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무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제프리 디버의 <소녀의 무덤> 아.. 디버 형님이 얼마나 절치부심하셨는지 느껴집니다.

650페이지의 분량이 65페이지로 느껴지는 작품이죠. 누군가가 올여름 단하나의 스릴러라고 말했던데 동감입니다.


  인질범과의 협상을 다룬 소설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어본 것 같습니다. <호스티지> 같은 작품도 인질극을 다룬 걸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각설하고 지금까지 제가 본 가장 훌룡한 인질극은 영화 <다이하드>와 <네고시에이터> 였던 것 같은데요.

 <소녀의 무덤>은 <네고시에이터>는 가볍게 뛰어넘고 <다이하드>와 비슷한 정도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다이하드는 개인적으로 액션영화의 이정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디버의 강점은 캐릭터의 직업적 특성에 대해서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링컨 라임에서 법과학적 관점이 사건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완벽하게 구성하듯이, <소녀의 무덤>에서 디버는 인질극에서, 협상가와 인질범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소통되는가에 관해서, 그리고 그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장난이 아닙니다.

 인질범에 대해서 협상가가 가지는 태도는 양가적인 속성을 가집니다. 범인의 부탁을 들어주되, 범인이 목적한 바를 좌절시켜야 한다. 범인과 친해지기 위해서 진심으로 접근하되, 범인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진실과 거짓말이 난무하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

 인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생명을 무릎써야 하는가?

 모든 걸 말하진 않겠습니다. 스포일이라는 용서못할 폭력이 될테니까요. 

 
 작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팽팽한 긴장감.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반전과 개연성.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솜씨와 전개속도까지 모든 면에서 최상급의 작품입니다.

 번역도 깔끔하고 훌륭합니다. 수고한 번역가님께 박수 한번 쳐주고 싶습니다. 짝짝짝 ㅋㅋㅋ

 
 참고로 <소녀의 무덤> 에서 이후 디버의 모든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플롯의 원형이 완성되었다고 하더군요. 뭐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장난 아니게 재미있다는거..

 <콜드문>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점점 읽어야 할 디버의 작품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때문에 우울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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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지키기 위해 꿈을 꾼다
시라쿠라 유미 지음, 신카이 마코토 그림,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워줘야 한다'

 유명한 시나리오 작법서의 저자인 로버트 맥기의 말이다.

 이 문구를 인용한 이유는 읽고 나서 약간의 당혹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내용은 나오질 않고, 부수적일거라 예상했던 내용이 메인플롯을 채우면서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일 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표지와 컨셉을 접하면서 기대하게 될 내용은, 5 분의 시간동안 7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라는 판타스틱한 사건의 내막은 무엇일까? 혹은 함께 공유할 시간을 잃어버린 이 안타깝고 어린 연인이 어떤식으로 사랑을 회복할까? 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내용을 기대했었고.. 책표지에서부터 아련한 사랑의 냄새가 풀풀 풍겨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가슴 아픈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환상적인 마법의 시간속을 여행하고 싶다면.. 이 책은 그리 추천할 책이 되지 못한다.

 <널 지키기 위해 꿈을 꾼다>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왜 5분의 시간동안 7년의 시간이 흘렀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에 불과하다. 또한 시간의 뒤틀림속에서 안타까운 재회를 하는 스나오와 사쿠가 사랑을 통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성장에 대한 고찰일 것이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는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것인지.. 이 극적인 상황속에서 사쿠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말하려고 한다.

 본문 중에서 결국 성장은 혼자서 감내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  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성장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쿠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나오의 희생을 직시하고 감사하며 동생과의 갈등앞에 당당하게 나서면서,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고 교장선생님을 찾아갈때, 내가 느낀 건 한 개인은 정말 많은 관계속에서 성숙함을 찾아가는구나.. 라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가 말한 혼자서 해내야 할 성장의 기제는 정신적, 심리적인 방식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독자로서 책에 대한 기대를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판타지적인 로맨스를 기대하게 한 저자가 실수를 한 것일까? 확실한 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맨스나 마법적이고 절묘한 사건을 보고자 한다면, 분명히 실망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한 아이의 모험담으로 바라본다면 누군가에겐 의미있는 책으로 남지 않을까?

 

 역자 후기에 보니 원래 아동도서로 출판된 책이었다가 성인독자에게까지 반향이 퍼지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은 무척이나 쉽고 가볍게 읽혔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초속 5Cm> 등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책의 표지로 쓰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였기에 탁월한 선택이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또한 신카이가 언제나 반복해왔던 특유의 주제들... 이별하는 연인들의 아픔을  슬퍼하면서도 긍정함으로써 사랑과 삶에 대한 초월적인 시선들을 보여주었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신카이가 꽤 좋아할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자신이 어린 시절 생각했던 어른이 아니라면, 혹은 내게 사춘기로 방황하는 어린 조카가 있다면 한번쯤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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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보편적 상식의 시각에서 봤을 때 <가마타행진곡>의 인물들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긴짱은 잔혹하고 자상하며 호탕한듯 소심하다. 문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장담컨데 실제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이과의 관계는 3일을 넘기기 힘들것이다. 또한 야스는 그런 긴짱을 위하다못해 목숨까지 바치려고 한다. 가학과 피학, 사드마조히즘이 일상적관계에까지 침투했다 할지라도 죽음마저도 기꺼이 수행하려는 야스의 행동에선 오히려 긴짱보다 더 심한 어떤 광기가 느껴진다.
 고나쓰 역시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긴짱을 사랑하면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긴짱의 명령을 수행하고 야스와 긴짱 모두에게 어떤 양가적인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신기하게도 처음엔 긴짱의 행패에 분노가 일었고 야스의 너무나도 굴종적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런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감정은 극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지워지고 독자로 하여금 그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이 무시무시하게 극단으로 치닫는 인물들은 메타포다.
 긴짱을 보며 자유를 넘어선 방종이나 위계의 꼭지점에 위치한 제왕적 독재자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스를 보며 노예도덕에 사로잡힌 무지몽매한 소시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주체성을 읽어버린 채 지배받기만을 원하는 마조히즘적인 현대인의 군상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작품을 보면서 떠올렸던 것은 아이덴티티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는 야스의 트라우마를 접하게 되며 그 순간 긴짱이 야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게 된다. 야스에게 결핍된 욕망, 도달하지 못한 성취는 그대로 긴짱에게 투영된다. 긴짱은 자신감, 자유, 권력 야스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야스는 긴짱에게 무던히도 얻어맏고 짓밟히면서도 긴짱이 주연배우가 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죽음이 예정된 계단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마저도 하찮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아이덴티티는 강력하다.
 야스는 이미 긴짱의 성공을 자신의 유일한 의미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긴짱이 자신을 짓밟는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야스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음으로 직행하는 급행열차를 보고 있다. 야스는 자신의 죽음을 음미까지 해가며 마지막순간까지도 자신의 행위를 신성화한다. 그래서 긴짱에 대한 분노보다는 야스의 무지몽매함이 안타깝고 거기에 더해 제발 정신차려! 라는 답답함까지도 느끼게 된다.
 고나쓰는 어떤가? 그녀만큼은 긴짱을 사모하면서도 무책임한 그를 거부할 수 있는 단호한 이성을 가진 인물이다. 야스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고 그녀를 받아들였다면 야스의 무모한 행위는 멈출수도 있지 않았을까?

 

 역자후기를 보며 재일교포작가가 겪어야했던 그리고 말하고자 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보았다. 저자는 당시 절대적 신인으로 추앙받던 일왕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인 광신에서 야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절대적 가치. 맹목적인 광신. 미친듯이 휩쓸려다니는 대중을 보며 저자는 경고와 함께 고나쓰처럼 한발 물러서서 현실감을 찾길 촉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의 전개나 설정은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뛰어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섬세한 심리묘사와 협소한 인간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보다 상위의 사회적 구조적 문제를 알레고리화하고 풍자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진화생물학에서 개체발생은 계통의 발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개인은 한 사회를 담고 있는 법이다.
 저자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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