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김형탁 - 어느 활동가의 삶과 동네 이야기
김형탁 지음, 서미현 엮음 / 레디앙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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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나름 정치인을 인터뷰해 쓴 전기지만 표지에 사람 얼굴이 없어서 좋았다. 나무 한그루 덜렁 그려놓았지만, 그래서인지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사실 사람 얼굴 그려진 책은 좀 부담스럽다. 만일 재미없더라도 미안해서 라면 받침대로도 사용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첫번째 연대기랄까, 연보랄까... 느낌은 누구누구 댁 운동권 아들네미의 비밀스런 삶의 이야기 같았다. 연애를 언제 했는지, 짱돌 컴플렉스가 언제 생겼는지 등등의 간략하면서도 사실적인 글이었지만 서정적 느낌이 풍겼다. 간략하지만 풍성하달까. 개인적으로 술 먹으면서 누군가 이 '그 인간 그랬다는데. ㅋㅋ'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이 책은 운동권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내 짧다면 짧은 일생 동안 정치적 입장을 견지한 적도 없고, 운동권의 삶에 대하여 재미있고 상세하게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선배가 짱돌 던지는 데 보조역할을 한 것이 다라면 다다. 그 때가 대학교 1학년 때던가? 그 당시 뭣 때문에 학교 문 앞에 가 있었는지도 기억 안 난다. 하여간 분명한 것은 그 당시 나는 장마가 그친 후 파릇파릇한 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화창한 초여름 오후의 교정에서 학교 정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문 밖으로 햇빛에 반짝반짝거리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하이바를 쓴 검은색 제복의 전경들이 소복하게 모여 있었다. 마치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의 제국군 같다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쭈 한 150명 정도 되네. 짜식들."

   부대 병력을 가늠하는 능력을 나에게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과 선배였다. 하, 이 선배 언제 내 옆에 나타났지? 이 선배는 자신이 수방사를 나온 것을 늘 자부하고 다녔다. 쪽수를 헤아리는 것도 수방사에서 배운 건가?

   "어케 알아요?"
   "(피식) 군대를 좀 그런 데 갔다왔거든."

   역시. 하지만 나는 방법을 물었으나, 알면 다친다는 식의 대답 때문에 존경의 느낌은 쉽게 사라졌고 입가에 맴도는 웃음을 발견한 나는 '시발'이라고 중얼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선배는 무섭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다.

   "너 짱돌 들고 내 옆에 좀 있어라."
   "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나와 선배는 학교 학생회에서 짱돌을 분배받은 다음, 선봉대라 불리는 붉은 두건 일지매들과 떨어져서 학교 담장 아래로 샤샤샥 붙었다. 나도 뒤질세라 샤샤샥 따라 붙었다. 선배는 독립적 행동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최루탄은 저쪽에서 터지고 우리는 안전했다. 선배는 마치 <히트>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발 킬머처럼 머리를 살짝 올려서 자신의 타겟을 확인하고는 다시 담장 아래로 몸을 숨겼다.

   "돌"
 
   얼른 돌을 챙겨 주었다. 선배는 다시 200원짜리 두더지 잡기 게임기의 두더지 마냥 머리를 쏘옥 내밀고는 돌을 휙 던졌다가 다시 내려왔다.

   "앗, 빗나갔다."
   '!!!'

   이러기를 여러 차례, 공급받았던 돌이 다 떨어졌다.

   "니 돌 좀 구해와라."
   "..."

   나는 화단의 나무 밑 주변의 돌을 찾으러 허리를 굽히고 빌빌 돌아다니면서, 주섬주섬 챙겨서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돌에 문제가 있는지 이렇게 말했다.

   "너무 크다."
   "..."

   이러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선배에게 말했다.

   "저 수업 있는데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선배가 뭐라 했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뒤돌아오는 길에 뒤통수가 조금 따끔거렸던가?

   하여간 이게 내 운동권의 역사다. 그래서 이 책에 있는 삶의 문제와 연계된 고민들과 사실들에 대하여 이해 지수가 높지 않다. 그저 곁에서 지나치면서 스윽 바라보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나타나는 담담한 사실 속에 묻어 나오는 파스텔화의 느낌들은 주인공에게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주었다. 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거기에서 이런 일을 했었구나 하는.

   개인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전기 혹은 행장은 쓰기가 힘들고 쓸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글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정확한 중립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도 힘들거니와 그렇다 한들 사람들의 시각 속에서 편향된 모습으로 굴절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시각은 칭찬도 비판도 없다. 이 사람이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지, 무엇을 생각했는지가 간략하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 초름한 서정적 느낌을 받는다.

   이 글의 주인공은 무모하다면 무모한 인간이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한다고 고집부리고, 게다가 말려도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격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주관을 견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하면 출세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사실을 이 책의 주인공은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자기 기억력이 나쁜가 하고 주인공이 자책하는 말이 서문에 인용돼 있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보통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보면 자신에게 불리하건 억울하건 잘하건 못했건 다 잊어먹는 사람인가... 그래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철학을 주장하는 대신 행동이 앞서는 것 같다. 과거와 미래보다는 현재와 사는 사람인가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에게 떳떳해지자면 집에 미안하다. 자신보다 큰 집단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가족들에 대해서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연명이 공무원 때려치우고 집에 오면서 흥얼거렸던 '귀거래사'는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경제력을 포기한 가장이 부르는 무시무시한 장송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귀거래사는 중국문학의 불세출의 거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상이 사라진 사회에서 한 길을 또박또박 걷고 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적어도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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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 2010-03-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뽕주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 책의 1부 '살아온 이야기'가 조선 시대 선비들의 <행장>과 스타일상 닮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군더더기 없이 한 인물의 언행과 행적을 담담하게 옮겨놓았다는 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