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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크 - 서울에 사는 일곱 사람, 그들의 공원 이야기
차우진 외 지음 / 어라운드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늘 자유롭다."
올림픽공원, 경복궁, 서울숲, 남산공원, 노을공원, 도산공원, 여의도한강공원.
<더 파크>는 서울 도심 속 공원 7개에 얽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양한 직업을 가진 7명이 풀어낸 책이다. 건축가, 소설가, 모델, 배우, 음악평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공원'은 캠핑의 공간, 영감의 공간, 혹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다. <더 파크>는 기아차가 세계 주요 도시의 생활모습을 엮어낸 시티북의 첫번째 작품이다. 씨티북은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를 선정해 역사, 관광명소, 교통, 숙박, 편의시설 등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담은 프로젝트다. 자동차 회사에서 과연 공원을 소개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환경 오염의 주범, 도심 속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손꼽히는 게 자동차 아닌가!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제법 스타일리쉬하게 환경친화적이고 도심 속 여유로운 공간인 공원을 그린다. 주야장천 자동차 판매'량'을 위해 차량 홍보는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고객의 공감을 자아내는 '감성마케팅'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21세기다. 아울러 브랜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거듭날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반드시 하나의 의미만을 갖진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기고 어떤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고 누군가는 물림을 느낀다. 이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 점에서 내게 장소는, 결국 나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 올림픽공원, 차우진
커피 향이 그윽한 카페에 올려두기 좋은 책,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권하고 싶은 책, 연인과 데이트를 계획하는 이를 위한 책, 공원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책. <더 파크>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두서 없이 나열해봤다. 일단 <더 파크>는 예쁘다. 공원을 찍은 아름다운 사진이 곳곳에 가득하다. 표지부터 멋진 한강(으로 추정되는 물가)이 청아하게 빛나고 있다. 간략한 글쓴이의 감상과 에피소드보다 사진이 더 많은 걸 보면 잡지 느낌도 난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가볍게 활자를 읽고 싶은 이들에게 부담없이 권할 수 있다. 커피의 맛도 중요하지만 카페 인테리어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판가름나는 요즘 시대에 이만한 책이 있을까? 한달만 지나도 유행에 뒤떨어져 보이는 월간지를 잔뜩 구비해 놓기보다, 스타일리쉬한 <더 파크> 한 권이 더 유용할 것 같다. 게다가 은근히 깨알 같은 정보도 많다. 김중혁 작가의 '공원에서 읽기 좋은 책', 차우진 음악평론가의 '공원에서 듣기 좋은 음반', 이유 모델의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 등 각자 자신의 관심 분야, 혹은 본업에 입각해 다양한 정보를 전한다. 캠핑, 조깅, 건축물 등 자신의 입맛에 맞는 취미가 있다면 자세히 읽어보고 직접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게다가 공원 주변의 디저트카페, 식당, 수제맥주집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미니 가이드맵도 실려 있다. 데이트 코스에 골머리 앓는 이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구성일 게 분명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유를 망각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발견할 테지만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13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일과 휴식의 사이를 오가는 나름의 균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휴식이라는 게 별건가 싶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나는 오늘도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향한다. 오늘 잘 쉬고 내일 잘 살기 위해.
- 도산공원, 최지형
내게 공원은 '따뜻한 공간'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대부분 공원에서 운동을 했기에 땀이 났고, 자연스레 공원을 떠날 때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물론 단순히 체온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로 따져도 공원은 항상 따뜻하고 포근했다. 집앞 가까이 있는 매탄공원, 효원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추억의 장소였다. 국민학교 시절(입학은 국민학교, 졸업은 초등학교) 소풍으로 공원을 찾던 내가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듯, 공원도 참 많이 바뀌었다. 그 당시엔 하늘같던 중3 형들을 피해 매탄공원 자갈+모래+진흙 바닥에서 우르르 몰려가 축구를 했다. 지금은 1~2년 전에 전부 갈아엎어 잔디 구장이 생겼고, 시설도 훨씬 세련되고 밝아졌다. 효원공원의 상징인 어머니상은 어린 시절 가장 확실한 약속 장소였다. 그림대회, 글짓기대회, 소풍 등 모든 행사의 집결지는 '아침 9시 효원공원 어머니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상은 사라지고 몇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고, 중국풍 화원이 들어섰다. 세월이 흐르고 당연히 공원도 서서히, 혹은 빠르게 바뀌어가지만 내 추억은 여전하다. 첫사랑과 함께 농구 수행평가 연습을 핑계로 친해진 농구장. 공익근무 출근 전 매일같이 7시부터 테니스로 땀 흘리던 클레이 코트. 재수생 시절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차분한 노래를 누워서 들었던 정자. 밤새도록 공차면서 놀고 맥주는 쓰다며 콜라로 대신했던 잔디밭. 내가 자란 공간이 조금은 천천히 바뀌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과,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는 것도 재밌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는 막다른 길이 아니라 거대한 계단 같은 곳이었다. 앞만 바라보면서 더 이상은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위쪽을 바라보니 새로운 길이 있었다. 공원에서 나는 자신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한 계단 위로 올라서는 법을 배웠고, 쉬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 막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없다면 돌아 나오면 되는 거였다. 돌아 나오는 길도 엄연히 길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길이 없다고 느껴지면 다시 공원에 가서 물을 보았다. 그해 겨울,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 한강공원, 김중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