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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
존 던 지음, 황미영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
[이 책을 읽고 당신의 생각을 얘기해주세요]
[2015. 9. 9 ~ 2015. 9. 17 완독]
[레디셋고 서평단 활동]
-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귀족제나 군주제 또는 독재체제에 대응하는 뜻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리스어(語)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demo(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이 합친 것으로서 ‘국민의 지배’를 의미한다.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는 여러 갈래로 해석되어 왔다.
초기 그리스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의 다수결원칙 아래 정치적 결정에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형태를 의미하였다. 이 제도를 ‘직접민주주의’라 한다. 한편, 국민 개개인이 직접 정치결정과정에 참여하지는 않고 다만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을 통하여 정치결정 권한을 대리하게 하는 방식도 있다. 이것을 ‘대의(代議)민주주의’라 한다. 또 정부의 형태가 민주주의든 아니든 간에 사회적 ·경제적 평등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민주주의도 있다. 불평등한 개인의 소유재산을 평등하게 조정한다는 것으로서 ‘사회적 민주주의’ 또는 ‘경제적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의 해석에는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은 대략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민은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을 통하여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적어도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치강령과 후보들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모든 구성원의 민권(民權)을 보장하여야 하는데, 이 민권에는 출판 ·결사 ·언론의 자유가 포함되며 적법절차 없이 국민을 체포 ·구금할 수 없다. 넷째, 정부의 시책은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는 효율적인 지도력과 책임 있는 비판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의 관리들은 계속적으로 의회와 언론에서 반대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은 독립된 사법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여섯째, 정권교체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 검색창에 몇 자를 적어보는 것만으로 나오는 민주주의의 정의를 찾을 수가 있지만, 사전에서 나열한 정의대로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단 한개의 국가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었나? 개인적으로는 콕 찝어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가 두리뭉실하기만 한데 이를 잡아주고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민주주의가 곧 좋은 정부를 뜻하지는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뽑을 사람이 없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한다.' 등등. 결론은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우리 나라를, 아니 '나'를 이롭게 해줄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투표를 하라고 임시 공휴일까지 지정해놓은 취지를 무색하게 투표를 회피하거나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 근현대를 약간이나마 공부한 사람이라면 70년이 된 국가에서 '정상적인 선거'를 행사한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지는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나라 안에서 수많은 피와 땀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나 찍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라는 발언을 쉽사리 하지 못할 것이다. 왜 '투표'에 대한 얘기를 꺼냈냐 하면 민주주의라는 사상의 근본이 되는 필수 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양식이자 제도적 형태의 집합인 민주주의는 권력을 통해 힘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집단의 분별있는 행동에 대한 각별히 유용한 지침으로 자리 잡는 데에는 크게 실패했다.
민주주의라는 효율적이고 좋은 틀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정치'나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떠나 각 국가에 일반적인 사상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아...국익 말고..) ... 됐고! (돌려말하기 어렵네!)
각자의 이익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좌파가 좌로 가고 우파가 우로가니 중앙으로 갈려면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비정상적인 틀과 비효율적인 나라를 바꾸기 위해 노력은 하지 못해도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지라는 말이다. 그 기본이 투표고!
우리는 '어느정도' 행운아 이다.
- 우리는 생활의 기본 토대이자 무대가 되는 경제 제도를 근거로 자신을 행운아라 여기게 되었다.
-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결정하는 정치제도와 그 정치제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상당한 수준의 안전을 근거로, 그 정치 제도가 본질적으로 정의롭고 적절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행운아라 여긴다.
- '경제 제도 + 정치제도'의 결합으로 나온 '사회 관계'가 편안하고 우호적이며 서로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행운아라 여긴다.
계속 반복되는 말이지만 수천년을 통해 변화해온 가장 우수한 사회적 사상인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라는 행운을 거머쥐고 있는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만 더 깊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우리 스스로에 대한 통치권을 남에게 '어느정도' 넘기는 자발적인 복종을 한다. 복종할 기회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복종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에 이론상 동등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민주주의가 가진 가장 최대의 장점이 아닌가? (내용 1부 인용) 물론 과도한 권위를 보유하면서 정치적, 도덕적 목표를 왜곡하는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성향을 어느 나라나 손쉽게 찾아 볼 수가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권리와 의무'는 특정인이 가져야 하는 소양인가? 아니다. 권리와 의무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할 목표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 미안. 그냥 강조하는 겁니다! 나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복종을 받아들이는 이유? 처음부터 끝까지 타당한 이유들로 구성되었다고 여겨지는 관행의 틀 안에서 복종을 받아들일 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이외에도 경외감, 습관적인 복종이 뒤를 따르고 있다. (1부) 우리가 학생 때 배웠던대로 엄청난 인구의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모우기는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에 (가능해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나'와 가장 비슷한 사상의 '대리인'을 내세워서 그 대리인을 통해 '나의 이익'을 실현하나, 역시 뽑아놓으면 '내가 누군지 알아?'를 내뱉는 엄청난 마인드의 대리인이 흔하게 탄생하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는 밖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나 안으로는 아직도 군주제나 귀족 정치에서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뱅글뱅글 돌지만 말이다. (더 뒤로 가야하나?)
민주주의가 인간의 정치 경험이 이루어낸 세계적 역사 속에서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명성을 획득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각 국가는 저마다 쌓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읕 민주주의라도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경험'이라는 측면만을 얘기하기에는 조금 추상적이고 여러 복합적인 인과 관계도 고려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소위 망한 정치, 비도덕적인 정치가 '개인 영달'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손쉽게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은 훌륭하고 현명한 만큼이나 비도덕적이고 명청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민주주의는 아주 많은 이들이 동일시 하는 지평이 되고, 직접적인 적수들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비난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민주주의 = 자국 정부의 형태'로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정치 언어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위력있는 유일한 용어라는 의미에서 보면 인구의 가차업슨 증가로 인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력을 갖게 된 정치 용어가 정치적 지지나 규범적 열망의 대상이 아닌 사고의 도구로서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국가의 방향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상에도 완전히 다른 틀과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위계보다는 평등을 말하는 민주주의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 당기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을 동일선에 놓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고 '딱히' 해결할 방법도 없어 보인다. (무려 작가가 말한다)
어떤 형태의 평등을 위협 혹은 약속한다고 이야기 되는가?
어떤 형태의 경제 구조가 민주주의와 공존이 가능한가 혹은 불가능 한가?
정치가 가시적인 성과만을 보는 것이 그 나라 구성원의 지성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할 것은 혹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보다 품위 있게 그리고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면서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민주주의라는 매력적인 단어가 지닌 매력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정의와 위력에 대하여 다각도로 집고 넘어갔던 작가는 뜬금없이 자국(미국)이 가진 민주주의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꼈나?) 중국와 인도의 사상적 변화를 보며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가진 위력을 설명하는 듯하더니, 두 나라가 가진 부와 패권이 자국(미국)을 위협하는 최근 세계 정세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수평적, 자기 발견적이고 중국의 민주주의는 위계적, 설교적'이라는 다소 '미국 우월주위'를 내비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자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를 하겠으나 앞서 재차 언급해 온 '각자가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그들의 민주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이라 느껴져 황당하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유토피아인 나라가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어디에도 없지..그건.) 문득, 여행하면서 만났던 미국인 친구가 정치 얘기를 하다가 '미국인이 보는 미국의 문제점'을 역설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어느 곳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내가 책을 보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민주주의라는 틀안에 국가나 개인이 그 틀을 변형시키고 발전시켜 각자가 가진 최대의 효율을 낸다. 하지만 그 '변형'은 올바른 것이 될수 있고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가진 역동성을 인식하고 무질서가 발생했을 때! 즉, 민주주의를 잃어버리고 방향성을 상실했을 때 (상실하고 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 스스로가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야 된다는 것. 반장난삼아 여당은 오른쪽으로 야당은 왼쪽으로 간다고 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우리다.
세계가 내놓라하는 똑똑한 사람들도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책이 서글프기는 하지만 결국은 우리라는 것, 다시 한번 느끼는 책이였다. 당신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내린 결론에 반박을 해도 좋다. 한번쯤 읽었으면 한다. 배부른 돼지도 좋지만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도 필요한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지독하게 재건해야한다.
민주주의라는 결정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그런 방향성을 제공하는 법이 없다. 기껏해야 이미 존재하는 방향성을 파악하고 법으로 규정할 뿐이다.
합리적으로 수령하는 그러한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나 명확한 공동의 이익이 없을 때, 민주적 결정을 통해 얻는 것은 일시적인 혼란이나 기껏해야 요행일 뿐이다.
전적으로 적절한 토대 위에서 비난의 여지가 없는 수단을 통해 수행되는 정부, 국민의 전적인 허가를 받고 국민들이 명시적으로 선택한 정신과 방식 혹은 국민의 환영을 받을 것이 분명한 수단을 통해 수행되는 정라는 의미로 변화한 민주주의라는 단어.
<책 속의 책>
- 민주주의의 성공 : 숀 월렌츠
- 간디 이후의 인도 : 라마 찬드라 구하
+ 이 리뷰는 레디셋고 서평단 활동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읽어야할 책이 좀 줄어드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