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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춘향의 열녀 되기를 의심하고 조롱하며 폄하했던 사람들은 등장인물 모두였다. 이 도령의 욕정과 방자나 월매의 계산, 다른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려보자. 그네들은 모두 기생 춘향의 영업을 의심하지 않았다. 방자의 말에 따르자면 이것은 심지어 춘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싸우고 있는 두 주체는 춘향을 열녀로 만들고 싶은 독자들의 욕망을 연기하는 춘향과 그것의 부당함을 공격하는 모든 봉건적 인물들이다.
- <대체 춘향이 무엇이관데 - 춘향전> 中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착한 이는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 흔하디흔한 고전 소설의 권성징악 이야기는 참으로 뻔했다. 이미 결말을 알고 보는 소설만큼 지루하고 식상한 건 없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틀을 깬 성인버전의 '잔혹동화'가 최근 인기를 끌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도 유아용이었고, '그림형제 잔혹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자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감성이 가득했다. <전을 범하다>도 당연시했던 선악의 이분법, 도덕의 정당성으로 가득한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을 제대로 비틀었다.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란 부제처럼 틀에 박힌 해석보다는 여러가지 판본에 숨겨진 욕망,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고든다. <죽은 자의 변>, <욕망의 늪>, <지배자의 힘>, <나의 재발견> 4부에 걸쳐 총 13편의 고전 소설이 담겨있고, '놓칠 수 없는 대목'이란 부록을 통해 실제 원문을 실었다. 아울러 '못다 한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함께 하는 사씨남정기, 운영전, 최낭전, 채봉감별곡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를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내면화한 우리 자신이고 어쩌면 거기에 협잡하여 나만의 이익을 차리려는 영악함일지도 모른다. 이런 속 깊은 자기 발전 계획을 홍길동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강고한 문학사적 지식은 그런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이 진실을 찾는 법이다. 그 진실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그 진실이 문학사의 것이든, 우리의 인생에 대한 것이든.
- <놓칠 수 없는 대목 - 홍길동전> 中
시종일관 필자는 불만에 가득한 어투로 책을 가득 채웠다. 끝까지 정조를 강요받고 많은 이들의 괄시를 받은 춘향부터 희생을 강요당한 심청이의 억울한 상황까지 이곳저곳 화가 잔뜩 나 있다. 하지만 그의 "왜? 과연?"이 가득한 말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백 년간 당연시했던 기존의 가치관을 비틀기 위해서는 말 잘 듣는 모범생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투덜이가 어울린다. 효녀, 열녀, 선인 등 당연히 칭송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박제된 캐릭터들도 인간이다. '욕망'이란 너무나 기본적인 심성마저도 철저히 무시된 채 그들의 인생은 단순화되었다. 그들에게도 구원받지 않을 권리, 고통받을 권리가 있으며, 다수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런 파편화는 <적벽가>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적벽가>가 적벽대전이 아니라 도원결의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적벽가>에 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위대한 영웅의 대서사시, 결연한 의지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용기가 아니다.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이다.
출장입상의 유교적 가치관은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직 울음뿐이다. 전투에 앞서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군사들은 씩식한 군가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는 대신 울음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사랑하는 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터지는 서러운 울음은 폭압적인 봉건 국가에서 민중들에게 부여된 유일한 언어였고, 그들을 연대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 <학살 혹은 우스운 죽음들- 적벽가> 中
전쟁터의 대다수 군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다. 삶을 위한 의지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미시적인 군사들의 삶은 거시적인 '전쟁'이란 프레임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 전투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모든 걸 바쳐야만 한다. 이러한 영웅주의는 국가의 편리한 주입식 교육일 뿐이다. '효'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심청 역시 마을 사람들과 심봉사의 계획된 살인 사건이라고 꼬집는다. 또한 '숫맛 알고 살림'하는 음란한 장끼를 재조명한 <장끼전>도 욕망의 민낯을 샅샅이 살핀다. 단순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효심 깊은 딸이 아닌. 그저 한 여인, 욕망을 지닌 인간 그 본질을 마주하는 신선함이 책에 가득하다. <장화홍련전>의 계모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기억하는 본처의 딸을 괴롭히고 이간질에 능한 계모가 아닌 가정불화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후처'일 뿐이다.
문제는 실제로 계모들이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회의 온갖 질시, 집안사람들의 감시를 받는 계모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약자였다. 그리하여 이 약자는 가정불화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고야 만다. 가정소설에서 계모들은 한결같이 사악한 존재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성을 자손 번창의 수단으로만 보고, 남성의 우월한 지위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의 야만성은 필연적으로 가정불화의 문제,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극단의 갈등을 야기한다.
- <공포 어린 밤에 대한 환상 - 장화홍련전> 中
영화, 드라마, 노래 등으로 다양하게 재탄생한 <춘향전>, <홍길동전>, <전우치전>등 유명한 고전부터 이름만 들어본(혹은 이름도 처음 들어본) <김현감호>, <김원전>, <황새결송>등 낯선 고전도 있었다. (영화 <방자전>도 색다른 시각에서 고전을 해석한 좋은 사례다.) 물론 13편의 고전소설 재해석이 모두 재밌진 않았다. '다시 읽기'가 주는 흥미진진함은 모두가 비슷했지만 몇몇 소설은 억지같기도 하였고,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토끼전>이었다. 토끼와 거북이탈을 쓰고 추격전을 벌이는 <무한도전-토끼전>만 하더라도 귀여운 포맷이었는데. 실제 <토끼전>의 내용은 막장 드라마, 아니 그 이상의 잔인하고 충격적이며 자극적이었다. 다양한 판본이 있기에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 때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았다. 토끼가 간을 내놓지 않기 위해 꾀를 쓴 게 전부가 아니었다니! 오히려 별주부에게 아내를 하룻밤 상대로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토끼의 수청을 든 별주부의 아내가 토끼를 사모하게 되다니! 작가의 말처럼 <토끼전>은 욕망이 넘실대는 잔인한 소설이었다.
토끼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네 죽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아내를 하룻밤 내 방에 들이면 괜찮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네 집의 멸문지환이 눈앞에 날 것이니 조심하라."
하니 별주부가 부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 의견 어떠하오?"
- 가람본 <별토가>에서
내가 본 가장 슬픈 결말은 이렇다. 앞서 보았다시피 비장하게 토끼의 수청을 든 별주부의 아내는 그날부터 토끼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끼가 수궁을 떠나던 날, 토끼에게 어서 돌아와 이별의 슬픔을 달래달라는 비밀 편지를 쓰기도 했다. 물론 수궁을 떠난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고, 별주부의 아내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 수궁 사람들은 별주부를 사모하다 죽은 줄 알고 열녀문을 세워주었다. 그즈음 토끼에게 버림받은 별주부는 자책감에 스스로 소상강으로 망명하여 세월을 보내다가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인에 대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별주부도 부인을 따라 자결하였다. 진실을 모르고 죽은 별주부를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토끼전>만큼 욕망이 넘실대는 잔인한 소설을 보지 못했다.
- <놓칠 수 없는 대목 - 토끼전> 中
비틀어 보기, 낯설게 읽기.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고전 소설을 <전을 범하다>는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재해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설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내는 재미는 그 자체로도 쏠쏠하다. 무조건 정답을 위해 암기해야 했던 고전을 비로소 통쾌하고 자유롭게 읽어나가는 쾌감이 있다. 자극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고전은 2016년에도 충분히 통할만 한 구석이 가득하다.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을 그리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금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고전 소설에도 지금과 비슷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전을 범하다>의 색다른 이야기들을 단순히 가십거리로 끝내는 것은 '권선징악', '충효열'로 가득한 교과서 고전들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무감각했던 폭력과 불합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항상 모든 일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것이 <전을 범하다>의 적절한 독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심청의 죽음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모 속에 진행되고, 공동체는 이를 숭고한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이 부당하고 부도덕한 거래를 ‘효‘라는 가치로 덮는다. 이로써 <심청전>에서의 살인은 ‘계약‘의 형식에 ‘희생 제의‘의 내용을 갖추게 된다. 물론 심청의 죽음이 숭고하게 다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곧 희생 제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거기엔 더욱 근본적인 동질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희생 제의란 신께 무엇인가를 희생물로 바침으로써 현실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희생 제의의 성립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곧 제의가 성립되려면 공동체의 위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희생 제의의 필요성이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 <심청 살인사건의 은밀한 내막 - 심청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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