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 안드레아 피를로 자서전
안드레아 피를로.알레산드로 알치아토 지음, 이성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당연히 그건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못한 싸움이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괴롭히다니. 내가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뿐이엇다. 그들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한 바로 그것을.

- 2. 독백


나는 볼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프랑스인일 리는 절대로 없을 테니까. 나는 길고 강렬한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그 숨은 나의 것일 수도, 한 달을 버텨내기가 어려운 육체노동자의 것일 수도. 고약한 부자 사업가의 것일 수도, 교사나 학생, 월드컵 기간 내내 우리를 떠나지 않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것일 수도, 밀라노의 잘사는 귀부인의 것일 수도,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의 것일 수도 잇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 모두였다.

- 5. 이탈리아

 

 

2006년 월드컵 우승, 유로 2012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세리에A 6회 우승.

명문 이탈리아가 이뤄낸 기적 같은 성공의 중심에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있었다. 2006년에는 강호 브라질, 개최국 독일에 주목했고, 2012년에는 압도적인 상승세의 스페인이 우승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카데나치오를 중심으로 피를로가 중원에서 번뜩이는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티키타카를 기반으로 엄청난 점유율을 가져간 스페인을 상대로 펼친 1대1 무승부는 피를로의 진가가 드러난 경기였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실바 등 스트라이커 없이도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이탈리아의 끈끈한 수비에 맥을 못췄다. (비록 다시 만난 결승전에선 마음껏 4골을 퍼부었지만.) 그리고 역습의 중심에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피를로가 훨훨 날아다니며 오히려 이탈리아가 먼저 1골을 넣었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볼키핑, 절묘한 타이밍에 공간을 열어주는 패스, 노련하고 지능적인 템포 조절. 결국 파브레가스의 골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그 경기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축구도사 피를로였다. 21번의 털이 덥수룩한 선수는 더 넓게, 더 멀리, 더 빠르게 생각하며 플레이했다.

 

 

 


나는 축구계의 진부한 표현인 "오직 팀의 성공이 중요하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견딜 수가 없다. 그건 개인적인 야망이 없는, 클래스가 부족하거나 개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성가신 불평 같은 말이다. 나에게도 물론 팀이 아주 큰 부분이지만, 만약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잊어버린다면 나는 결국 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말 것이다. 많은 꿈이 모여서 승리를 이뤄내는 것처럼 많은 개인이 모여서 팀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그것은 역사가 되기도 한다.

- 16. 피를리뉴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피를로의 자서전은 그의 플레이스타일에 걸맞은 제목이었다. 부딪히고 뒹구는 난폭한 그라운드에서 피를로는 차원이 다른 선수처럼 생각하며 공을 찬다.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를 뜻하는 '레지스타', 수비 바로 앞선에서 공을 뿌려주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는 포지션의 상징, 혹은 전설로 거듭난 피를로. 특출난 시야와 패싱력, 축구 센스는 물론 수비력과 템포 조절 등 다양한 역량이 요구되는 포지션에서 그는 오히려 가장 자유롭고 화려했다. 그는 어릴적 부터 천재였다. 브레시아 유소년 클럽에서부터 같은 팀원에게까지 시기와 질투를 받은 그는 철저하게 자아가 강한 선수로 자라났다. 악의적인 거친 태클과 자신을 향한 패스의 비율이 점점 바뀌는 걸 즐기는 선수였다. 축구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능력에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팀의 성공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건 클래스가 부족한 선수들의 불평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처럼 정말 중요한 경기 전에도 15분의 스트레칭은 쓸데없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그는 피를로다. 그렇기에 이런 다소 오만할 수도 있는 멘트도 이해할 수 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적어도 자신의 몫은 다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담 마크맨을 붙여야만 하는 존재감의 선수다. 마치 공격력도 준수했던 맨유의 박지성이 모기처럼 피를로를 따라다니는 역할을 수행했듯이.

 

 

그와 마주쳤던 내 밀란 시절의 많은 경기 중 어느 한 경기에서 그는 박지성으로 하여금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했다. 그가 전자의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는 분명히 역사상 최초의 핵과 같은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라운드의 모든 곳을 누비고 다녔다. 공격에 가담하려고 하다가 그게 잘 안 되면 나에게 그 자신을 내던졌다. 그는 자신의 양손을 내 등에 대고 그의 존재를 알리며 나를 위협하려 했다. 그는 볼을 봤지만 그게 왜 있는지는 몰랐다. 그의 눈에는 그저 미확인된 왔다 갔다 하는 물체였을 것이다. 맨유는 그로 하여금 날 막게 했고, 그게 박지성이 생각한 오직 한 가지였다. 자신의 임무에 대한 그의 헌신은 거의 감동적이었다. 그는 이미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 유명한 선수였음에도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능력을 기꺼이 억제한 채 경비견이 되는 데 동의한 것이다.

- 15. 집시


피를로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미지와 다르게 플레이스테이션에 빠져 살거나, 가투소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모습은 의외였다. 자는 가투소 놀래키기, 가투소를 향해 소화기 뿌리기, 가투소의 문법 놀리기. 이정도면 악동은 발로텔리가 아니라 피를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피를로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선수는 가투소였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시종일관 상대팀과 부딪히고 태클을 날리며 공을 따내는 파이터 가투소.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공을 빠르게 전방으로 뿌리거나 여유롭게 공을 돌리며 점유율을 높여가는 피를로. AC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중심에는 두 선수의 환상적인 궁합이 있었다. 그밖에도 모델 포스를 뽐내며 가장 스타일리쉬하다고 소문난 이탈리아 선수단의 더러운 습관도 모두 적었다. 돌체앤가바나로 온몸을 휘감으면서 항상 낡고 냄새나는 축구화를 신는 질라르디노, 반드시 가위를 처음 사용해야하는 로시, 축구화를 정확하게 균형을 맞춰 세워두는 포글리오. 하지만 이들의 미신은 인자기에 비하면 약과다. 그는 (간단히 말해) 악취가 강렬한 똥을 경기 전에 드레싱룸에 싸는 게 득점의 비결이라 믿었다! 한편, 그는 브라질 주닝요에게 영감을 받은 무회전 프리킥의 비밀도 살며시 공개했고, 그의 이적을 둘러싼 여러 빅클럽의 공세도 털어놨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이고 카타르에서까지 그를 원했던 건 확실히 그는 클래스가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최악의 순간에도 교훈은 늘 존재하며 상처를 더 깊게 파고들어 한줄기 희망이나 지혜의 말을 찾아내는 것은 도덕적인 의무다. 그 경험으로부터 뭔가 우아한 문장을 만들어내서 앞으로의 여정이 덜 쓰라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스탄불의 일에 대해 그렇게 해보고자 노력했으나, 이 말 외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씨발.

- 12. 이스탄불 신드롬


발롱드로, 칼치오폴리, 이스탄불의 기적(아니 피를로에겐 악몽이겠지만), 파넨카킥. 그가 경험한 수많은 경기에 대한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야기로 자서전은 가득하다. (특히 리버풀에게 당한 이스탄불의 악몽에는 아무리 멋지게 말하려 해도 포장하기 어려웠나 보다. "씨발"이란 한마디로 챕터가 끝나니깐!) 마초 같으면서 시인 같은, 소년 같으면서 철학자 같은 피를로는 확실히 특별한 선수였다. 여전히 MLS에서 환상적인 경기 조율을 보여주며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지스타임을 증명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실려있는 '번역노트'에는 선수, 경기, 팀, 리그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어 피를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마르키시오, 베라티, 데 로시 등 아주리 군단은 여전히 중원에 특급 선수가 많다. 하지만 피를로의 빈자리를 단 1%의 아쉬움도 없이 채우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가 지닌 상징성과 그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공격/수비 전술의 파괴력은 쉽게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최국 프랑스, 디펜딩챔피언 스페인, 피파랭킹 1위 벨기에,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 이들의 상승세에 비교하면 여전히 이탈리아는 도전자 입장이다. 하지만 피를로가 다시 합류한다면 적어도 해볼 만하단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다. 피를로라면 뭔가 해줄 수 있단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옳은 선택을 했어, 피를로."

내 아버지는 21일에 태어났다. 21일은 내가 결혼식을 올린 날이자, 세리에A 데뷔전을 치른 날짜이기도 하다. 그 숫자는 내 커리어 초기부터 나의 등번호였고 나는 절대 그 번호를 놓친 적이 없다. 그 숫자는 내게 행운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20장에서 끝나는 이유다. 나는 이다음의 장이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에 잇을 또 다른 이야기와 경험으로 채워질 여백의 페이지였으면 한다.

그리고 한 자기는 확실하다. 나에겐 펜이 있다.

- 20. 21시 21분

유명한 선수들을 수집하는 방법이 시즌 티켓을 파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기에서 이기게 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접착제다. 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비다. 군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승리는 전선 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골을 적게 허용하는 팀이 경기에서 이긴다.




- 10. 발롱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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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과 사고는 수없이 많은 신경세포들로 구성된 축축하고 물렁물렁한 뇌로부터 생성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마음과 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경생물학적 지식과 더불어 심리학, 경제학 등의 행동과학적 이론과 연구 방법이 필요하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인지 신경과학, 사회정서 신경과학, 신경 경제학, 신경윤리학 등 융합 학문이 속속 등장해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본 강의는 다양한 인간 행동의 근거가 되는 뇌 신경 회로를 탐구하고 이러한 발견들이 현재와 미래의 인간 행동에 미치게 될 영향을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 2011년도 2학기 '느끼는 뇌, 소통하는 뇌' 수업목표 및 개요


대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수업을 꼽으라면 항상 먼저 떠오르는 과목이 있다. 바로 과학/수학 분야의 교양 과목 <느끼는 뇌, 소통하는 뇌>가 생각난다. 심리학과 이도준 교수님의 유머러스하면서 차분한 강의는 물론 심리학 실험 참여, 다양한 영상 등 다채롭게 꽉꽉 채워진 수업이었다. 졸업하려면 반드시 과학/수학 관련 분야 교양 수업을 들어야만 했는데, "문송합니다."의 대표주자 철학과를 나온 내게 '뇌, 뇌'는 빛이요, 희망이었다. 쉽고 재미있게 '뇌'라는 소재를 다방면에서 분석하고 바라보는데 굉장히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특히 매우 독특하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다양한 뇌손상 환자들의 사례들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실인증, 얼굴실인증 등 이원론의 한계를 설명하며 등장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이제서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며 접하는 많은 환자들이 <뇌, 뇌> 수업때 들었던 사례들과 겹쳐지더라. 5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나의 대뇌 피질 모퉁이에는 인상적이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었나 보다.


자폐증 환자이자 지능도 뒤떨어진 그가 구체적인 것 그리고 '형태'에 대해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의 자연주의자, 자연파 화가였다. 그는 세계를 '형태'로 파악했다. 다시 말해서 사물을 보는 순간 강렬한 느낌을 받아 그것을 그대로 표현했다. 그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힘과 함께 우화적인 표현력도 지니고 있었다. 꽃과 물고기를 매우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을 의인화, 상징화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것을 꿈으로 뒤바꾸거나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보통 자폐증 환자들이 상상이나 풍자 혹은 예술과 관계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中


저자 올리버 색스는 타고난 글쟁이다. 신경장애 환자들의 다양한 임상 사례를 모아둔 책이 이렇게 문학적일 수 있다니! 딱딱하고 전문적인 단어들로 빼곡히 가득 찼을 것만 같은 소재들을 읽다 보면 오히려 가슴이 짠하고, 어느 순간 뭉클해지는 부분도 상당하다. 임상실험 사례들이 20개가 넘게 나오다 보니 단편 문학 같은 느낌도 든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분명 학술적이지만, 학술적이지만은 않다. 본인의 연주를 위해 잠시 약을 먹지 않고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는 이, 꿈에도 그리던 청춘을 다시 만나고 차라리 지금의 병을 계속 안고 가겠다는 환자, 눈 앞에 보이는 형을 알아보지만 추억할 수 없는 사내. 기이한 환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병명, 증세, 치유 여부 등의 차가운 단어로만 가득하지 않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올리버 색스가 주목하는 건 '병'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이다. 단순히 그들을 새로운 케이스, 색다른 치료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본다. 긴 시간 대화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찰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의사다. 


"나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말처럼 그는 환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나아가 그들의 주체성을 주목하며 응원했다. 그래서 '뇌'라는 신비로운 소재를 따뜻한 목소리로 기록할 수 있었다. (결국 글쓰기를 멈추지 않던 그는 암투병 끝에 지난해 타계했다.)


"내 몸은 말하자면 눈과 귀가 없어진 것과 같아요. 내 몸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단 뜻이지요."

그녀는 자신의 상태 즉 '빼앗긴' 감각을 적절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상태는 말하자면 감각이 소리 없는 암흑에 빠진 상태였고 실제로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어쨌든 그녀도 나도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오늘날의 사회에는 그런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며 따라서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 상대가 장님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근심 어린 동정을 보낸다. 우리는 그들의 상태를 상상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그들을 대한다. 그러나 크리스티너가 비틀대는 동작으로 어설프게 버스를 타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잔뜩 화가 난 모욕적인 언사가 퍼부어질 뿐이다. 

-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 中


사람의 얼굴과 사물의 형태를 구분할 수 없는 음악교사, 과거의 기억이 특정 시기 이후로는 하얗게 증발한 사내, 왼쪽만 보지 못하는 여자,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바흐의 복잡한 기교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지성을 가진 저능아 아이, '캘린더 계산기'라 불리며 엄청나게 큰 소수를 가지고 노는 쌍둥이 형제. 올리버 색스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은 지나치게 독특하며 평범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최근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뚜렛 증후군, 틱 장애가 등장해서 대중들은 나름 익숙해졌다. 하지만 실제 눈 앞에 그들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을 보장은 없다. 갑작스레 나의 얼굴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한다거나, 아무런 맥락 없이 욕설을 내뱉는다면 쉽게 넘어가기 힘들 게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환자는 물론 환자 가족들이 겪게 될 고초와 아픔이 떠올랐다. 교감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해질 무관심과 편견, 냉대는 결코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적어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은 독자라면 다소 다른 그들의 환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행동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윤리적이거나 실존적인 딜레마에 빠졌을 때는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작과 지각이 딜레마의 근원을 이룰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뜻하지 않은 성과를 얻을 수는 있는 것이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무언가 돌파구를 얻기만 한다면(단 하나의 동작이라도 좋고, 지각이라도 좋고, 충동이라도 좋고, 최초의 한마디라도 좋다. 헬렌 켈러에게 '물'이라는 단 한마디가 그런 역할을 했듯이 말이다) '무'였던 세계가 '전부'로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충동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행동도 아니고 반사운동도 아닌 오직 충동이다. 충동이야말로 행동이나 반사운동보다 그 존재가 훨씬 명백하며 또한 좀더 신비적이다. 우리는 매들린을 향해서 "이것을 하세요."하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충동에 기대를 거는 것뿐이었다. 충동에 희망을 걸고 충동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충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엇다.

- 매들린의 손 中


올리버 색스는 지금껏 소외되었던 우뇌의 영역을 재조명했다.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 총 4부로 구성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일반 병동에서 지나칠 수 있었던 시각인식불능증, 코르사코프 증후군 등을 재조명했다. 짧은 글을 마무리하며 매번 '뒷이야기'를 통해 비슷한 사례, 추후 증세 등을 소소하게 덧붙이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한편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뇌질환이 소리소문없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알콜 중독, 자동차 사고 등 뚜렷한 인과 관계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지의 영역인 뇌의 특성상 아무런 징후 없이 걸리는 병도 꽤 있었다. 하루아침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면? 자고 일어나면 모든 세상이 왼쪽이 보이지 않는 반토막이 된다면? 글을 다 쓰고 공책을 덮었는데 내 기억이 오직 2002년에만 머물러 있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일들은 언제든지 준비 없이 나를 찾아올 수 있다. 건강하고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온 책 속 인물들이 그랬듯이. 새삼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레이는 투렛 증후군 환자이며 할돌의 투여로 인공적인 균형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수하는 자연 그대로의 자유라는 생득권을 빼앗겼는데도 그는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떤 의미로는 그것을 극복했다. 그는 니체처럼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나는 갖가지 건강 상태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지금도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병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다고조차 말할 수 있다. 지독한 고통을 극복했을 때야말로 정신은 궁극적으로 해방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생명체로서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생리학적 건강을 잃었기 때문에 레이는 새로운 건강, 새로운 자유를 발견한 것이다. 병을 앓으며 갖가지 부침을 경험했기 때문에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니체가 '위대한 건강'이라고 즐겨 부르는 상태에 도달했다. 드물게 보는 유머, 사나이다움, 강한 정신력을 얻은 것이다. 투렛 증후군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오히려 투렛증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익살꾼 틱 레이 中


하지만 언제나 이런 뇌 손상이 그들에게 불행을 선물할 거라 단정 짓기 어려웠다. 악마의 재능처럼 그들에게 천재성을 선물하는 것도 결국엔 뇌란 신비로운 존재기 때문이다. 익살꾼 틱 레이는 할돌 복용을 중단하고 열광적인 드럼 연주에 격렬히 몰두했다. 시각적 기억으로 비범한 계산 능력을 보이던 쌍둥이 형제는 사회성 학습을 명목으로 강제로 떨어진 이후 평범한 저능아가 되었다. 큐피드병에 걸린 90세 노부인은 팔팔한 기운을 잃지 않기 위해 뇌의 탈억제 상태를 되돌리지는 않는 처방을 받았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비정상의 영역이 바뀌어야만 하는 교정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니체가 표현한 '위대한 건강', 도스토예프스키가 명작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간질처럼. 그들에게는 단순히 치료해야만 하는 병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자 새로운 활력소, 아니면 바로 그 삶 자체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병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오히려 병 덕분에 고통을 치유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병의 유무로 그들의 인생을 섣불리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단순히 일상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누린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우월하다거나 존엄하다고 판단할 근거나 정당성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혼자 남게 된 나는 가슴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 이렇게 기묘한 일이 있을까? 그의 인생이 망각의 세계에서 녹아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다시 노트에 적었다.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좀더 무미건조하게 다음과 같이 썼다. "그밖의 점에서는 신경학적 검사 결과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지금까지 받은 인상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아마 코르사코프 증후근 즉 알코올로 인해 일어난 유두체 변성이라고 여겨진다."

- 길 잃은 뱃사람 中


가장 가슴이 아프고 아련한 이야기는 <길 잃은 뱃사람>이었다. 명량하고 사교적이며 활발한 성격의 지미는 49살이다. 막힘없이 말도 잘했고 해군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승선했던 잠수함의 이름, 동료 승무원의 특징, 모스 부호까지도.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학교 시절에서 해군 시절로 넘어가면서 '현재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레 나이를 묻자 머뭇거리며 "열아홉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그에게 거울을 들이밀자 당혹해 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햇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애써 진정시키고 잠시 후 다시 면담을 시작하자 그는 난생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밝게 인사를 건넸다. 지능도 뛰어나고, 성격도 유쾌하며 건장한 체형의 그는 기억은 1945년에 멈춰있었다. 그의 세계에는 우라늄이 마지막 원소이며, 달은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과거가 없기에 미래가 없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에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무엇보다 가슴 먹먹한 장면은 유일하게 기억하는 혈육인 형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반가워했지만 "진짜 빨리 늙는 사람이 있구나."라며 늙은 형을 애써 이해할 뿐이었다. 일기쓰기, 레크레이션 프로그램 참가 등 다양한 처방을 시도했지만 지미는 '신경심리학적'으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성당에서 자신의 영혼을 얻었고 예술적인 교감, 영혼의 접촉을 통해 재통합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새삼 '기억'이란 인간을 형성하는 필요조건일진 몰라도 충분조건이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미는 기억 없이도 아쉽지만 작은 평온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경학(또는 신경심리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도저히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 보이기도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할 정도인 사람이 어떻게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은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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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455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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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


- 김행숙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밤의 고속도로


- 김행숙


바퀴 달린 것들이 소리를 지를 때

창문을 흔들며

무엇을 운반하는가


고속도로는 검은 채찍 같다

채찍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빛, 빛,

빛의 그림자들처럼

세계의 난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누군가 난간처럼 서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지기


- 김행숙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다음 날도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다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나의 직업

이다.


나의 천직을 이유로 울지 않겠다,라고 썼다. 일기

를 쓸 때 나는 가끔 울었다.



에코의 초상

- 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

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 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

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 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

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

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

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에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울림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공허하고 슬픈 공동체 속에서 과연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지독한 외로움, 소름돋는 무서움, 철저한 소외감. 

김행숙 시인은 피할 수 없는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꿈꿨다. 존재, 시간, 말.. 하이데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어 틈바구니에서 시인은 일상을 돌아봤다. 맨 앞장 시인의 말처럼 '우리'란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 가볍지만, 가벼울 수 없는 필연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새로운 관계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필요조건인 건 분명하다. 여전히 첫장의 강렬함을 채운 시인의 말이 아른거린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던 순간도 많았고, 생각보다 빠르게 곱씹을 거리들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인의 말'만큼 인상적인, 그리고 충격적인 첫 음절은 없었다.


시인의 말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모두가 깊이 앓고, 진하게 빠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무섭고 두려운 출발이라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있는 일일테니. '너'와 '나'를 채워주는 '우리'란 관계가 결국엔 비극의 시작이자 종말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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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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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열녀 되기를 의심하고 조롱하며 폄하했던 사람들은 등장인물 모두였다. 이 도령의 욕정과 방자나 월매의 계산, 다른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려보자. 그네들은 모두 기생 춘향의 영업을 의심하지 않았다. 방자의 말에 따르자면 이것은 심지어 춘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싸우고 있는 두 주체는 춘향을 열녀로 만들고 싶은 독자들의 욕망을 연기하는 춘향과 그것의 부당함을 공격하는 모든 봉건적 인물들이다.

- <대체 춘향이 무엇이관데 - 춘향전> 中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착한 이는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 흔하디흔한 고전 소설의 권성징악 이야기는 참으로 뻔했다.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소설만큼 지루하고 식상한 건 없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틀을 깬 성인버전의 '잔혹동화'가 최근 인기를 끌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도 유아용이었고, '그림형제 잔혹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자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감성이 가득했다. <전을 범하다>도 당연시했던 선악의 이분법, 도덕의 정당성으로 가득한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을 제대로 비틀었다.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란 부제처럼 틀에 박힌 해석보다는 여러가지 판본에 숨겨진 욕망,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고든다. <죽은 자의 변>, <욕망의 늪>, <지배자의 힘>, <나의 재발견> 4부에 걸쳐 총 13편의 고전 소설이 담겨있고, '놓칠 수 없는 대목'이란 부록을 통해 실제 원문을 실었다. 아울러 '못다 한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함께 하는 사씨남정기, 운영전, 최낭전, 채봉감별곡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를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내면화한 우리 자신이고 어쩌면 거기에 협잡하여 나만의 이익을 차리려는 영악함일지도 모른다. 이런 속 깊은 자기 발전 계획을 홍길동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강고한 문학사적 지식은 그런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이 진실을 찾는 법이다. 그 진실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 진실이 문학사의 것이든, 우리의 인생에 대한 것이든.

- <놓칠 수 없는 대목 - 홍길동전> 中


시종일관 필자는 불만에 가득한 어투로 책을 가득 채웠다. 끝까지 정조를 강요받고 많은 이들의 괄시를 받은 춘향부터 희생을 강요당한 심청이의 억울한 상황까지 이곳저곳 화가 잔뜩 나 있다. 하지만 그의 "왜? 과연?"이 가득한 말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백 년간 당연시했던 기존의 가치관을 비틀기 위해서는 말 잘 듣는 모범생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투덜이가 어울린다. 효녀, 열녀, 선인 등 당연히 칭송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박제된 캐릭터들도 인간이다. '욕망'이란 너무나 기본적인 심성마저도 철저히 무시된 채 그들의 인생은 단순화되었다. 그들에게도 구원받지 않을 권리, 고통받을 권리가 있으며, 다수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런 파편화는 <적벽가>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적벽가>가 적벽대전이 아니라 도원결의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적벽가>에 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위대한 영웅의 대서사시, 결연한 의지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용기가 아니다.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이다.


출장입상의 유교적 가치관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직 울음뿐이다. 전투에 앞서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군사들은 씩식한 군가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는 대신 울음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사랑하는 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터지는 서러운 울음은 폭압적인 봉건 국가에서 민중들에게 부여된 유일한 언어였고, 그들을 연대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 <학살 혹은 우스운 죽음들- 적벽가> 中


전쟁터의 대다수 군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삶을 위한 의지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미시적인 군사들의 삶은 거시적인 '전쟁'이란 프레임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 전투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모든 걸 바쳐야만 한다. 이러한 영웅주의는 국가의 편리한 주입식 교육일 뿐이다. '효'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심청 역시 마을 사람들과 심봉사의 계획된 살인 사건이라고 꼬집는다. 또한 '숫맛 알고 살림'하는 음란한 장끼를 재조명한 <장끼전>도 욕망의 민낯을 샅샅이 살핀다. 단순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효심 깊은 딸이 아닌. 그저 한 여인, 욕망을 지닌 인간 그 본질을 마주하는 신선함이 책에 가득하다. <장화홍련전>의 계모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기억하는 본처의 딸을 괴롭히고 이간질에 능한 계모가 아닌 가정불화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후처'일 뿐이다.


문제는 실제로 계모들이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회의 온갖 질시, 집안사람들의 감시를 받는 계모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약자였다. 그리하여 이 약자는 가정불화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야 만다. 가정소설에서 계모들은 한결같이 사악한 존재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성을 자손 번창의 수단으로만 보고, 남성의 우월한 지위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의 야만성은 필연적으로 가정불화의 문제,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극단의 갈등을 야기한다.

- <공포 어린 밤에 대한 환상 - 장화홍련전> 中


영화, 드라마, 노래 등으로 다양하게 재탄생한 <춘향전>, <홍길동전>, <전우치전>등 유명한 고전부터 이름만 들어본(혹은 이름도 처음 들어본) <김현감호>, <김원전>, <황새결송>등 낯선 고전도 있었다. (영화 <방자전>도 색다른 시각에서 고전을 해석한 좋은 사례다.) 물론 13편의 고전소설 재해석이 모두 재밌진 않았다. '다시 읽기'가 주는 흥미진진함은 모두가 비슷했지만 몇몇 소설은 억지같기도 하였고,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토끼전>이었다. 토끼와 거북이탈을 쓰고 추격전을 벌이는 <무한도전-토끼전>만 하더라도 귀여운 포맷이었는데. 실제 <토끼전>의 내용은 막장 드라마, 아니 그 이상의 잔인하고 충격적이며 자극적이었다. 다양한 판본이 있기에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 때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았다. 토끼가 간을 내놓지 않기 위해 꾀를 쓴 게 전부가 아니었다니! 오히려 별주부에게 아내를 하룻밤 상대로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토끼의 수청을 든 별주부의 아내가 토끼를 사모하게 되다니! 작가의 말처럼 <토끼전>은 욕망이 넘실대는 잔인한 소설이었다.


토끼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네 죽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아내를 하룻밤 내 방에 들이면 괜찮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네 집의 멸문지환이 눈앞에 날 것이니 조심하라."

하니 별주부가 부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 의견 어떠하오?"

- 가람본 <별토가>에서


내가 본 가장 슬픈 결말은 이렇다. 앞서 보았다시피 비장하게 토끼의 수청을 든 별주부의 아내는 그날부터 토끼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끼가 수궁을 떠나던 날, 토끼에게 어서 돌아와 이별의 슬픔을 달래달라는 비밀 편지를 쓰기도 했다. 물론 수궁을 떠난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고, 별주부의 아내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 수궁 사람들은 별주부를 사모하다 죽은 줄 알고 열녀문을 세워주었다. 그즈음 토끼에게 버림받은 별주부는 자책감에 스스로 소상강으로 망명하여 세월을 보내다가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인에 대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별주부도 부인을 따라 자결하였다. 진실을 모르고 죽은 별주부를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토끼전>만큼 욕망이 넘실대는 잔인한 소설을 보지 못했다.

- <놓칠 수 없는 대목 - 토끼전> 中



비틀어 보기, 낯설게 읽기.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고전 소설을 <전을 범하다>는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재해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설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내는 재미는 그 자체로도 쏠쏠하다. 무조건 정답을 위해 암기해야 했던 고전을 비로소 통쾌하고 자유롭게 읽어나가는 쾌감이 있다. 자극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고전은 2016년에도 충분히 통할만 한 구석이 가득하다.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을 그리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금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고전 소설에도 지금과 비슷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전을 범하다>의 색다른 이야기들을 단순히 가십거리로 끝내는 것은 '권선징악', '충효열'로 가득한 교과서 고전들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무감각했던 폭력과 불합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항상 모든 일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것이 <전을 범하다>의 적절한 독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심청의 죽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모 속에 진행되고, 공동체는 이를 숭고한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이 부당하고 부도덕한 거래를 ‘효‘라는 가치로 덮는다. 이로써 <심청전>에서의 살인은 ‘계약‘의 형식에 ‘희생 제의‘의 내용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심청의 죽음이 숭고하게 다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곧 희생 제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거기엔 더욱 근본적인 동질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희생 제의란 신께 무엇인가를 희생물로 바침으로써 현실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희생 제의의 성립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곧 제의가 성립되려면 공동체의 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희생 제의의 필요성이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 <심청 살인사건의 은밀한 내막 - 심청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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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크 -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
차우진 외 지음 / 어라운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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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늘 자유롭다."
올림픽공원, 경복궁, 서울숲, 남산공원, 노을공원, 도산공원, 여의도한강공원.
<더 파크>는 서울 도심 속 공원 7개에 얽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양한 직업을 가진 7명이 풀어낸 책이다. 건축가, 소설가, 모델, 배우, 음악평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공원'은 캠핑의 공간, 영감의 공간, 혹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다. <더 파크>는 기아차가 세계 주요 도시의 생활모습을 엮어낸 시티북의 첫번째 작품이다. 씨티북은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를 선정해 역사, 관광명소, 교통, 숙박, 편의시설 등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담은 프로젝트다. 자동차 회사에서 과연 공원을 소개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환경 오염의 주범, 도심 속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손꼽히는 게 자동차 아닌가!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제법 스타일리쉬하게 환경친화적이고 도심 속 여유로운 공간인 공원을 그린다. 주야장천 자동차 판매'량'을 위해 차량 홍보는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고객의 공감을 자아내는 '감성마케팅'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21세기다. 아울러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거듭날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반드시 하나의 의미만을 갖진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기고 어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고 누군가는 물림을 느낀다. 이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 점에서 내게 장소는, 결국 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 올림픽공원, 차우진

 

커피 향이 그윽한 카페에 올려두기 좋은 책,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권하고 싶은 책, 연인과 데이트를 계획하는 이를 위한 책, 공원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책. <더 파크>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두서 없이 나열해봤다. 일단 <더 파크>는 예쁘다. 공원을 찍은 아름다운 사진이 곳곳에 가득하다. 표지부터 멋진 한강(으로 추정되는 물가)이 청아하게 빛나고 있다. 간략한 글쓴이의 감상과 에피소드보다 사진이 더 많은 걸 보면 잡지 느낌도 난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가볍게 활자를 읽고 싶은 이들에게 부담없이 권할 수 있다. 커피의 맛도 중요하지만 카페 인테리어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판가름나는 요즘 시대에 이만한 책이 있을까? 한달만 지나도 유행에 뒤떨어져 보이는 월간지를 잔뜩 구비해 놓기보다, 스타일리쉬한 <더 파크> 한 권이 더 유용할 것 같다. 게다가 은근히 깨알 같은 정보도 많다. 김중혁 작가의 '공원에서 읽기 좋은 책', 차우진 음악평론가의 '공원에서 듣기 좋은 음반', 이유 모델의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 등 각자 자신의 관심 분야, 혹은 본업에 입각해 다양한 정보를 전한다. 캠핑, 조깅, 건축물 등 자신의 입맛에 맞는 취미가 있다면 자세히 읽어보고 직접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게다가 공원 주변의 디저트카페, 식당, 수제맥주집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미니 가이드맵도 실려 있다. 데이트 코스에 골머리 앓는 이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구성일 게 분명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유를 망각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발견할 테지만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13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일과 휴식의 사이를 오가는 나름의 균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휴식이라는 게 별건가 싶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나는 오늘도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향한다. 오늘 잘 쉬고 내일 잘 살기 위해.

- 도산공원, 최지형  


내게 공원은 '따뜻한 공간'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대부분 공원에서 운동을 했기에 땀이 났고, 자연스레 공원을 떠날 때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물론 단순히 체온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로 따져도 공원은 항상 따뜻하고 포근했다. 집앞 가까이 있는 매탄공원, 효원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추억의 장소였다. 국민학교 시절(입학은 국민학교, 졸업은 초등학교) 소풍으로 공원을 찾던 내가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듯, 공원도 참 많이 바뀌었다. 그 당시엔 하늘같던 중3 형들을 피해 매탄공원 자갈+모래+진흙 바닥에서 우르르 몰려가 축구를 했다. 지금은 1~2년 전에 전부 갈아엎어 잔디 구장이 생겼고, 시설도 훨씬 세련되고 밝아졌다. 효원공원의 상징인 어머니상은 어린 시절 가장 확실한 약속 장소였다. 그림대회, 글짓기대회, 소풍 등 모든 행사의 집결지는 '아침 9시 효원공원 어머니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상은 사라지고 몇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고, 중국풍 화원이 들어섰다. 세월이 흐르고 당연히 공원도 서서히, 혹은 빠르게 바뀌어가지만 내 추억은 여전하다. 첫사랑과 함께 농구 수행평가 연습을 핑계로 친해진 농구장. 공익근무 출근 전 매일같이 7시부터 테니스로 땀 흘리던 클레이 코트. 재수생 시절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차분한 노래를 누워서 들었던 정자. 밤새도록 공차면서 놀고 맥주는 쓰다며 콜라로 대신했던 잔디밭. 내가 자란 공간이 조금은 천천히 바뀌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는 막다른 길이 아니라 거대한 계단 같은 곳이었다. 앞만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위쪽을 바라보니 새로운 길이 있었다. 공원에서 나는 자신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한 계단 위로 올라서는 법을 배웠고, 쉬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다면 돌아 나오면 되는 거였다. 돌아 나오는 길도 엄연히 길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길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시 공원에 가서 물을 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 한강공원,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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