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향기]

 

[당신이 지닌 추억의 향기]

 

[2014. 11. 7 ~ 2014. 11. 8 완독]

 

[샘터 제공 : 물방물 서평단 5기 활동]

 

 

 

 평소에 읽는 스타일대로 머릿속 한켠에 '향기'라는 방을 만들고 눈으로 글자를 살피고 모든 상상력을 그 안에 쏟으려고 몇 장을 넘긴 순간, 나는 책을 덮어 버렸다.

 

 

 

  • 대지의 마지막 한기를 붙잡아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으리라. 안개는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10월에야 돌아올 것이다. p10
  • 입속으로 봄이 한가득 들어온다. p12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 한거지? 가을이 물러가고 겨울이 이렇게 생생하게 대지를 감싸다니. 그리고 겨울이 간 후 봄이 입안으로 들어온다는 세세한 표현이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감성'을 일깨운다. 언덕위로 올라가 마음껏 뛰어 놀다 저 멀리 조그만하게 보이는 집들을 바람과 함께 바라보던 소년. 솜털이 가시지 않은 하얀 얼굴로 맞이한 달콤한 첫키스의 추억. 

 

 

 

  • 놓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내 눈길을 따라 아버지는 점점 젊어 진다. p26
  • 내 웃옷 아래 태양의 조각이 미끄러져 들어온 것만같은 달콤한 열기를 느끼면서 ​... p53
  • 아마도 그곳에서, 오래된 도서관 안에서, 침묵의 심연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얼굴과 곰팡내에 취해 지친 몸들 가운데에서, 나는 한 나라에, 허구와 그 수천 갈래 길의 나라에, 그 이후 한번도 진정으로 떠나본 적 없는 곳에 들어섰다. 나는 책들과 같았다. 나는 책들 속에 있었다. 그곳이 바로 독자로서, 작가로서 내가 사는 곳, 나를 가장 정확히 정의 내리는 곳이다. ​p208

 

 

 수염난 털보 아저씨에서 근사한 미남으로 변신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온몸을 감싸안는 따스한 햇살. 특유의 곰팡내가 나는 책들로 둘러싸여 있는 정겨운 도서관. 작가가 기억하는 색이 손에 잡힐듯한 아름다움과 유년 시절의 때묻지 않는 발랄함이 책을 읽는 독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하고 그윽한 냄새를 풍긴다.

 

 

 

  • 나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없는 새로운 장소, 전적으로 몰개성적인 공간으로서의 호텔방에 들어선다.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여행자, 즉 순전히 이동하는 존재로서의 자질이 강화된다. 우리는 호텔방에서 우리 삶의 은유들을 좀 더 발견해야만 한다. p53
  • 도시의 모습은, 안타까워라, 사람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니... -백조 中 일부- p157
  • 죽음은 정말이지 모든 것을 생각한다. 죽음은 살아 남을 줄 안다. 죽음은 시간과 결혼했고 화장법을 바꾼다. p168
  • 유리 창구 뒤에 갇혀 있는 그녀를 보니 대개의 금붕어에게 예비된 안쓰럽지만 잔인한 운명이 생각났다. p181

 

 

 

아버지를 꽉 끌어 안았다.
여러번 포옹했다. 
아주 나이든 어린 아이를 껴안고 그 향기를
들이 마시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p267

 

  • 여행이랑 길을 잃는 것, 지표 없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앎을 버리는 것 그리고 오감이 땅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새로운 고장의 숨결을 맡는 것이다. p268

 

 추억에 잠겨 즐거웠던 유년 시절을 생각하는 와중에서 문득 문득 생각이 드는 '나이가 들어버린 나의 괴로움'과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쁘지만 슬픈 기억이 현실로 스며든다. 길어도 4~5줄, 대부분은 1~2줄로 문장을 끝내며 '추억'에 대해 끝까지 담담한 말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인생의 에세이'.

 

 

 

  •  글자 하나가 하나의 냄새들, 동사 하나가 하나의 향기를 품고 있다. 단어 하나가 기억 속에 어떤 장소와 그곳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리고 알파벳과 추억이 우연히 결합하에 조금씩 직조되는 텍스트는, 꿈꾸는 삶과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삶으로 우리를 차례로 안내하는 경이로운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수천 갈래로 갈라지며 향기를 뿜으며. p271

 

 혼자만의 추억을 우리에게 떠나보내는 '향기'를 듬뿍 들어마셔 기분이 좋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에 의문을 품지 않는 이가 없듯이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반찬삼아 글을 읽는 독자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부드럽고 달콤한 꿀과 같은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새로운 경험을 찾는 여행을 떠나는 작가와 당신, 나. 향기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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