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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마인 ㅣ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구인 ’데이비지‘와 드랙 종족 ’제리바 쉬간‘은 파이린 4호 행성에 불시착했다. 우주에서 영역 전쟁을 벌이던 도중에 말이다. 그들은 평생 서로를 증오하라고 배웠다. 서로의 언어, 문화, 역사와 신화를 이해할 방법을 몰랐다. 지구인과 드랙 종족 사이에서 좁혀지지 않는 어둠이 있었고, 식민지 행성을 갖기 위한 욕심은 긴 전쟁을 불러온다. 둘은 각각 개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본인 행성의 절대적 우위성을 주장하며 맹목적으로 분리된 이분법적 집단으로서만 존재한다. 그 안에서 집단에게 상처입거나 항의하는 개체들은 내쫓기고 갇힌다. 고독의 감옥 속에서 혼자만의 우주를 펼치며 자기 존재를 잊게 된다. <에너미 마인> 속 두 종족의 우주 전쟁은 현실 속 지구 안에서도 현재진행중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혐오와 차별과 전쟁,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을 이해하고 알아가고 화합하면서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 또한 인류의 역사다.
<에너미 마인>의 데이비지와 쉬간은 친구가 되어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그들은 서로의 종교와 신화를 이해하고, 계보를 따라 내려온 지혜를 암송하며 서로를 죽지 않게끔 지탱한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면서 맺은 내밀한 관계가 여러 종류의 두려움을 떨치게 하고, 생의 희망을 북돋아준다. 쉬간이 아기를 낳다가 죽은 뒤네 데이비지는 다시 외로움에 휩싸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어찌할 수 없는 깊은 고독과 슬픔은 죽음의 유혹앞에 놓이기 쉽다. 그러나 성별, 인종, 종족을 넘어선 화합의 대화와 추억의 노래를 기억한다면, 각 존재들은 삶을 새롭게 탐색하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설 수 있다.
데이비지는 태어난 아기와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커다란 우주 속에서 우리가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데이비지는 살아있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기억한다. 사랑과 추억을 동력으로 한 생명력은 자신의 길을 탐색하는 방랑자에게 어디로 가면 좋을지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다른 존재와 연대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열린 가능성 위에서 살기를 선택한 데이비지는 결국 새로운 계보를 키워나간다. 그 길 위에서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깨닫는다.
SF 중편소설 <애너미 마인>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