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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 우리가 알고 싶었던 또 다른 눈의 세계
이은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아르고스에서 빅브라더까지]
[2016. 3. 5 ~ 2016. 3. 11 완독]
[한겨례출판 출판사 서평단 활동]
'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p5
눈(雪)이야기가 아닌 눈(目)이야기 였다는 것은 책을 받아 본 후에 알았다는 사실.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위키백과에 올라있을 정도로 과학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놓아 대중적인 인기와 개인의 학술적 위상(?)까지 드높인 대단한 인물임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링크) 그런데 내 검색 실력으로는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을 수 없는데 없어진 건가? 댓글이나 쪽지로 좌표 좀 쏴주시길...
하리하라? "하레 크리슈나, 하레 크리슈나, 하레 라마, 하레 라마." (크리슈나를 찬양합니다. 크리슈나를 찬양합니다. 라마신이여. 라마신이여)라는 말을 알고 있는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비쉬누와 시바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라니.. 아니면 다른 뜻이라도 있는 것일까? 재미있는 필명이다.
우리는 평소에 본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p23
선천적/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라면 당연하게 아침에 눈을 뜨고 아침을 시작하며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행동의 기본 바탕이 되는 본다라는 단어. 삶에서 따로 떼어서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너무 익숙해 그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나 작가는 본다라는 단어를 깊게 파고 든다.
과학 서적이라는 딱딱한 타이틀로 인해 곧바로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릴지는 몰라도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는 좋은 책이다. 그저 눈의 해부학적 요소인 홍채, 망막, 초점, 상이라는 교과서적인 설명에서 벗어나 (있기는 있다) 최초로 눈을 가지게 된 삼엽충에서 신화 속 눈괴물 아르고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소설 <1984>의 빅브라더에 이르기까지 눈에 관련된 모든 덕질을 통해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원작은 모두 읽었으나 영화는...)
찰나의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제 기능을 해야만 형성되는 정교하고 까다로운 감각이 바로 시각인 것이다.
p28
가볍게 흘러가면서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눈에 대한 편견이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동물의 눈이 사람처럼 머리 앞쪽에 붙어 있지 않고 양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사물을 넓게 보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은 비효율적으로 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얼굴 전면에 가깝게 존재하는 덕에 시야는 좁아지지만 두눈의 시야가 상당 부분 겹치면서 원근감과 입체감의 판별에 있어 눈이 따로 떨어져 있는 동물보다 유리하다는 말씀! (p40)
사람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본다.
또한 과학 기술을 발달로 아직은 상용화 단계에 있지 않지만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보조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것이다. (그게 눈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오랜 기간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기술의 도움으로 갑자기 시력이 회복되었을 때 평소대로 생활을 하기가 힘든 것을 알 수 있다. 왜냐!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 얻은 정보를 뇌가 처리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감각으로 정보를 얻으니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이 처리하는 기관인 뇌와 함께 성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 인체의 신비여..)
그저 푸딩같이 말랑말랑 하기만 할 것 같았던 눈이, 동그랑땡처럼 동그랗기만 할줄 알았던 눈이, 사람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망막의 두께(위쪽에 두꺼울 수도 아랫쪽에 두꺼울 수도 있다! 오! 볼록하게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기해라..) , 홍체의 색깔 등이 다르다는 것 또한 신기하고 흥미롭다.
마음의 창이라는 눈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지 않겠는가?
+ 이 리뷰는 <한겨례출판> 출판사 서평단 (yes24 리뷰어)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덧. 몸상태 90%까지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