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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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


[사랑의 현주소에 관하여]


[2015. 12. 4 완독]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네이버 국어사전>

 지난 십년 혹은 이십년 동안 문학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책은 홍수처럼 출간되지만 정신은 정지 상태입니다. 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위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경탄할 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 냅니다.


'에로스'라는 단어를 보고 빌렸다는 것은 안비밀.

 사랑. 이성을 마비시키며.. 아니 이성을 뛰어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강렬함을 지니고 있는 단어.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발달이 되는 시기이며, 소위 '사랑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문구에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을 의미할까?

앞에서 언급한 '남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랑. 즉, 이성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어떠한 인간 관계든 '귀중하게 여긴다'라는 의미는 넓게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행동'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에,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몇가지 의미를 살펴봤으니 '지금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자.

열정이 가득했던 십대와 이십대를 지나, 사회의 한 주축으로 활약을 하고 있는 삼심대 이상의 어른에게 묻는다. '진정한 사랑(True Love)'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런 헤아림없이 서로 관계를 맺어왔던 유년 시절의 '친구'와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계를 (군대를 포함한) 대학 시절까지 넓게 보는 편이다.) 각자의 이익이 상호적으로 작용을 하는 사회에서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쁘게도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범위를 30대 이상으로 잡은 이유는 '결혼'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있는 연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10대나 20대에도 결혼을 할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10대는 일반적이지 않고, 20대는 결혼을 '일찍한다'라고 사려되기 때문.)



 거리의 파괴는 타자를 가까이 가져오기는 커녕 오히려 타자의 실종으로 귀결된다.

p43


 이는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며, 특히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최소한) 일부라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더우기 '결혼'이라는 단어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적 관점과 끊임없는 성정이 멈추고 전세계적인 위기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라는 단어는 만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판타지가 되어가고 있다.


 열심히 일한 돈으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미래를 계획하는 '길'에서 벗어나, '본인의 안락함'과 '스스로의 만족에 충실함'이라는 문구가 속속들이 등장함으로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로 대표되는 사랑의 최소조건은 이미 바뀌었다고 봐야겠다.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사랑에 대한 전통적인 문구가 표현하는 '나와 타인에 대한 가능성이 끝없이 열려있는 세계'는 구시대적 발상이 된지 오래이고, 만연한 성과주의에 밀려 타인은 물론 자아까지 위협받고 있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를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모든 종교는 죄(채무)와 죄사함(채무면제)의 매커니즘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죄(채무)를 만들기만 할 뿐이다. (덧, 대한민국에서 '한번의 실패' 이후는 잘 없음을 알것이다.)

p32 

 모든 삶의 영역이 긍정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랑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잇는 소비의 공식에 따라 길들여진다. 모든 부정성, 모든 부정의 감각은 회피한다.

p51


 결혼정보회사가 하는 것처럼 '사랑'도 재단되어지고 측정되어지며 등급별로 나뉘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남는 것은 포.르.노(차단어 방지)의 그것과 같은 충동적인 사랑만이 남아있지 않을까. '열심히 살자', '긍정적이자'라는 단어만 외치고 '부정'을 표현하는 그 어떠한 단어도 언급되어서는 안되는 세상은 실패를 통한 배움보다는 실패를 회피하는 법을 권유하고 있다. (실패 후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도 한 이유이다.)


 '나'라는 단어조차 잃어버리라고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가슴 깊숙히 숨겨두고 어른의 가면을 쓴다. 진정한 사랑도 서로의 가면을 보여줄 뿐, 가면 속의 나는 보여주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 없어진 사회, '나'라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 사유(思惟)를 할 수 없는 사회(=생각이 멈춘 사회), 우리의 '에로스'(뭐 사랑도 의미하고 자아라는 개념도 있다. 어쩌면 두가지 모두를 얘기하고 싶을지도..)는 종말로 걸어가고 있다.



 사유속에 들어있는 어떤 내적 현존, 사유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하나의 생동하는 범주, 초월적인 경험이다.

p97


 

<쓰지 않은 책 속 한마디>


타자는 오직 할 수 있음 없음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섹시함은 중심되어야 하는 자본이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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