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보편적 상식의 시각에서 봤을 때 <가마타행진곡>의 인물들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긴짱은 잔혹하고 자상하며 호탕한듯 소심하다. 문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장담컨데 실제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이과의 관계는 3일을 넘기기 힘들것이다. 또한 야스는 그런 긴짱을 위하다못해 목숨까지 바치려고 한다. 가학과 피학, 사드마조히즘이 일상적관계에까지 침투했다 할지라도 죽음마저도 기꺼이 수행하려는 야스의 행동에선 오히려 긴짱보다 더 심한 어떤 광기가 느껴진다.
 고나쓰 역시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긴짱을 사랑하면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긴짱의 명령을 수행하고 야스와 긴짱 모두에게 어떤 양가적인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인물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신기하게도 처음엔 긴짱의 행패에 분노가 일었고 야스의 너무나도 굴종적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런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감정은 극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지워지고 독자로 하여금 그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이 무시무시하게 극단으로 치닫는 인물들은 메타포다.
 긴짱을 보며 자유를 넘어선 방종이나 위계의 꼭지점에 위치한 제왕적 독재자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스를 보며 노예도덕에 사로잡힌 무지몽매한 소시민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주체성을 읽어버린 채 지배받기만을 원하는 마조히즘적인 현대인의 군상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작품을 보면서 떠올렸던 것은 아이덴티티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독자는 야스의 트라우마를 접하게 되며 그 순간 긴짱이 야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게 된다. 야스에게 결핍된 욕망, 도달하지 못한 성취는 그대로 긴짱에게 투영된다. 긴짱은 자신감, 자유, 권력 야스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야스는 긴짱에게 무던히도 얻어맏고 짓밟히면서도 긴짱이 주연배우가 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죽음이 예정된 계단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마저도 하찮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아이덴티티는 강력하다.
 야스는 이미 긴짱의 성공을 자신의 유일한 의미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긴짱이 자신을 짓밟는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야스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음으로 직행하는 급행열차를 보고 있다. 야스는 자신의 죽음을 음미까지 해가며 마지막순간까지도 자신의 행위를 신성화한다. 그래서 긴짱에 대한 분노보다는 야스의 무지몽매함이 안타깝고 거기에 더해 제발 정신차려! 라는 답답함까지도 느끼게 된다.
 고나쓰는 어떤가? 그녀만큼은 긴짱을 사모하면서도 무책임한 그를 거부할 수 있는 단호한 이성을 가진 인물이다. 야스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고 그녀를 받아들였다면 야스의 무모한 행위는 멈출수도 있지 않았을까?

 

 역자후기를 보며 재일교포작가가 겪어야했던 그리고 말하고자 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보았다. 저자는 당시 절대적 신인으로 추앙받던 일왕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인 광신에서 야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절대적 가치. 맹목적인 광신. 미친듯이 휩쓸려다니는 대중을 보며 저자는 경고와 함께 고나쓰처럼 한발 물러서서 현실감을 찾길 촉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야기의 전개나 설정은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뛰어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섬세한 심리묘사와 협소한 인간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보다 상위의 사회적 구조적 문제를 알레고리화하고 풍자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진화생물학에서 개체발생은 계통의 발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개인은 한 사회를 담고 있는 법이다.
 저자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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