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작가님의 [동전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들]도 떠올랐습니다.
멀리서 보면 붓으로 채색을 한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면 전체가 전부 촘촘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님처럼 해칭을 하려면...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울 수 없는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선이 잘못 벗어나서 종종 창틀이 없어지거나, 없던 기둥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완성이 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내지 못 해도, 그 건물을 그려본 사람은 단 번에 알아보게 됩니다.
당연히 그림을 그린 작가도 잘 압니다.
제대로 관찰하지 않아 건축물의 세부형태가 머릿 속에 그려있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게 되는 것이죠.
선의 시작과 끝을 계속 확인하고 한 선 한 선을 조심스럽게 이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자만심’이 올라오거나, 긴 시간동안 작업을 하다 ‘인내력’이 바닥을 치면 ‘대충’ 선을 긋다가 실수하게 됩니다.
또, 펜이 종이 위에서 머물러 멈칫하는 순간 금새 잉크가 번지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는 실수가 없어야 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 먼저 습작을 그립니다.
평소에는 바로 펜으로 스케치를 하지만, 이 때는 습작을 그릴 때도 연필로 선을 먼저 그립니다.
연필 선 위에 펜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다시 지우개로 지우고 채색합니다.
그리면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따로 적을 때도 있습니다만, 그럴 정도로 고난이도의 작업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준비과정이 끝나면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디자이너분들은 이 준비과정 이전에 클라이언트와 작업의 방향에 대한 사전협의를 하고, 거기에 작가분들은 클라이언트에게 1차 결과물을 보여주고 확인 받은 후 본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혹여 클라이언트가 최초 협의한 방향을 뒤집고 ‘이 그림은 이 쪽 방향에서 그려주세요’라는 식으로 요청한다면, 그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그리기 이전에 진행했던 현장답사를 다시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자 하는 방향, 태양의 그림자는 작가가 직접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겨야 그리는 것이 수월해지니까요.
몇 번의 작업 의뢰를 받아보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직 나는 ‘작품’을 그리는 데 집중해야지, ‘작업’을 할 깜냥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또는, 루시드로잉 작가님처럼 클라이언트의 ‘작업’수정 요청에 거절할 수 있는 수준의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