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좀비의 모습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공통적인 사항을 한두가지 발견 할 수 있다. 흉측하게 생긴 외양, 도망치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느린 보행 속도, 공포스러우면서도 얼빠진듯하게 들리는 힘 없는 목소리. 이것이 고전에서 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좀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임은 아무도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좀비도 진화를 겪었으니 필두는 영화 분야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새벽의 저주>는 그들에게 발업을 내려 주었고 <바탈리언>이나 <레지던트 이블>에선 인간보다 더욱 더 치밀한 지능을 보유하고 중화기로 무장한 좀비들이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이 좀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신체적*지성적 우월감은 그들의 진화와 함께 사라졌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이 <셀>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휴대폰을 통해서 퍼지는 전자기파. 첨단문물의 이기에 익숙해져 있던 현대인들의 취약점을 잘 노린 '펄스'라 불리는 이 괴현상은 휴대폰을 사용하는 자들을 미치게 만들어 자살 혹은 살아있는 좀비로 만들어 버리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은 휴대폰의 사용과 관련이 없었던 자들 뿐. <셀>의 발단은 전자기파의 발발로 도시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광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셀> 1권의 내용은 보통 현대식 좀비물에서 봐왔던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타인을 사냥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나 있으며 생존자들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본문 내에서 언급된 것처럼 1권에선 <새벽의 저주>와 유사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새벽의 저주>에서 주인공 일행이 대형 마켓에서 시위를 벌였다면 <셀>에선 호텔과 건물에서 좀비들의 동향을 관찰하고, <새벽의 저주>의 끝 부분에서 CJ의 동귀어진으로 좀비들이 날아간 점은 아카데미에서 프로판 가스를 터트린 것과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1권의 내용은 말했듯이 현대식 좀비물에 충실하다.

하지만 정말 재밌어지는 건 2권부터. <나는 전설이다>에서 좀비들이 야행성이였던 것과는 반대로 <셀>에선 좀비들이 주행성이다. 그리고 잠에 빠지는 밤에는 조용한 클래식이나 팝송을 틀어 놓고 자는 행태까지 벌이는데, 나중에는 주야의 구분마저 모호해지며 좀비들이 꿈을 통해 텔레파시를 보내고 급기야 공중 부양까지 하게 된다. 이쯤되면 <셀>은 보통 좀비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 다른 좀비물들이 감염된 좀비의 퇴치와 주인공들의 도망에서 끝냈다면 <셀>은 그것에 좀 더 살을 붙이고 좀비에게 SF적인 능력까지 제공했다. (좀비들이 드래곤볼의 '셀' 같은 먼치킨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SF와 좀비물의 화려한 조화라고나 해야할까? 냉철히 따져보면 황당무계 하기 그지 없는 이런 설정의 이야기에 밤까지 새워가며 빠져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븐 킹의 화려한 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의 두뇌를 하드디스크와 연관 지은 것에 나는 '과연 스티븐 킹!'이란 생각까지 하며 감명에 젖었다.)

<셀>을 읽는 내내 나는 스티븐 킹의 상상력에 대한 예찬이 마구 샘솟는 것을 거부 할 수가 없었다. 누가 좀비가 초능력을 쓰고 날라 다닐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셀>을 읽지 않았다면 난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에게 신랄한 비판을 펼쳤을 것이다. 시덥잖은 소리 그만 하라고. 그건 이미 뇌리 속에 뿌리 박힌 고정관념이었다. 과거 좀비물 매니아들이 자동차를 따라잡는 속도를 내는 좀비의 모습을 봤을 때도 나와 같은 충격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정관념의 타파, SF적인 좀비의 모습. 이젠 좀비가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지 심히 궁금해지는 바이다. 혹시 <셀>에서의 좀비들은 잠을 자면서 우주 여행의 꿈까지 꾸지나 않았을까?

<셀>에서 이러한 사이버 좀비들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일행의 캐릭터성이었는데, 나는 특히 클레이에 대해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따윈 불사하는 아버지의 모습. '펄스'의 발발 당시에는 혼란과 공포에 맥을 못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에는 좀비들의 무더기에서 아들을 찾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에선 <셀>을 읽기 오래 전에 플레이 했던 게임 <사일런트 힐 1>의 해리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역시도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일런트 힐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인물보다도 클레이에 대한 인상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희생을 마다 않는 부성애父性愛은 언제나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현실 반영적인 면으로 따져보자면, <셀>은 당연히 첨단문물의 이기에 대한 비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첨단문물의 지배는 이미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수년 전 만해도 삐삐를 차고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모습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휴대폰이 없는 것만 못한 멸시와 비꼼을 받을 것이다. 무전기 같던 휴대폰 마저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은 톡 치면 부러질 것처럼 얇디 얇은 휴대폰이 제작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돌아보면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컴퓨터와 휴대폰은 이미 생활의 필수품으로서 없으면 안되는 것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고, 게임 중독이나 문자 중독이란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전자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만약에 그것들이 없어지면 불안하고 초조해져 본래의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지지 않을까. 돈벌레들을 흔히들 '돈의 노예'라고 하듯이 현대인은 '전자기기의 노예'가 되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 후에 어떤 미치광이가 <셀>을 교본으로 삼아 테러를 감행한다면 사회는 <셀>의 내용과 유사한 디스토피아가 되버릴지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인식은 잠시 접어두고, 좀비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셀>. 영화로도 제작된다니 고어&좀비물 매니아로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킹 예찬론자가 점점 되가는것 같지만) 원작이 이렇게 환상적이니 그 영화 역시 멋진 작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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