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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복종]
[밝은 어둠의 길과 어두운 빛의 길]
[2015. 7. 15 ~ 2015. 7. 16 완독]
[문학동네 서평단 활동]
문학동네 출판사가 TV에서 성행중인 '복면가왕'을 벤치마케팅하여 <복면소설>로 이름을 바꾸고 나를 설레게 했던 이벤트의 '전리품'. "프랑스 55만 9천부, 독일 27만 부, 이탈리아 10만 부 판매!", "유럽을 발칵 뒤집은 논쟁적 작가의 최신작!", "출간과 동시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스트 셀러 1위!"라는 걸출한 수식어를 주고 '소설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맞추라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 밖에 모르는 나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작가의 이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치고, '끊임없이 실현되는 암울한 예언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카산드라>라고 제목을 추측해 보았다.
... 반정도 읽었을까? 신간 도서 목록을 보다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복종>'이라는 문구를 보고, '복면소설인데... 스포일러 당했네...'라는 서글픔이 지구 반대편에서 부터 몰려온다. 그러고 보니 '카산드라'라는 제목도 왠지 "카산드라의 거울"이라는 책에서 베껴서 생각한 느낌이 문득 들어 우울해 진다.
자. 이벤트란 되면 좋은것이고 아니면 땡이지 상심할 필요가 있나. 다양한 독서를 하게 해주는 문학동네 출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나 보내자. 감사합니다. '왜 눈만 내놓았을까?', '두 눈과 눈 사이를 가로지르는 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몇몇 질문을 안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부르카!? 확실하지 않아 검색을 해보았다. 이슬람권에서 히잡과 차도르는 전신을 가리고 얼굴을 내놓는 형태의 여성 의복. 부르카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 (눈 부분도 천으로 덧대어 잘 보이지 않는다). 책의 표지로 사용된 '눈을 드러낸 이슬람 여성 의복'은 "니캅"이라고 하더라. (출처 : 나무위키 검색 "부르카")
보다 오랜전에는 사람들이 가족을 형성했다. 자녀를 출산한 다음에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죽도록 일한 뒤에 그들의 창조주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쉰이나 예순살 무렵, 통증이 찾아든 노쇠한 육체가 든든하고 금욕적이며 친숙한 접촉만을 필요로 할 때 남녀가 살림을 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p134
당신은 모순덩어리 인간이야. p42
이미 '복종'이라는 제목을 머릿속에 넣고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니 '인간의 끝을 보여주는 건가? 힘에 굴복하는 건가? 아니면 유혹?' 여러 단어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가운데, 1인칭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고, 안정적인 관계보다는 몸이 원하는 쾌락을 원할 때만 여자를 찾으며, 솔직하고 쿨하다.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학생을 꼬시기도 하며, 집안에 편하게 앉아 와인을 한잔 할 수 있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교수인 나. TV에서 나오는 선거 얘기는 스포츠 중계를 보듯 넘겨버리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다.
이번 학기가 절대 정상적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죠. p103
굉장한 정신적 진보를 이룩했으나 종교 권력이 인간의 교육권을 강탈한 순간, 더 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무지의 우둔함 속으로 추락했다. p129
어느 날,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정치판'이 뒤집어 진 그날. 학교는 문을 닫는다.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 정권'은 그들의 상식에 따라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모든 것이 변한다. 정략결혼 / 일부다처제가 승인되고, 아이들은 율법을 교육받고 지켜야 하며, 율법을 지키지 않은 모든 이들은 '해고', '퇴직'이라는 명분 아래 '조용하게' 사라진다.
제가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p297
'나'는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자국에서 일어난 데모와 계엄을 TV로 접하나 무슨 상관이랴? 오늘 먹을 수 있는 한잔의 술과 아름다운 여인 한명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음을... 프랑스로 돌아오니 '나'는 충분한 해고 당한 상태이고, 학교에 남은 자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교수뿐이다. '나'는 수도원으로 간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없다. '나'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이슬람에 관한 열가지 질문"은 프랑스 전역에 히트를 치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나'는 개종을 한다.
나의 학문적 삶이 끝났음이 점점 명약관화(明若觀火 :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다) 해졌다. p352
조금은 이런 속으로 몇년 전에 내 아버지가 혜택을 입었듯.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었다. (중략)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p357
내가 죽고 난 뒤, 홍수가 난들 무슨 상관이랴. -루이 15세-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IS = 이슬림' 이라는 편견이 한국에서 강하기 때문에, 책의 전반을 퀘뚫는 '기독교의 사멸'과 '이슬람의 시대'에 대해서 초첨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건 '종교'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나'는 현실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아니 교수라는 직군에 있으니 흔히 알고 있는'지식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나'가 행동하는 모든 행동은 누구나 납득가능할 정도로 '평범'하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중에 '역사의 소용돌이'라고 불릴 정도의 큰 일이 될지라도 '먼 발치에서' 일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간 스페인, 수도원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돌아와 모든 것에 굴복하고 평안해 진다. 이익을 쫓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평생 자신과 함께 해온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을 했으며 마지막에는 '어쩔수 없는' 일인양 스스로에게 마음의 면죄부를 준다.
씁쓸하다. 과연 현실의 '나'는 모든 풍요를 마다하고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유혹을 돌보듯할 수 있을까?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다다랐을 때,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단칼에 자를 수 없다. 역사는 승자의 것. 양육강식. Winner takes All. 등등 이미 스스로에게 '핑계'를 주고 있는 내가 무섭다. 변해갈 내가 무섭다.
제발, 제발. 그런 날이 온다면... 따뜻하고 밝은 어둠의 길에서 벗어나 차갑고 어두운 빛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이슬람에 관한 책 속상식>
'소수의 율법'이란?
정교분리와 이슬람 진영이 서로의 근본적인 원칙을 해치지않는 범위에서 공존하도록 절충한 율법.
'지하드' 란?
이슬람 원리와 이슬람교 전파를 위해 벌이는 투쟁. '폭력적 or 평화적'인 두가지 방법이 있다.
<못다한 책 속 한마디>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평범하고 늙직한 남자한테서 그녀는 처음으로 사랑할만한 무언가를 찾아냈던 것이다. p230
그녀는 봉건 군주와 같은 권력을, 막강한 힘을 지녔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연결된 끈을 서서히 놓쳤고, 그녀는 벤치에서 쪼그라들고 위축된 채 웅크리고 있는 나를 남겨두고서 수세기 전의 시공간 속으로 멀어졌다. 삼십분 남짓 지났을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령이 완전히 사라진, 소멸된 운명의 손상된 몸뚱이만 남은 채로. 나는 슬픔에 잠겨 계단을 다시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p201
나는 실질적인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았으면서, 자리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는 세계의 일원이었다. 물질적 측면에서도 불행할 거리가 없었다. (중략) 그럼에도 나는 자살을 분명히, 가깝게 느꼈다. p245
다시 나의 동족들 틈으로 귀환한 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다. p261
인류 문명사의 최고봉이었던 그 유럽은 불과 몇십년 만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p306
<책 속의 책>
1. <O이야기>
+ 이 리뷰는 문학동네 서평단 활동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