인가? <블랙 아웃> 속으로 빠져보자.




 "재앙은 다른 통속적인 영화와의 정반대로 지금까지 폭동이나 약탈이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어요.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돕고 평온을 지키려고 노력하지요."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죠."

p173

 '세계가 새로운 테러의 위험이 놓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 <블랙 아웃>의 주요 골자이다. 흔해빠진 핵 전쟁, 제3세계의 폭발 테러, 하이재킹(항공기 납치), 주요 인사의 암살 등과 같은 소재가 아니라 블랙아웃(국립국어원은 '대정전'으로 쓰기를 권장했으나 사장됨)(#링크)이라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산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둘째로 하고, 방망이를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블랙 아웃 이후의 사태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내가 책을 읽을 때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머릿속으로 거대한 투명 공간을 세워놓고 (양쪽에 황금 기둥을 세우고 반투명막으로 둘러싸인 3D 무대) 거기에 책에서 등장한 활자와 영화/ TV/ 만화 등에서 얻은 자료를 적절하게 섞어 (상호보완적) 내용을 굴리고는(?) 하는데, 이것을 할 여지를 만들어 주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아주 세세하게 작가의 세상을 쌓아 올린다.



 우리는 TV,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항상 곁에 있는 세상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p154

"촛불을 켜!"


"초가 없어요"

p181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창문을 꼭 닫고 있으라고 하는데요"

p196


 몇몇의 핵심 등장인물이 진행하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하지만 실제로 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일의 묘사는 진짜 장인이었다. 대목장의 젖소들의 젖을 짜주지 못해 젖소가 죽어감 / 수억 마리의 병아리, 닭의 폐사 / 대규모 하우스의 조명시설 다운으로 인한 피해 / 온라인 쇼핑몰의 이용 불가 / 주유소의 기름 주유 불가 /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 까지는 '그런가' 했다.


하지만 사건 초기, 전산 마비로 인해 은행 업무가 마비되자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로 모였던 사람들에게 받은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자 오직 현금만 받는다는 설정에서 나를 강타하는 세세함에 놀라웠다.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의 소비 습관으로 결제를 하지 못하자 몰려간 은행, 이어지는 은행의 현금 인출 제한이라는 대응. (오~)


 사건의 중반과 후반으로 넘어가며 혼란/ 약탈의 행위가 나오는 시점에서 등장하는 병원에서의 충격적인 글은 잊을 수가 없다. 환자가 넘치는 병원에서 의약품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생명 유지 장치 같은 장비가 사용되는 중환자는 속절없이 고통을 받기 마련이다.


 다른 병원으로 이동을 하는 도중에 죽을 정도의 심각한 환자들을 고통해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킬 환자를 분류하고 시행하는 의료진의 모습은 (사안이 사안인지라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음.) 비장하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려 쌓아올려 이룩한 의사라는 직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반복해서 그려진다. 그래서 소설 <블랙 아웃>의 묘사가 방망이를 깎는 노인 수준이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덤으로 원자력 발전소 냉각 시스템 중단으로 인한 폭발... 후들후들..) 묘사에 대한 얘기는 끝!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p393

​ "(만자노) 당신은 항상 마지막 만날 때보다 더 나아 보인 적이 한번도 없네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p433


 블랙 아웃을 일으킨 범인을 찾기 위한 등장인물 중에서 해커 만자노와 기자 섀넌의 캐미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 생활 반경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할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점도 그렇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사건을 파헤치고 휩쓸리는 만자노와 열혈 기자 섀넌이라 그들이 등장할 때면 즐거웠다. 물론 교통사고와 함께 총까지 맞은 만자노 본인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소위 테러범의 등장이 최소화하는 점도 흥미롭다. 책 속 세상 밖에서 주인공 일행과 범인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며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200장이 넘는 시점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지하 사령부'라는 단락은 정보의 차단이 책의 재미를 증가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끝날 때까지 꽁꽁 숨겨두다니.. 부들부들..)


 뭐~ 딥 다크 이야기는 아니기에 결국에 테러범은 잡히고 주인공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 여정이 재미있었다고 평하고 싶다. 얼마나 작가를 <블랙 아웃>에 갈아(?) 넣었는지 차츰 무너져가는 사회 모습과 거기에 동승해 무법천지로 변하는 문명인이라는 우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했던 책. 


 항상 생각을 했지만 기술이 인간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 모든 일에 완벽을 요하는 컴퓨터가 단 하나의 오류로 인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을 때, 오랜 시간을 걸쳐 쌓아올린 인류의 문명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드러내준 책이었다. (알파고의한 번의 패배가 시사하는 점이기도 하죠) 재밌었다. 500여 장에 도전해볼 용자가 되어 보시길.


 아! 솔직히 작가가 후기에 서술한 '사랑이 떠났을 때에야 사랑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고 후회로 땅을 치게 될 인간들을 위한 사랑이야기'라고 했는데 "나는 못 느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나에게도 살짝 왜 그랬는지 귀뜸해 주시길...



 IT 시스템이 문제였습니다. 하필이면 에너지 생산과 배분에 관련된 전체 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현재의 전력망 시스템은 몇 년에 걸쳐 해체되어 스마트 그리드로 전면 개편될 예정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스마트 그리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p209

 그녀가 듣고자 하는 새로운 소식, 그녀가 직접 몸으로 겪고 싶은 새로운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지는 것. 그 외에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p350

애송이들 몇명이 이제껏 우리가 쌓아온 문명에 가장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거나, 아니면 이 세계를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위태로운 분쟁 상태로 몰아갔다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p437 





<사용하지 않은 책 속 한마디>


 패스워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찾는 것은 인터넷의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이 세상에 못 알아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p50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는 여자를 언제부터 믿고 살았나요?"

 "난생 처음보는 것을 운전하게 된 이후로!" p391 




+ 이 리뷰는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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