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나는 전설이다>가 리처드 매드슨의 필력을 처음 접한 작품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사람을 향한 그리움..  단연코 말하건대 그 정도로 인간의 고독을 잘 표현한 작품은 소위 '순문학'이라 불리우는 작품군 중에서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정상이란 개념의 상대성과 인간의 고독이라는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는 철학적 소재를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설정과 적절히 융합시켜 재미와 철학성 모두에서 인정 받았던 <나는 전설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게 맞다면) 국내에 두번째로 소개된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를 읽게 되었을 때 필자는 <나는 전설이다>의 내용과 분위기를 다소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주인공 스콧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안개에 휨싸인 뒤부터 몸이 조금씩 줄어들게 된다. 지하실에 갖힌 채 키가 0이 되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것을 걱정할 정도로 너무나도 작아져 버린 그는 결국 한낮 거미에게조차 잡아 먹힐 위험에 처하지만, 그럼에도 생의 본능을 버리지 못하여 자기 몸집보다 큰 거미와 대항하며 지하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는 것이 <줄어드는 남자>의 간략한 내용이다.

<나는 전설이다>도, <줄어드는 남자>도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고독을 중요한 소재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주인공이 남자인 만큼) 여자에 대한 그리움에 혼란스러울 정도로 성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런 고독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야기의 배경 설정이 다른 만큼 <나는 전설이다>와는 다르게 <줄어드는 남자>에서는 점점 줄어드는 상황, 즉 원래 타인보다 컸기 때문에 내려다 보았던 시선이 키가 줄어들면서 점점 낮아지게 되고 결국 어린 딸마저도 크고 웅장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상황에 처한 스콧의 심리에서 <나는 전설이다> 보다 인상적인 <줄어드는 남자>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마음가짐이 사고를 지배한다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사고는 신체에 비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우주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사람도 사고만으로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있는 법이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과 걸리버의 서로가 서로를 보는 시선처럼 우리가 정상 체구라 생각하는 사람이 소인들에게는 엄청난 거인으로 보이고, 자신들의 체구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소인은 우리의 시선으로는 말그대로 소인으로 보일 밖에 없다. <줄어드는 남자>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점 줄어드는 스콧에게 타인들은 점점 더 거대하고 위압적인 존재가 될 것이며 타인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스콧을 하찮게 여기고 한낮 유희감으로 당연히 여길 것이다. 물론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다니던 직장을 잃고 어린 딸에게는 아버지라는 권위 상실, 학생들에게는 어른이라는 권위를 인정 받지 못해 위협하는 그들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이것이 모두 신체가 줄어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콧이 느끼는 소외감과 무력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했기 때문에 더욱 더 자신의 닮은 꼴을 찾아 헤맸을 것이며 마침내 찾아낸 닮은 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을테다.

과거 <아이가 커졌어요> 같이 신체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사람을 다룬 영화가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든 영화였던 탓에 신체의 크기 변형이 가져오는 괴리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줄어드는 남자>는 그런 류의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 된다. 문두에서 말했듯이 리처드 매드슨은 다양한 SF적 상상력에 지극히 현실적인, 지극히 원초적인 고뇌를 융합시키는데 탁얼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이 문단과 대중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리라. 

사실 필자는 서평을 작성하면서 서평의 제목을 많이 신경 쓰는데, 책을 다 읽고 바로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서 서평의 제목을 자주 결정하곤 한다. 제목이 '리처드 매드슨, 당신이 전설입니다' 인데 말그대로 『줄어드는 남자』를 다 읽고 필자가 느꼈던 감정이 그것이었다. 전설이 될 남자.. <나는 전설이다>에서 네빌이 자신은 전설이라고 외쳤지만 진정한 전설로 남을 사람으로서 리처드 매드슨은 부족함이 없다. 어떠한 소재에서든지 인상적인 작품을 뽑아내고, 자신 나름의 철학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재미를 고려하는 점에서 그는 전설이 될 것이다. 명실상부한 장르문학의 아버지 에드거 엘런 포 역시도 어떠한 소재를 가지고도 일반적인 작품들과는 차별화 되는 자신만의 작품을 써냈지 않은가. 잠시 책을 다시 훑어 보니 책 뒷표지에 실린 스티븐 킹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매드슨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다.' 같은 호러 장르에서 최고로 불리는 스티븐 킹, 그리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의 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리처드 매드슨. 그들은 기본적인 필력을 뒷받침하는 자신만의 스타일, 타인과는 차별화 되는 그 스타일이 있었기에 대중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테다. 그들에게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가 정말로 아깝지 않다. 그들은 전설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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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아줌마 2008-01-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0년대 초반에 주말의 명화? 에 '줄어드는 사나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우연찮게 보았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엄청난 철학적 충격이었습니다. 책도 그렇지만,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군요.....

90godo 2008-01-15 22:31   좋아요 0 | URL
네, 영화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흑백영화로 알고 있는데.. 사람들 평도 괜찮은 듯해서, 한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도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된다네요. 아무튼 <줄어드는 남자> 역시도 <나는 전설이다>처럼 다양하게 영화화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